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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복 떠나는 동료에게 '무사히 복귀하십시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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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호 04면

2일 오후 7시20분 강원도 철원군 백골사단 직할 수색대대 ○중대 막사 앞. 어둠이 깔리면서 중부전선 최전방의 이 대대에 긴장이 감돌았다. 비무장지대(DMZ) 매복작전 투입 의례가 시작됐다. 이정재 중대장(대위)과 간부들 앞에 투입 소대장 이동환 중위와 병사 8명이 서 있었다. 나머지 중대원 50여 명은 그 옆으로 도열했다. “군장검사.” 중대 간부의 구령에 이 중위가 매복작전 때 사용할 병사들의 실탄과 클레이모어(통칭 ‘크레모아’)·수류탄, 신호장비 등을 점검했다. 이상이 없자 각자 군장을 꾸렸다.

중부전선 최전방 백골사단을 가다

“신고합니다. 중위 이동환 외 8명은 00시00분부터 00시00분까지 ○○번에 대한 매복작전을 명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이어지는 중대장의 훈시. “뜬눈으로 매복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건승을 기원한다.” 훈시가 끝나자 이상준 일병(비투입)이 격려사를 읽었다. “매복작전에 투입하시는 ○소대 용사 여러분! …오늘도 완벽 작전하시어 무사히 복귀하십시오.” 곧바로 “칭찬합시다” 구령이 나왔다. 중대원 한 명이 나와 투입조의 김경태 상병을 칭찬했다.

“소대 최고의 통신병으로서…용기를 배웠고 수색대대원으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배웠습니다.” 마지막으로 백골구호가 메아리쳤다. “살아도 백골, 죽어도 백골, 필사즉생 골육지정, 백골 백골 백골 파이팅!” 투입조는 트럭에 올랐고, 나머지 장병은 위병소 양옆으로 도열해 중대가를 불렀다. “적 전선을 돌파한다 돌파한다/두려울 게 하나 없다 하나 없다….” 이 의례는 하루도 빠지지 않는다. 다음날이면 다시 못 볼 전우가 생길지도 모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7시50분. 투입조는 DMZ로 들어가는 철책선의 통문 앞에 도착했다. ‘조국은 백골 용사를 믿는다’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이날 처음으로 투입되는 이종형 이병은 “떨리기는 하지만 교육을 충분히 받았기 때문에 자신이 있다”고 했다. 투입조는 다음 날 새벽까지 군사분계선과 남방한계선 사이의 매복지점에서 꼼짝 않고 경계작전을 편다. 소·대변용 봉지와 모기약은 필수다. 매복작전이 시작되면서 날이 지고, 끝나면서 동이 트는 중부전선의 하루다. 병사에게 돌아오는 매복작전은 1주일에 한 번꼴. 장옥균 이병(비투입조)은 “DMZ에 6번 들어갔는데 처음 몇 번은 우리나라가 아닌 것 같았다”며 “지금은 잘 적응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휴전 이래 적에게 한 번도 철책선이 뚫리지 않은 백골사단. 그중에서도 수색대대는 대한민국 최정예로서의 자부심이 강하다. 북쪽의 오성산(약 1000m)이 남쪽의 성재산·계웅산보다 400m가량 높아 적에게 훤히 노출되는 악조건과 고투하고 있다.

최근 이 대대는 훈련까지 강화했다. 김요환 사단장의 강조 사항이다. 소대별로 1년에 세 번씩 4박5일의 장거리 야외 침투훈련을 하고 있다. 이화수 대대장(중령)은 “밤에 기동하고 야지에서만 생활하는 이 훈련을 통해 병사들은 수색대대에 걸맞은 체력을 키우고 물 한 방울도 나눠먹는 전우애와 단결심을 갖게 된다”고 했다.

병영생활은 어떠할까. 병사들의 얘기-.
“선후배와 같이 생활하면서 많은 정을 느낀다. 소대원들이 남 같지가 않다. 리더십이 생겨났다. 자유시간을 활용해 운동도 하고 책도 많이 읽는다.”(이재민 상병)
“306보충대에서 백골사단 배치가 결정됐을 때 동기들이 고생길이 열렸다고 했다. 걱정했지만 와서 보니 달랐다. 선후임병 간에 벽이 없어지고 서로를 아껴주는 부대였다. 그렇지만 작전 면에서는 완벽했고 단 한 번도 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장덕훈 상병)

“용이 돼서 제대한다. 95㎏에 육박했는데 이렇게 날씬해졌다. 분대장을 하면서 후배들을 부린다는 생각보다 감싸 안았다고 생각한다. 정말 자신감을 얻었다.”(안효원 병장)

