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정의 제도적 개선을(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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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공직에 부적격한 세무공무원을 과감히 도태시키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국세청이 자체사정활동을 통해 불신받고 있는 해당 공무원들을 조사하고 있고 감사원도 과세 및 징세행정을 둘러싼 비리여부를 확인하는 포괄적인 감사에 들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세무부조리를 척결하기 위해 진행되고 있는 일련의 사정활동에 국민의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은 일반 납세자가 세무공무원에 대하여 갖는 두려움과 불신 때문이다.
조세는 국민의 재산권에 직접 관련된 것이며 따라서 세금을 부과하고 거두어들이는 세무원들과의 관계는 다른 어느 공무원들보다 훨씬 긴장되게 마련이다. 그런 과정에서 부당과세나 탈세행위도 빚어졌고 또 이의 처리를 법이나 규정에 따르기 보다 금전의 수수로 해결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일부 세무공무원들의 재산형성 내용에 의문의 눈길을 보내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세무공무원 모두를 마치 비위관련자로 몰아붙이는 일은 결코 온당치 못하다. 지금까지 밝혀졌던 세무원들의 비리는 바로 구린데를 감추려는 납세자들과의 뒷거래로 빚어졌다는데 문제가 있다.
따라서 세정의 개선은 세무부조리를 적발하고 징계하는 차원보다 그런 부조리가 일어날 수 있는 소지를 없애는데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즉 세정의 제도적 개선이 필요한 것이다. 세무부조리를 뿌리뽑기 위한 근원적인 접근을 각종 세법의 단순화에서 출발해야 한다.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도 이해하기 어려운 세조문이 수두룩해 일단 납세통지표를 받기만 해도 겁을 내게 된다. 세법 해석이 당국의 징세편의 위주로 이뤄지고 있지 않나를 엄밀히 점검해야 한다. 관련 조항도 모호하여 세무공무원의 재량폭이 지나치게 크고 거기서 세무부조리가 싹튼다.
아무리 훌륭한 세제를 갖추어도 그것이 복잡하기 짝이 없으면 반드시 비리의 소지가 생기는 것이다. 재산세나 상속·증여세 등은 무조건 고율과세로 대응해야 한다는 일부 주장도 있으나 세제상 형평의 문제가 제기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신종수법에 의한 비리와 탈세의 빌미를 제공할 우려가 있다.
납세자들도 기장을 관행화 해야 한다. 부가세의 경우 납세자의 60%나 되는 과세특례자들이 일반 납세자로의 분류를 기피하는 현상은 뿌리깊다. 인정과세를 둘러싸고 세무원들과 잡음이 끊이지 않는 것은 기장을 이행치 않는 납세자들에게도 책임이 있다. 비리가 움트는 음습한 분위기를 없애려면 납세자도 협력해야 한다.
또 정상적인 소득신고를 해도 크게 손해를 안보도록 세제와 세정이 제도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제대로 신고하면 도저히 사업을 할 수 없다는 현 시스팀을 바꾸지 않고는 공정하고 명랑한 세정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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