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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YS 앞장섰던 노「경제교사」/사법처리 임박한 김종인의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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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강성정책으로 “6공경제 망쳐”비판도/「5·8부동산조치」주도로 재계 미움사/노 친인척에 “인사 간여말라”잦은 마찰
안영모동화은행장으로부터 은행설립 인가에 대한 사례비조로 3억여원을 수뢰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종인의원은 19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혐의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그는 민자당이 그에 대해 출당등 징계조치를 검토하고 있다는 설이 파다한 가운데서도 이날오후 국회에서 열린 민자당의원총회에 참석했다. 그는 의총이 끝난뒤 의원식당에서 비교적 담담한 어조로 자신의 입장과 심경을 밝혔다. 그는 첫마디에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양심의 가책을 받을만한 일을 한 적이 없다. 하늘에 맹세한다』고 말했다. 그는 『경제수석 재직시 밥먹자는 사람은 많았지만 모두 거절해 건방지다고 욕만 먹었다. 또 당시 내가 부동산투기등을 휘어잡는 과정에서 어떤 소리를 들었는지 잘 알지않느냐. 조금만 삐끗해도 나를 겨냥한 화살이 빗발칠 것이란 점을 늘 염두에 두고 살았다』고 청정함을 강조했다.
○김병노선생 손자
그는 특히 『안행장과는 개인적 친분은 없고 경제수석 당시 공식적으로 아는 사이였다. 안행장과 단둘이 식사한 적도 없다』고 밝혔다. 그는 때문에 의원직 사퇴는 전혀 고려치 않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최근의 사정에 대해서는 『시대마다 특성이 있는 법이므로 이러쿵 저러쿵 말할 필요가 없다』고 감정을 자제했다. 또 그에 대해서는 『노대통령을 오도해 6공경제를 망치고 국가발전을 정체시킨 장본인』이란 비판이 따라 다닌다.
김의원은 우선 대쪽같은 기개로 법조계의 사표가 되어있는 초대 대법원장 가인 김병노선생(작고)의 손자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자존심이 강하고 매우 직선적이어서 성품이 조부를 닮은데가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가 노태우 전대통령의 경제수석 비서관이던 시절 노 전대통령이 이동통신 사업을 추진하려 하자 『국민의 의혹을 살 수 있으므로 절대 안된다』며 끝까지 반대했던 것은 유명한 일화다. 그는 청와대 재직시 이른바 키친(부엌)사인방 이라는 박철언·금진호·김복동·이원조씨와 마찰이 잦았다.
보사부장관때는 당시 6공정부가 한때 실시를 검토했던 금융실명제를 공개적으로 반대했던 유일한 국무위원으로 이름이 올랐다.
○실명제 실시반대
김의원은 원래 현실 참여파 경제학자였다. 독일 뮌스터대학에서 재정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73년부터 80년 국보위 재무분과위원으로 발탁될 때까지 서강대에서 강의를 했다.
그는 학계에 있을 때부터 『공허한 이론만 가지고는 오히려 경제를 망친다. 현실감각이 중요하다』며 국무총리실 평가교수단에 참여했다. 그는 이때 재형저축제도에 관한 아이디어를 제공했으며 의료보험제도입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그러나 부인 김미경씨(이대교수)를 소개한 고 김재익 전경제수석이 경제기획원 기획국장으로 일할때 검토했던 부가가치세 도입에 대해서는 조세의 비형평성등을 이유로 반대했다.
그가 신군부와 인연을 맺은 것도 바로 이 부가가치세 때문이다. 국보위는 부가세 폐지등 세제를 전면개편하겠다는 생각에서 부가세 도입을 반대했던 김 의원을 재무분과위원 자리에 앉혔다. 그런데 그는 정작 신군부의 구상이 경제혼란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제동을 걸고 나섰다고 한다.
이후 그는 민정당 창당 발기인과 11,12대 전국구의원을 거치면서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그가 노 전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것은 노 전대통령이 민정당대표였던 시절. 그는 이때 노 전대통령의 「경제 가정교사」로서 두터운 신임을 얻었다.
87년 13대 대선에서 민정당의 노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러나 김 의원은 경제수석이 되지 못했다. 그가 5공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해 비판적이어서 전두환 전대통령과는 썩좋은 사이가 아니었으므로 그때까지만 해도 아직 영향력이 남아있던 전 전대통령측으로부터 견제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 전대통령은 그를 13대 총선에 내보냈다. 그러나 서울 관악 을구에서 평민당의 이해찬후보(현 민주당의원)에게 패배했다. 그런데도 노대통령은 얼마 안있어 김 의원을 보사부장관에 기용했고 90년 3월 그를 기어코 경제수석으로 중용했다.
○박태준·이종찬편
「경제대통령」자리에 앉은 그는 특유의 배짱과 뚝심을 발휘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5·8부동산 강제매각조치다.
그로인해 재계로부터 『콧대가 높다』『건방지다』『실물경제를 망친다』는 등의 소리를 들었으며 특히 정주영현대그룹 명예회장과는 척이 크게 졌다.
그는 막강한 파워를 행사했던 이원조·금진호의원에 대해서도 『정부기관·은행의 인사에 개입하지 말라』는 경고를 서슴없이 퍼부어 역시 안 좋은 사이를 만들었다.
3당합당후 지역구를 민주계인 김수한 전의원에게 내주고 14대때는 전국구의원이 된 그는 줄곧 반김영삼노선을 견지해 왔다.
그는 노 전대통령에게 『YS는 아니다』고 줄기차게 직소하고 박태준·이종찬편을 들었다.
김정염 전청와대비서실장이 그의 처삼촌이며 박봉환 전동자부장관은 매부,이진설 전건설부장관과 이택돈 전의원은 그의 사촌매부이다. 이 전장관은 김의원에 이어 6공 마지막 청와대경제수석비서관을 지냈다.<이상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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