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끝)시베리아의 야쿠트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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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김태곤<경희대 중앙박물관장>
한국에서 오랜 옛날부터 전승되어 오는 서낭당과 똑같은 것이 시베리아의 한복판인 야쿠티아에도 있다면 누구나 믿기 어렵다고 할 것이다.
야쿠트족이 위대한 신성거목이라는 뜻으로 .「아리마 마스」라 부르며 신앙하는 이 신수는 주로 길가에 서 있다.
나뭇가지에 오색의 힝겊을 걸어 잡아매고 항로의 안전과 가족의 안녕을 비는 것등이 우리의 서낭당과 똑갈다.
우리의 서낭당은 신수인 서낭목 가지에 오색의 헝겊을 걸어 잡아매는 형태, 여기에 자연석을 모아놓은 누석단이 있는 형태, 그리고 서낭목에 자연석 제단이나 당집이 있는 형태등이다. 필자가 야쿠티아 여행 도중에 가끔 만난 「아리마 마스」는 서낭목 가지에 오색의 헝겊을 걸어매는 형태의 것들이었다.

<몸통에 인형 그려>
「아리마 마스」가 한국의 서낭목과 같다고 했더니, 문화부장관 안드레이 바리소브는 다짜고짜 자기의 승용차에 타라고 했다. 그는 야쿠츠크에서 북쪽으로 4km 떨어진「남시이로」라는 곳에 있는 길가의 「아리마 마스」를 보여주며 기념으로 그 앞에서 사진을 찍자는 것이었다. 함께 간 아가피아박사는 「아리마 마스」가 고장마다 수호신으로 신앙된다며 화신인 「워드 이잇치」가 「아리마 마스」에도 있다고 믿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그 앞에서 지낸다고 했다
지난 1월3일 타친스키의 으이테겐 마을에 갔을 때도 눈속에 서 있는 아리마 마스를 보았다. 나뭇 가지에 오색의 헝겊이 매어져 있거나 나무 틈바구니에 동전이 끼워져 있기도 하고 몸통에 장승처럼 인형을 그려놓기도 했다.
아리마 마스 외에 또다시 내눈을 의심케 한 것은 야쿠티아에서 흔히 볼수 있는 「아한」이라고 하는 울타리의 출입문이었다. 나무 말뚝을 듬성듬성 박고 가는 통나무를 서너층 대어 나무 울타리를 친 출입구에는 양쪽에 1·5m 높이의 기둥을 세우고 각각 구멍 4개씩을 뚫은 다음 이 구멍에 4개의 맡장을 가로 질러 놓은 것이었다.
제주도 민가의 검은 돌담 출입문에 4개의 말장을 가로질러 주인의 유무를 표시한다는 「정낭」과 「아한」은 형태나 용도가 똑같았다. 아한 역시 주인이 집을 비울 때에는 4개의 말장을 모두 가로질러 부재중임을 표시한다.
오후 느지막히 문화부의 차가 호텔로 와서 나를 「호르무사」박물관의 민속음악 실연장으로 안내했다 .이 실언장의 내부는 1백평 가량되어 보였다 바닥에는 마룻장을 깔고 벽에는 야쿠트족의 전통적인 「게뮈료크흐」(난로)가 설치돼 있었다. 마룻바닥 한 가운데에는 곰의 검은 털가죽이 한 장 깔려 있고 벽에는 털가죽으로 만든 전통적인 수예품들이 걸려있어 첫눈에도 이 나라 특유의 민속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이 실연장은 작은 대쪽이나 쇠판을 입에 물고 손가락으로 퉁겨 떨림소리를 내는「주하프」의 지역별·연대별 발달과정과 세계적인 분포도를 전시해 놓고 산하에 관련 전통음악단을 거느리며 전통 음악의 맥을 이어가는 역할을 당당하고 있었다.
이날 모인 단원은 30명 가량. 이 가운데 원로 한 사람이 대형의 나무 컵인 「초롱」에「구무수」(말젖 술)을 담아 게무료크흐앞에 서서 행사가 시작됨을 알리는 짤막한 주문을 외웠다. 이어 마루에 깔린 검은 곰 털가죽 앞으로 다가와서 길이 30cm 가량의 「우자하르크야크」라고 하는 나무로 만든 국자를 곰털위에 가볍게 던졌다.
우자하르크야크흐가 바깥쪽을 향해 떨어지면 난로 안에 있는 화신인 「워드 이잇치」가 제의 시작을 흡족해 하는 것이고, 우자하르크야크흐가 안쪽을 향해 떨어지면 제가 시작됨을 불만스러워 한다고 여겨 바깥 목을 향해 떨어질 때까지 몇번이고 반복해야 한다.