장교들의 설명-.
“예전에는 소대장이 보는 앞에서 병사들끼리 치고받고 싸웠다. 욕설이 난무하고 술도 먹고 구타도 하고…. 겉으로는 강한 부대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것이 없어졌다. 대신 동료의식과 주인의식이 강해졌다. 이등병이 히죽거린다고 하는데 빙산의 일각이다. 병사들이 아버지가 됐을 때 아들의 등을 두드려 주면서 군에 보낼 수 있는 병영문화가 정착되고 있다고 생각한다.”(이화수 대대장)
“병영이 바뀌다 보니 과거 인기였던 취사병이 3D 보직으로 밀려났다.”(박준석 중령·사단 정훈참모)

“지금은 병장이 힘들어졌고 일이 많아졌다. 예전에는 계급이 낮을수록 고생했다. 장병의 기본권을 보장하면서 싸워 이기는 군대가 기본이다. 생활관(내무반)에서 불필요한 긴장을 조성하지 않고 훈련은 강하게 시킨다. 내면적 군기가 중요한 것 아닌가.”(육군본부 유상우 중령)

같은 날 오후 10시20분. 수색대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아리랑대대. 막사 3층의 한쪽에 마련된 사이버 지식 정보방. 32대의 컴퓨터가 설치된 방에 병사들이 꽉 찼다. 모두 헤드폰을 끼고 있었다. 어학 교육강좌에 접속한 병사들이 절반을 넘었다. 광주 S대 1학년을 마친 정제두 일병은 “장래를 위해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며 “강좌의 발음이 좋다”고 말했다. 대구 D대 1학년을 다니다 입대한 안지혁 일병은 1학년 기초전공인 정역학 강의를 들었다.“배운 것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 학습강좌는 국방부가 무료로 제공하며, 어학 외에 260개가 넘는 강좌를 이용할 수 있다.

부대원들의 이용시간은 밤 10~12시. 1주일 평균 2~3회 활용할 수 있다. 박준석 중령은 “성인게임이나 오락은 안 되며, 이를 어겼을 때는 징계를 받는다”고 말했다. 이에 앞선 오후 3시 내약사 대대. 역시 3층 건물의 신형 막사는 보금자리였다. 양 입구엔 전투화 세척실이 마련됐다. 세탁기와 건조기도 갖춰져 있고, 목욕탕(중대별 주 1회 사용)은 일반 목욕탕과 다를 바 없었다. 생활관은 침대형으로 바뀌었다.

침대는 생활관당 8개로 관물대에는 가족이나 애인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각층 복도에는 수신자 부담 전화기 2대가 설치됐다. 이승종 일병은 “입대 직후엔 매일 가족 등에게 전화했는데 지금은 일주일에 두세 번 이용한다”고 했다. 건물 밖 컨테이너 건물엔 노래방이 들어섰다. 한 곡당 200원. 토·일요일과 평일 자유시간에 병사들이 이용한다.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변화다.

병영에 일대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하나는 문화혁명이다. 구타나 가혹행위, 언어폭력이 사라지고 있다. 국방부 병영문화팀이 병사 600여 명을 대상으로 구타 여부를 조사한 결과 “있다”는 응답은 2.3%(14명)였다. 실제 비율은 더 높을 수 있지만 ‘존중과 상호 배려의 병영문화’는 전군의 시대정신으로 자리를 잡는 분위기다.

올해부터는 전군에 병 상호 간 명령·지시·간섭이 금지됐다. 분대장을 제외하고 상급자가 하급자를 집합시켜 놓고 명령이나 지시를 할 수 없다. 통제 대신 자유시간이 확대됐다. 자정까지 도서관 등에서 자기 계발이 가능하다. 취미와 관심분야를 살린 동아리 활동은 전 부대로 확산되고 있다. 새 병영문화는 사망사고와 군무이탈을 크게 줄였다.<표 참조> 채수준 병영문화팀장(해군 대령)은 “간부들의 의식변화도 새 병영문화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 군림하고, 질책하는 간부에서 함께하고 칭찬하는 간부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병영시설이다. 육군은 전체 대대의 53%인 347개의 막사를 침대형으로 바꾸었다. 2013년까지는 모두 현대화된다. 사이버 지식 정보방은 지난해까지 2133개소(51%)에 설치됐고, 내년까지 계획을 완료한다. 병사들의 봉급도 큰 폭으로 올랐다. 병장이 현재 받는 월급은 8만8600원. 3년 전보다 40%나 인상됐다. 국방부가 내건 ‘가정 같은 병영, 신바람 나는 병영’이 이뤄지고, 이것이 전투력 강화로 이어질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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