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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을 말한다] 자향(子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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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면

"주제나 문학성을 중시하는 엄숙한 소설과 재미를 좇는 대중소설을 가르는 구분은 이제는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재미 속에 자연스럽게 어떤 문학적인 요소들과 현실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야죠."

1590년 기묘사화 전후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는 다섯권짜리 장편 역사소설 '자향'을 최근 출간, 갑년(甲年)에 소설가로 데뷔한 백우영(60.사진)씨는 '재미'에 무게 중심을 두는 자신의 소설관을 시원시원하게 밝혔다.

백씨의 자신감은 소설책을 펼쳐들면 오래지 않아 확인된다.

소설은 기묘사화로 퇴출된 조광조의 편에 섰다가 집안이 몰락할 위기에 처한 박운 참의의 넷째딸 자향이 9일에 걸쳐 추격자들을 따돌리는 이야기다. 총기가 없는 외아들 대신 집안의 대를 이어갈 적임자로 꼽힌 자향은 여종으로 분장하고 한양의 사대문을 빠져나가게 된다. 용케 도성은 벗어나지만 역신(逆臣)의 가족을 잡아들이라는 엄명에 따라 자향을 쫓는 추적의 손길은 세상 물정 모르고 곱게만 자란 열여섯살 양반가 규수가 따돌리기에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소설은 등장인물들의 선의와 악의가 교차하는 가운데 계략과 변수가 얽혀 뜻밖의 결과로 이어지곤 하는 도망자와 추적자의 드라마를 숨가쁘게 엮어낸다. 함지박귀.노린내.유심현 등 지략과 재주를 갖춘 인물들의 신출귀몰하는 활약도 흥미를 더한다. 당대 무술 고수들의 대결, 궁녀 연지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도 나온다.

소설 속 4백년 전의 과거가 눈앞에 펼쳐지는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은 50권이 넘는 방대한 관련 자료가 소설 속에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백씨가 밝힌 참고도서 목록은 '조선왕조중종실록''조선시대생활사''한국복식미술' 등을 포함하고 있다.

백씨는 "소설이 막힐 때면 한달 넘게 손을 놓은 적도 있었다. 또 가장 좋아하는 소설인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한참씩 들여다보기도 했다"고 말했다. '자향'은 백씨가 1년 반에 걸쳐 쓴 2만쪽 분량을 6천쪽으로 줄인 것이다. 백씨는 한국일보 문화부장 등을 지낸 언론인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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