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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한국군 오늘 정오까지 철수 안 하면 한국인 인질 18명 살해하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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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아프가니스탄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한국인 21명(한국 정부 확인, 납치단체는 18명 주장)이 19일 탈레반 무장세력에 납치됐다. 자신들이 납치했다고 주장하는 무장세력은 아프간에 주둔 중인 한국군의 철수를 요구했다.

탈레반의 카리 유수프 아마디 대변인은 20일 AP통신에 "21일 낮 12시(현지시간.한국시간 21일 오후 4시30분)까지 한국군이 철수하지 않을 경우 한국인 인질을 모두 살해하겠다"고 밝혔다. 아마디 대변인은 "한국인 여성 15명과 남성 3명을 억류하고 있으며, 이들의 신분과 아프간 내 활동에 대한 조사를 마쳤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인 인질들의 운명은 한국군 철수 여부에 달려 있다"고 협박했다. 그는 또 18일 납치해 억류 중인 독일인 2명에 대해서도 "독일군이 즉각 철수하지 않으면 살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독일 dpa통신은 무장세력이 정한 시한인 21일 낮 12시는 한국.독일.아프간 정부 관계자들이 협상 테이블로 나오는 시간을 의미한다고 보도했다. dpa는 "무장세력은 세 나라 정부와 자신들의 요구사항에 대해 논의하기를 원하고 있으며, 21일 낮까지 자신들에게 연락을 취하지 않을 경우 상황은 매우 어려워질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전했다.

납치된 한국인들은 경기도 성남시 분당 샘물교회 배형규(42) 목사와 신도들이다. 샘물교회에 따르면 13일 아프간에 들어간 이들은 19일 "카불을 떠나 칸다하르로 간다"는 전화통화를 마지막으로 소식이 두절된 상태다. 이들은 칸다하르의 힐라병원과 은혜샘유치원에서 봉사활동을 한 뒤 23일 귀국할 예정이었다.

아프간 정부는 20일 "19일 오후(현지시간) 한국인 23명이 전세버스를 빌려 수도 카불에서 남부 칸다하르로 가던 중 무장세력에 의해 납치됐다"고 피랍 사실을 확인했다. 그는 납치 지점이 카불에서 남쪽으로 175㎞ 떨어진 가즈니주 카라바그라고 밝혔다. 뒤늦게 풀려난 버스 운전기사 아마드자이는 "버스에는 18명의 여성과 5명의 남성이 타고 있었다"고 말했다. 가즈니주 경찰 당국은 납치 현장에서 버스를 발견하고 즉각 긴급 수사팀을 설치, 수백 명의 군.경찰을 동원해 주변 지역을 수색하고 있다.

외교부는 김호영 2차관을 본부장으로 하는 정부 합동 국외 테러본부를 설치하고, 현지 대사관에 대책본부를 설치했다. 가즈니주의 미라주딘 파탄 주지사는 "한국인들이 분쟁 지역인 아프간에 온 이유를 모르겠다"며 "그들은 우리 정부에 입국 사실을 통보하지 않았고, 경찰.군 당국에 보호를 요청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아프간은 정부에서 여행 자제를 요청하고 있는 여행 제한국"이라며 "주한 아프간 대사관에 당분간 한국인에게 비자를 주지 말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올 2월 아프간 전역을 여행 제한 지역으로 정했고, 아프간과 파키스탄 접경 북서 지역인 카이버 패스 지역은 육로 이동도 금지하고 있다.

아프간에는 현재 한국군 동의.다산부대(210여 명) 외에 교민 38명과 한국국제협력단(KOICA) 관계자 7명, 동서문화교류재단.한민족복지재단 등 10개 비정부기구 관계자 86명 등 약 200명의 한국인이 체류 중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아프간 주재 한국대사관 측은 가즈니주(州)정부를 포함해 납치 무장단체와 연결될 수 있는 다각적 채널을 찾고 있으며 직접 접촉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 관계자는 탈레반 대변인이 한국군의 철수를 요구한 것과 관련, "현지 주둔 중인 다산.동의부대는 올해 말 철수할 예정"이라 환기하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청와대와 외교부, 국방부, 국정원은 정부 대책반을 구성해 긴박하게 움직였다.

박소영.정재홍 기자

◆탈레반=1994년 아프가니스탄 남부 칸다하르에서 수니파 이슬람 원리주의 학생들이 중심이 돼 결성한 강경 수니파 무장 정치세력이다.

◆피랍자 숫자 혼선=외교부 대변인은 "남자 5명, 여자 16명 등 21명"이라고 밝혔다. 아프간 정부 대변인은 "한국인은 23명"이라고 밝혔다. 피랍 직후 풀려난 운전기사는 피랍자가 남성 5명, 여성 18명이라고 확인했다. AP.AFP는 탈레반 대변인의 말을 인용해 18명이라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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