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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고수머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5면

집안 내력이 고수머리다.
그러나 고2인 아들은 고수머리가 고민이다.
새벽이면 빨리 등교해야하는데도 항상 그 고수머리가 말썽이다.
『야. 마을버스 놓칠라. 빨리 가라』독촉도 막무가내다.
거울을 들여다보며 헤어드라이어로 머릿결을 조금이라도 펴고 가야 한다.
『얘야. 고수머리가 유전학적으로 우성이니까 자랑스럽게 강조하고 다녀라.』의학을 배웠다는 아비의 충고는 아무런 효험이 없다.
아들은 계속 거울 앞에서 머리카락을 펴는데 여념 없다.
『도대체 머리카락에 신경 쓰지 말고 머릿속을 신경 써라. 웬 사내아이가 그까짓 머릿결로 고민하냐.』 이제는 아비라는 권위로 타일러 보기도하나 마이동풍이다.
곁에 있던 대학생 누나가 거든다. 『아빠. 고수머리는 여자애들에게도 인기가 없어요. 아빠 때문에 동생이 고민하는 것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려 해보셨어요.』
아들의 고민이 아버지 때문이라는 어처구니없는 편들기다.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빡빡머리」라는 규격화된 머리스타일을 가졌기 때문에 머릿결로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대학시절 머리를 기르면서 나타난 고수머리를 별로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던 나여서 아들이 갖는 고민의 본질에 대해 이해하기 어렵다. 사춘기 자식이 갖는 외모에 대한 관심을 마구 꾸짖을 수는 없다.
그러나 요즘같이 경쟁이 심한 고등학교과정에서 공부에 몰입하게 해야 한다는 강박감을 갖고 있는 부모의 마음을 어떻게 할까. 아이가 머릿결 펴기에 보내는 시간마저 아깝기만 하다.
성장기의 꿈에 젖어있는 아이에게 친구를 만나거나, 세상물정을 구경하는 시간을 줄이게 하는 것이 대학가는데는 상책(?)인줄 번연히 알건만은 선뜻 말을 못한다. 더구나 아비에게 물려받은 문제는 아비가 어떻게든 풀어주어야 할텐데 속수무책이다.
『얘야. 대학가면 머리도 기르고 그 때는 오히려 고수머리가 더 인기 있을거야.』 겨우 달래보는 목소리가 다 죽어간다. 박상철<서울대교수·생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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