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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북구 평화의원 가리봉동 푸른치과(신명나는 사회:1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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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어려운 주민찾아 의료활동/젊은의사들 예방의학운동/공단지역 직업병 경각심 일깨워 평화의원/뜻맞는 의료인들 기금모아 공동 운영·진료/탁아소 등 찾아서 충치예방 교육 푸른치과
건강한 직업의식을 가지고 우리 의료의 제반문제를 몸소실천으로 풀어나가자는 의료인들의 움직임이 조용히 확산되고 있다.
「결코 권위적이지 않은 전문의료인이 환자에게 친절히 건강문제를 설명해준다. 단순한 의료기관으로만 안주하지 않고 소외된 사람을 포함한 지역주민들을 직접 찾아 보살피고 건강과 예방을 위한 활동을 일러주면서 함께 호흡하는 의료기관」. 이는 일반인의 의료기관에 대한 희망사항이자 의료인이 추구하는 이상형이기도 하다.
지역사회의 한부분으로 뿌리내린 의원,치료와 예방이 균형잡힌 의료의 실천을 통해 이 이상형을 실현하려는 젊은 의료인들의 집단이 우리 주변에서 나타나고 있다. 인천의 평화의원,서울가리봉동의 푸른치과,경기도 안성의 안성한의원 등이 바로 그런 곳이다.
○지역사회 뿌리내려
이들 의원들은 찾아오는 환자만 보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지역주민들을 직접 찾아다니면서 검진하고 보건교육을 시킨다. 치료의학에 치중된 기존의 의료관행에서 탈피,예방의학도 중요시하기 때문인데 여기에는 「일반인들과 의료지식을 나눠가짐」을 추구하는 면도 있다. 또 이들은 개인의원이 아니라는 특징이 있다. 여러 의료인들이 집단적으로 기금을 모아 만든 것이다. 이들은 경제적인 면을 포함한 많은 자기희생을 감수하고 있기도 하다.
인천시 북구 부개동 일신시장 입구에 자리잡은 평화의원은 89년 40여명의 기독교신자 의사들이 십시일반으로 7천만원의 기금을 모아 세운 의원이다.
『모든 의료인들이 이상형의 의료를 펼칠 수 없으니 각자 맡은 분야에서 의료활동을 해나가면서 서로의 힘을 모아 한 부분에서라도 이뤄지도록 하자는 취지였다』고 임종한원장(32)은 설명했다. 연세대 의대를 나온 가정의학 전문의다. 같이 일하는 장상유씨는 순천향의대 출신 가정의학 전문으로 평화의원의 활동상을 듣고 직접 찾아와 합류를 자원했다.
개원이래 평화의원은 지역주민 속에 뿌리내리는 의료에 주력해왔다. 앉아서 환자만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직접 환자나 건강에 문제가 있을 수 있는 지역주민들을 찾아 진료는 물론 건강교육도 실시한다. 교회나 지역사회단체에서 요구가 있어도 달려간다.
임 원장은 『통·반장들이 어려운 사정이 있는 사람을 직접 소개하기도 하는 등 지역에 뿌리를 내린 점이 가장 만족스럽다』고 했다. 노약자와 행려병자 관련 시설은 「즐거운 집」의 어려운 환자들이 이들을 찾아 멀리서 오는 데서도 보람을 느끼고 있다.
공단지역인 만큼 지역주민은 상당수가 공장근로자들이다. 그래서 평화의원은 이들이 자신들의 건강문제인 직업성 질환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예방에의 관심을 높일 수 있도록 의원내에 「산재직업병 상담실」을 만들어 상담과 교육을 실시하기도 한다. 이것이 계기가 돼 지역 사업장들이 저마다 산업안전보건 관련 부서를 신설했고 이들 관련부서 책임자들도 「산재없는 일터 모임터」란 모임을 만들어 활동중이다. 특정 분야나마 의학지식을 나눠 일반인들이 스스로 대처하게 돕고 있는 것이다.
