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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성씨 호적 표기 두음법칙 예외 인정 "성씨 결정은 인격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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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1일부터 호적에 올라간 '유' '이'씨(氏)를 '류' '리'씨로 바꿀 수 있게 된다. 한자 성(姓)을 표기할 때 두음법칙 적용의 예외를 두기로 한 대법원의 개정 호적예규가 시행된다. 성씨의 결정은 개인의 인격권 중 하나라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다. 하지만 신청한 사람만 표기를 바꿀 수 있어 같은 문중에서도 성씨가 달라질 수 있다. 주민등록과 여권의 성을 모두 바꾸려면 별도의 절차를 거쳐야 해 상당한 사회적 비용도 예상된다.

◆"성씨는 고유명사다"=성씨 표기는 1994년 9월 이전엔 한자만 기재했다.이후 한글 이름을 같이 적도록 개정했다. '柳'씨의 경우 집안에 따라 '유' 또는 '류'로 썼다. 하지만 96년부터는 모든 성에 두음법칙을 적용해 표기하도록 바뀌었다. 공문서를 한글맞춤법 표준안에 맞춰 표기한다는 시행령에 따라서다. 하지만 두음법칙을 적용하지 않고, 발음하는 대로 성씨를 써 온 사람들은 헌법소원과 법원 소송을 내며 반발했다.

이들은 영문 이름 '로버트'를 '노버트'로, '라면'을 '나면'으로 표기하지 않듯 고유명사인 성씨는 원래 불려오던 대로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이문열, 최병렬의 '열''렬'처럼 성씨 이외의 이름은 본인이 원하는 대로 호적에 올리므로 성씨도 예외로 하는 게 맞다는 논리를 폈다.

◆법원, "성씨 표기 강제는 인격권 침해"=청주지법 민사11부는 올 4월 유모(65)씨가 "호적상 한글 이름을 '유'에서 '류'로 바꿔 달라"며 낸 호적정정 신청을 받아들였다. "개인의 성은 혈연집단을 상징하는 기호이자 개인의 동질성을 나타내는 고유명사이므로 국가가 표기법을 강제하는 것은 인격권 침해"라는 게 이유였다. 성씨 표기가 논란이 되자 대법원은 올해 5월 등기호적제도개선위원회를 구성했다. 차한성 법원행정처 차장(위원장)을 비롯한 8명의 법률전문가 위원과 손희하 전남대 국문과 교수가 자문위원으로 참석했다. 위원회는 두음법칙의 예외를 인정하는 게 맞다는 결론을 냈다.

위원으로 참여한 곽대희 가정법률상담소 소장은 "국민의 행복추구권과 인격권 보호 차원에서 예규 개정이 필요하다는 게 중론이었다"고 말했다. 대법원 등기호적심의관 남성민 판사는 "청주지법과 대전지법 결정이 호적 예규를 개정한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실효성 놓고 논란=두음법칙 적용의 예외로 할 수 있는 대상 성씨는 1100만 명 정도. 그러나 실제 성씨 표기를 바꾸는 경우는 수십만~100만여 명 정도로 예상된다. 문화 류씨 대종회의 류종현(65) 상임부회장은 "류씨 성을 되찾은 것은 종중의 숙원사업이었기 때문에 전체 류씨 60만 명 가운데 90% 정도가 '유'에서 '류'로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 670여 만 명인 '이'씨는 10% 정도가 '리'로 개정할 것으로 추산된다.

여권.주민등록증은 기관별로 따로 신청해야 성을 바꿀 수 있다. 성씨 정정 소송에 관여해 온 리기원씨는 "호적의 성을 바꾸더라도 여권.주민등록증의 성을 같이 바꾸지 않으면 더 큰 불편을 겪을 수 있다"고 걱정했다.

신청하는 사람만 호적 표기를 바꿀 수 있어 같은 문중이라도 성씨 표기가 달라 혼선을 빚을 우려도 있다. 전주가 본관인 이모(42)씨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도 '리'로 표기했다"며 "하지만 96년 이후 '이'로 써왔는데 굳이 바꿀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성우 기자

◆인격권=각 개인에게 부여된 생명.신체.자유.정조.성명에 관한 사적(私的) 권리다. 민법은 타인의 신체.자유.명예를 침해하면 불법행위라고 규정, 인격권을 보호하고 있다.?인격권=각 개인에게 부여된 생명.신체.자유.정조.성명에 관한 사적(私的) 권리다. 민법은 타인의 신체.자유.명예를 침해하면 불법행위라고 규정, 인격권을 보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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