<근원 재연구 필요>
이것은 우리의 민간신앙에서 객귀를 물리칠때 식칼의 칼끝이 문밖을 향해 떨어져야 객귀가 나간 것이라 믿어 칼끝이 문밖을 향해 떨어질 때까지 몇번이고 반복하는 것과 흡사하다.
이날의 야쿠티아 전통음악제는 다섯살짜리 여자 어린이로부터 80세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입에 불고 손가락으로 퉁기는 주하프 연주에서 시작하여 여러 종류의 민요들이 불렸다. 이중에서 특히 나의 관심을 끈 것은 막판에 여러 사람들이 손에 손을 잡고 원을 그리면서 춤을 추며 노래하는 「오수오하이」라고 하는 원무였다.
이 오수오하이 원무는 작년8월 국제학술대회가 끌나는 고별 파티에서도 선보여 유심히 지켜보았는데 이번에도 또 그와 같은 원무를 추는 것이었다.
매년 6월20일 열리는 이 나라 최대 명절인 「샤크흐」라고 부르는 민족 대축제에서도 끝판에 수백명이 손에 손을 연이어 잡고 민족영웅의 대업을 기리는 장편의 서사 민요인 「오롱코호」를 합창하며 원무를 춘다. 원을 그리면서 춤을 추며 노래하는 이 오수오하이는 한사람이 선창하면 나머지 사람들이 모두 따라 복창한다.
오수오하이에서 사람들이 손에 손을 연이어 잡고 원을 그리며 춤을 추는 군무, 선창에 따라 복창하는 노래의 형식등이 어쩌면 그렇게도 우리의 강강술래와 흡사할 수 있을까, 이런 원무는 3년 전의 몽고조사때에도 발견됐다.
행사가 끝난 후에 오수오하이에서 소리를 메기던 선소리꾼 한 사람을 단장실로 데리고가서 녹음기에 담은 노랫말을 통역인 타냐양에게 영어로 번역해 달라고 부탁했다. 두 시간 여에 걸쳐 영어로 옮긴 이날의 오수오하이 노랫말은 대충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우리 친구가 되자/우리들은 저 벽처럼 우뚝 서있네/수백년 동안 우리들의 우정은 사라지지 않으리/우리들의 어머니 이에나강/높은 바위, 저 뾰죽한 산봉우리들/우리의 넓은 고을들/우리의 우정은 강한 벽처럼 굳어가네…/우리는 배를 띄우네, 어머니 이에나강에….』
이와 같은 노랫말의 서두에서부터 나오는 이에나강은 시종 이 원무의 노래 주제가 된다. 이에나강은 몽고 쪽의 고원으로부터 야쿠티아의 중앙부를 남북으로 흘러 북극해로 들어가는 장장 5천km나 되는 이 나라의 동맥이다,
우리나라에서 북쪽으로 4처km나 떨어진 시베리아 한복판에 사는 야쿠트족의 민속이 어떻게 해서 우리의 민속과 이렇게도 흡사할 수 있을까. 우리민족을 가리켜 북방대륙민족이라고 흔히들 말하면서도 정작우리 민족과 문화의 근원에 관해서는 북방대륙인 시베리아와 관련시켜 심각하게 논의해본 일은 많지 않다. 민속학 분야에서는 더욱 그렇다.
우리 전통문화나 그 독자성을 논할 때 대체로 서낭당과 장승·솟대·강강술래·무속등을 대표로 내세웠다., 이런 우리의 민속이 앞에서 본 시베리아의 민속과 친연성이 짙을 경우 한국 민속학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석 정리할 것인가 .이것은 한국민속학의 앞길에 무거운 짐이 될 수도, 청신호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것은 그동안 한국민속학이 국내 민요나 설화를 녹음해다 기록하거나 장승·솟대등을 찍은 사진자료에 민족주의적 감상어린 해설을 붙이는 것으로 민속학의 사명을 다했다고 치부해온 지금까지 안이한 방법에 신선한 충격을 줄 수도 있다.
한국민속학이 민족학·인류학·역사학과 제휴하여 이와같은 민속의 친연성 문제를 해결할 때 그동안 미진한 채 유보되어 온 한국학 분야의 많은 문제들이 풀릴수 있는 계기가 될수도 있을 것이다

<민족이동설 유관>
10여년전 덴마크의 코펜하겐대학 동양학부에 잠시 머물러있을 때였다. 북유럽의 민족학자들이 스칸디나비아반도 북단에 있는 래프(Lapp)족의 문화에 동양적요소가 많다고 하며 나더러 그곳을 한번 조사해보라고 했다. 그들의 견해는 동양적 요소를 가진 민족이 서방으로 진출하다 저지되어 스칸디나비아반도 북단까지 밀려온 것이 래프족일 것이라 했다.
또 스위스 취리히대학 민족학연구소측에서는 서아시아에서 동쪽으로 이동하다 일부는 시베리아지역에 머물렀고 계속 동진해 베링해협을 건너 북아메리카까지 진출한 다른 일부가 북아메리카인디언일 거라는 조심스런 견해를 가지고 있다.
지난 겨울 야쿠티아에 갔을때, 야쿠티아 국립대학 고고학팀도 야쿠트족이 서아시아 흑해지역에서 중앙아시아틀 거쳐 시베리아에 이주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며 이에나 강변에서 2백만년 전에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발굴되었다고 했다.
우리민족의 근원도 이와같은 민족이동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북방민족의 수평적 이동과 그에 따른 문화전파를 액면 그대로 방아들일 수는 없다하더라도 우리 민속과 야쿠트족 민속의 짙은 친연성은 부인할 수가 없다. 이 친연성 문제를 전파가 아닌 자생적 진화또는 교류라는 입장도 가져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민족의 친연성 문제는 야쿠티아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서아시아의 스키타이까지 거슬러 답사한 후에나 조심성있게 논의해야할 과제로 남는다.
높은 장대 위에 물오리가 올라 앉은 솟대신앙은 야쿠티아의 구아갓스(물오리)신앙으로부터 한반도를 거처 일본(600년께 출토자료)에까지 이어지고 서낭당과 장승신앙·강강술래도 시베리아에서 몽고를 거쳐 한반도로 이어지는 일련의 문화대가 형성되어 있다. 이는 한국민속학이 풀어야 할 과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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