○행려병자 수용시설
이제는 건강상담과 보건교육의 주대상을 소외된 사람과 근로자에서 일반 주민들에게까지 넓히고 있다. 질병은 개인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환경·직업·사회발전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의사의 역할은 아픈 사람만 치료해주는데서 끝나지 않고 질병을 미리 막는 것까지 포함한다고 의대에서 배운대로 직접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평화의원은 환자 진료 부분의 권위주의 탈피는 물론 운영도 민주적으로 하고 있다. 현재 기독청년의료인회의 의사 3명과 평화의원 의사중 1명,상담요원 1명,임상병리사 1명 등 6명이 이사회를 구성해 병원을 끌어가고 있다.
올해에는 지역주민중 3명을 위촉,운영에 참여토록 할 예정이다. 지역사외회에 뿌리내린 공공적 성격의 기관으로서 의원의 자리매김을 한다는 것이다.
치과에서도 이런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푸른치과라는 독특한 이름의 치과의원은 88년 7월 서울 가리봉동에 생긴 것이 효시다. 이후 같은 이름,같은 성격의 치과의원이 89년 8월에 군포에,91년 4월 성남에,91년 6월에는 부산에도 생겼다. 이들은 직접적 관련은 없으나 공통적으로 「지역주민들과 소외받는 사람들이 편안하게 드나들 수 있는 치과를 만들자」가 모토였다. 소외계층의 부담을 덜어주고 현장을 찾아 예방의 중요성을 교육하면서 수준 높은 진료를 하자는 것이 취지다.
가리봉동 푸른치과의 경우 30여명의 치과의사들이 3천만원의 기금을 모아 개원했는데 현재 전동균(36)·김진숙(29)·이상윤(27)씨 등 3명의 치과의사가 근무하고 있다.
이들 역시 의사에게서 흔히 보게되는 권위주의를 멀리하고 구강보건에 관한 상담외에도 구강검진과 교육을 위한 현장방문을 주요활동으로 하고 있다.
슬라이드 상영 등을 통해 어려운 구강건강보건에 대한 지식을 쉬운 말로 지역주민들에게 전달,스스로 건강을 지킬 수 있게 돕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구강검진은 물론 개인별로 구강건강 상태와 문제점,예방방법과 치료의 필요성 유무 등을 상세히 적은 통지서까지 보내준다.
이런 활동은 지역내 사업장근로자는 물론 지역내에 있는 5개 비영리 탁아소의 아이들과 부모들에게도 확대실시되고 있다. 탁아소 어린이들에게는 검진과 함께 충치예방을 위해 불소용액 양치를 권하고 불소용액도 나눠준다.
문턱없는 병원이자 의사인 셈이다. 「진료비는 낮게,의료수준은 높게,예방활동은 폭넓게」라는 모토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기성의학계에 수범
얼마 안되는 수익금은 대부분 구강검진과 교육비용으로 지출된다. 김진숙씨 『푸른 치과의 활동을 단순히 봉사활동으로만 보지 말아달라』고 부탁한다. 지역주민이나 근로자들에게 구강보건에 대한 기본문제를 교육해 자기건강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게 키우는 것,즉 보건교육과 지역주민에 뿌리박은 예방위주의 의료활동이 더욱 주가 되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근무의사들에게 강요되는 희생이 너무 커 후배들에게 부탁하기가 미안하다는 말도 했다.
젊은 의료인들이 벌이는 이런 활동들은 80년대 외치던 「민중속의 지식인」을 의료인으로서 실천해 보고자 하는 것이고,이제 그 방향이 잡혀 가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평화의원 임 원장은 『이런 활동들은 우리들이 가진 기술·지식·학문으로 사회 구석 어두운 곳에 도움을 주면서 주민들에게 뿌리내리는 현장의 지식인이 되고자 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아울러 의료계 내부에서 보자면 이기주의·권위주의를 버리고 자기 직업의 공공성과 도덕성을 찾으면서 학교때부터 가졌던 우리 의료의 문제점에 대한 대안을 스스로 찾고 행동해 나가는 것이라고 했다.
