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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민정부서 푸는 「역사의 민원」/현대사 재평가 작업 왜 나왔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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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좌경굴레” 거론도 못했던 일/「광주」문제 해결이 성패 열쇠
정부와 국회가 현대사를 재평가하는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현재 구체적으로 추진중인 것은 백범 김구선생 암살사건과 거창양민학살사건이다. 이들 작업은 「역사의 민원」을 푸는 일이기도 하다. 역대 정권이 해결하지 않은채 쌓아둔 문제를 문민정부가 자신감을 갖고 설거지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정부와 민자당은 나아가 제주4·3사건과 여순반란사건도 새롭게 「개념정립」을 하겠다고 나섰다. 두 사건은 「좌경」이라는 딱지 때문에 지난 정권은 엄두도 내지 못하던 사안이다. 가까이는 전교조관련 교사 해직문제부터 멀리는 백범 암살문제까지 우리 현대사에는 숙제가 많다. 이것들을 재평가할 것은 재평가하고 바로 세울 것은 바로 세우자는 것이다. 가장 굵직한 현안이랄 수 있는 광주민주화운동의 경우 청와대를 중심으로 이미 1차 해결책이 성안단계에 들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새정부 출범후 정부차원의 해결방안이 벌써 제시된 사례도 있다. 일제 만행의 한 표본인 종군위안부 문제는 지난 29일 국무회의에서 「일제하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생활안전지원법안」이 통과됨으로써 적어도 국내적으로는 수습책을 찾았다. 또 보훈처는 일제에 맞서 싸운 독립유공자를 적극적으로 발굴하겠다면서 「좌익계열 독립운동가도 유공사실이 인정되면 포상대상에 넣겠다」고 전향적인 입장을 밝혔다.
이같은 움직임은 물론 김영삼정부의 정통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 지난 4·19날 현직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수유리 묘역을 찾은 김 대통령이 4·19를 서슴없이 「혁명」이라고 표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4·19혁명은 그동안 잘못 평가돼 왔다. 4·19는 3·1운동 다음으로 전국민이 참여한 운동으로 이제 재평가돼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노태우 전대통령이 6·29에 상당히 집착했던데 비해 김 대통령의 측근들은 6·29를 이끌어 낸 6·10대회(87년)에 더 비중을 두는 쪽이다. 6공 1기와 2기 멤버들의 과거사에 대한 시각차는 이처럼 매우 크다. 김덕룡정무1장관이 30일 『민주화운동을 했던 사람들 사이에 6·10민주항쟁이 문민정부 탄생의 전기를 마련했다는 시각에서 이 항쟁의 의미를 재조명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한 것은 이같은 배경에서다.
새 정부의 자신감은 동시에 국제적 조류의 뒷받침을 받고 있다. 공산권 붕괴­탈냉전의 세계사적 흐름이 이념적 경직성을 어느정도 이완시키고 있는 형국이다.
민자당은 지난달 30일 강삼재제2정책조정실장과 이강두의원(거창),기획원·내무·법무·국방부·보훈처의 예산담당관·기획실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당정협의회를 열었다. 이 회의에서 당정인사들은 사건의 희생자와 유족들에 대한 명예회복이 필요하다는데 의견이 일치했으나 배상문제는 배상범위와 다른 국가유공자와의 형평성을 감안해 더 검토돼야 한다는 신중론이 앞섰다. 주목되는 것은 회의에서 4·3사건과 여순반란사건 등 다른 사건들도 차제에 정부차원에서 「성격규정」을 하자는 결론이 났다는 점이다. 강 정책조정실장은 『거창사건은 무고한 양민이 학살됐다는 면에서 딱 떨어지는 사건이지만 4·3 등 다른 사건도 앞으로 유사한 민원이 발생할 수 있기에 이들 사건에 대한 범정부적인 「개념규정」 작업을 병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백범암살사건 재조명문제는 국회청원이 계기가 됐다. 이강훈옹 등 독립유공자들이 중심이 돼 지난해 11월 「백범 김구선생 시해 진상규명에 관한 청원」이 제출됐다. 현재 법사위의 청원심사소위(위원장 강신옥의원)에 계류중이다. 심사소위는 지난달 28일 첫 회의를 연데 이어 오는 5월14일 이강훈옹 등이 참석한 가운데 2차회의를 열 예정이다. 백범의 자제인 김신 전장관도 진상규명작업에 매우 호의적인 입장이라고 한다.
소위의 강신옥위원장은 『여야의원 모두 진상조사특위 구성에 이의가 없다』며 특위구성안의 법사위 및 본회의 통과를 낙관했다. 사건의 진상조사를 청원한측은 『대한민국의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 것이 문민정부의 그 어떤 개혁보다 더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강 위원장은 『현재까지 백범암살사건을 두고 국회나 정부차원의 조사가 행해진 적이 한번도 없었다』며 『이 때문에 몇몇 사람이 몽둥이를 들고 다니며 독자적으로 진상규명을 시도하는 일이 빚어진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이 사건의 관련 생존자는 윤치영 당시 내무부장관 정도뿐이다. 그러나 세월이 더 흐르기 전에 민간차원에서 모아놓은 관련자료·증언들을 국회기록으로 공식화해 놓는다는 의미도 크다.
한국정치를 전공한 이남영교수(숙명여대)는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뒤늦은 감이 있으나 과거를 제대로 정리하는 일은 꼭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러나 여야 정치권은 다른 모든 문제에 앞서 광주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가까운 광주문제의 해결이 다른 과거문제로 나아가는 열쇠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노재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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