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 클라이번』미 하워드 라이크 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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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57년 제1회 차이코프스키콩쿠르에서 23세의 나이로 우승했던 미국의 천재피아니스트 밴 클라이번(59) 전기가 최근 출간돼 화제가 되고 있다.
그를 아끼는 많은 팬들은 이 책의 출간이 그의 콤팩트디스크(CD)전집 발매와 거의 동시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그동안 은둔생활을 하다시피한 클라이번이 이를 계기로 재기하는게 아닌가 기대에 부풀어있다.
미 시카고 트리뷴지의 예술비평담당인 하워드 라이크가 5년여 노력끝에 내놓은『밴 클라이번』(Van Cliburn, 토머스 넬슨사간)에는 50, 60년대「문화계영웅」「최고출연료를 받는 피아니스트」로 불리다 70년대 쇠퇴기를 거쳐 80년대 은둔생활에 들어가는 천재 예술가의 영광과 좌절이 흥미롭게 그려져 있다.
그런만큼 이 책을 통해 팬들은 그의 예술관외에도 레퍼터리의 단순함·매너리즘·고액의 출연료등을 둘러싼 시비를 겪을 때의 괴로운 심정과 은둔적인 그의 사생활까지 소상하게 접할 수 있다.
구소련의 스푸트니크호발사성공으로 미국의 자존심이 형편없이 구겨져있을 때인 57년 클라이번은 당시 구소련이 국위선양을 위해 창설한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당당 1위를 차지해 미국의 총아가 되었다. 당시 그에 대한 미국민들의 환영은 제2차대전 영웅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장군의 개선이래 처음이랄 정도로 뜨거웠다.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은 발매 2주만에 l백만장이 팔리는 대히트를 기록했으며 미국과 유럽 각지의 연주 요청을 받다보니 1년에 1백회이상 연주회를 가져야만했다.
62년에 그를 기념해 열린 밴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는 젊은 피아니스트들의 등용문으로 자리잡았다.
이같은 팬들의 성원은 불행히도 클라이번의 천재성과 음악성을 해치는 결과를 낳았다. 이곳 저곳 연주여행을 다니다보니 자연 레퍼터리가 확대되기 어려웠고 그 스스로도 매너리즘에 빠져 조로현상을 보인 것이다. 그는 마르코스의 부인 이멜다 마르코스의 초청으로 마닐라 말라카냥궁에서도 연주해 세계 언론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78년 클라이번은 음악활동중단을 선언, 팬들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그후 11년만인 89년 그는 미 필라델피아에서 1만2천명의 청중들이 운집한 가운데 컴백무대를 가졌으나 과거의 스케일과 열정에는 못 미친다는 평을 받았다.
그의 천재성과 영광을 기억하는 팬들은 모처럼 조성되는 클라이번 붐을 타고 그의 풍부한 재능과 음악서이 다시 한번 불붙기를 기대하고 있다. <정명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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