의학과 의술을 단지 생업수단으로만 보지않고 자이실현 수단으로 보는 젊은 의료인들의 이같은 활동은 돈이나 자리,개인의 행복에 집착하는 흔한 세태에 신선한 충격을 주기에 충분할 것이다. 또한 이들이야말로 신명나는 사회를 위한 첨병으로 불려도 좋을 것이다.<채인택기자>
◎“보수보다 보람으로 진료”/의학계 미래상 제시 안성한의원/예방의료·보건교육·봉사 3박자 실천
한의사가 왕진가방을 들고 직접 농가를 방문해 진맥을 하고 『어르신네는 콩팥이 나쁘고 혈압이 높으십니다. 그러니 음식을 너무 짜게 드시지 마십시오』라며 충고하고 다닌다.
경기도 안성 읍내에 자리잡은 안성한의원 최정호원장(31). 전주 출신으로 87년 원광대 한의과를 졸업한 그가 연고도 없고 이른바 「목도 좋지않은」이곳에서 개원하게 된 것은 여러모로 이유가 있어서다.
이 한의원은 현재도 이웃 고삼면에서 2주일에 한번씩 주말의료활동을 펴고있는 안성진료소에서 비롯된다. 이 진료소는 86년 현지에 농촌 의료봉사 활동을 온 연세대 의대팀이 농촌지역 봉사활동을 정기화 하면서 만든 것. 현재는 학생차원의 봉사에서 확대,의사 6명·한의사 6명·약사 1명·간호사 등 20여명의 전문의료인이 회원으로 봉사활동을 펴고있다.
안성진료소를 통해 활동을 하던 회원들은 지역농민들에게 지속적이며 직접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현지에 양·한방을 겸하는 상설진료기관을 세워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으고 기금을 모았다. 92년 11월8일 회원이던 최씨가 우선 25평 규모의 한의원을 열었다. 현재 군의관으로 근무중인 의사 1명이 복무를 마치는대로 우리나라 최초의 양·한방 공동체제의 농촌의원이 탄생할 예정으로 있다.
최 원장은 『안성한의원은 앉아서 찾아오는 환자만 보는 치료위주의 진료를 탈피하는 것을 지향한다』며 이를 위해 우선 『지난달부터 각 지역 영농후계자들과 연결해 앞으로 매주말 면단위로 순회진료에 나서고 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는 2주에 한번씩 농촌진료를 위해 서울에서 오는 진료회 회원들과 함께 진료소 활동을 해왔는데 한의원이 궤도에 오른 지금 독자적으로 현지주민을 직접 찾아나서고 있다. 농가에 들러 검진하고 상담을 받는 한편,건강관리 교육을 실시해 의료의 이상형인 예방의료,주민에 대한 보건교육,지역사회 의료를 몸소 실천하는 것이다.
특히 노인이 많고 장시간 작업·농약문제 등으로 각종 만성병이 많은 지역적 특성에 한방이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이들에게 맞는 검진과 교육내용도 마련해놓고 있다.
한의원 운영은 물론 최 원장이 간호사와 보조원을 두고 직접한다. 그러나 한 개인만의 활동공간은 아니다. 개설당시부터 의료인들인 진료회회원 20여명과 후원회회원 20여명으로부터 물심양면 지원을 받았고 앞으로 운영도 서로의 협조 아래 이뤄질 예정이다. 말하자면 개인차원의 희생과 활동에 머물지 않고 의료인 집단이 하나의 농촌한의원,나아가 앞으로 들어설 양·한방 공동농촌의원을 만들어 운영하는 셈이다.
치료의료와 예방의료의 균형,지역사회에 뿌리박는 의료,봉사 등 3박자를 이뤄보겠다는 의료인들의 오랜 꿈이 젊은 의료인들 손에 의해 농촌현장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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