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막집보다 더 많은 무덤(죽음보다 못한 삶…에티오피아에 가다: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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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세시간 걸어가 흙탕물 길어서 식수로/1주일에 2.5㎏ 식량받아 허기 달래/얼굴 뒤덮은 파리떼 쫓을 힘도 없어/본사 김경희특파원 현장취재
○에티오피아 개관(90년)
▲면적:1백25만평방㎞
▲인구:5천97만명
▲산업:커피재배·축산
▲위치:아프리카 동북부 북위9도
▲국민소득:1백20달러(연간 1인당)
▲문맹률:34%
▲종교:에티오피아정교(40%) 회교(45%)
지옥을 피해 또 다른 지옥으로 온 사람들이라고나 할까.
허기와 절망으로 탈진한듯 늘어져있는 난민들을 빼면 도대체 살아있는 것이라곤 아무 것도 안보이는 에티오피아 난민촌 고데. 소말리아와의 국경이 멀지않은 에티오피아 남동부의 이 소도시에서는 푸른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 없는 황량한 모래들판에 이따금 회오리 바람이 불어 잠시 모래기둥을 말아올리는 모습이 그나마 가장 생동감(?) 있는 풍경이다.
사방을 둘러봐도 더 이상 말릴거라곤 아무것도 없을성 싶은데 태양은 어쩌자고 이렇듯 쏟아져 내리는걸까. 지난 3월21일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16인승 프로펠러 비행기로 3시간쯤 날아가며 고데를 굽어보며 느꼈던 가뭄의 혹독함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문짝도 없는 소형버스에 올라 뽀얀 모래먼지를 일으키며 찾아가 확인한 난민촌의 기막힌 삶에 비하면….
『정상체중의 70%에도 못미치는 극도의 영양실조 어린이와 그 부모들만 따로 이 구호소에 받아들여 3시간 간격으로 하루 일곱차례씩 영양식을 먹입니다. 일주일에 두차례씩 몸무게를 재 어린이의 몸무게가 정상아의 85%에 이르면 일반 난민수용소로 돌려보내기 때문에 부모들은 뼈와 가죽만 남은 자녀가 조금씩 살이 오르면 오히려 걱정하지요.』
난민촌을 직접 들여다 보지 않고서야 이 긴급구호소 관리책임자 슈크리 무하르 세임씨(33)의 얘기를 무슨 수로 이해할 수 있을까.
아기는 아기대로,엄마는 엄마대로 맥없이 눕거나 기대앉아 파리떼가 새까맣게 얼굴을 뒤덮어도 쫓으려하지 않는다. 표정이 굳어버린 엄마는 낯선 외국인들이 카메라를 들이대는게 내키지 않는듯 옷자락으로 슬며시 아기를 가리며 외면할뿐 싫다는 말조차 할 기운이 없는 것 같았다. 통역이 무슨 말을 시켜도 대개는 묵묵부답.
○난민수 3만5천명
고데지역에 몰려든 난민들은 3만5천명쯤 된다지만 아무도 그 정확한 숫자를 모른다. 날마다 새로운 난민들이 물 한방울 없이 바짝 말라버린 호수나 강을 건너 찾아오고,수많은 난민들이 배고픔과 결핵·말라리아 등의 질병으로 끝없이 숨지기 때문이다.
마침 소설가 박완서씨와 영화배우 안성기씨를 포함한 한국 유니세프(UNICEF·국제연합아동기금) 방문단 일행이 난민촌 어귀에 들어서니,울타리삼아 두른 나무들만큼이나 바짝 마른 여인들이 밀기울죽 같은 것을 끓이고 있다. 방금 난민중 한사람이 그 지긋지긋하도록 고통스런 일생을 마감했는데,그를 위해 무덤을 팔 사람은 다소나마 기운을 차려야 하므로 이웃들이 배급받은 통밀을 한줌씩 내놓았다는 것. 한사람이 일주일에 2.5㎏씩 받는 난민구호 식량은 겨우 목숨을 이어가기에도 아슬아슬한 정도지만 고단한 삶을 마감한 이웃을 위해 그들은 이렇게 서로 나누고있다.
무덤이래야 난민촌 울타리에 잇대어 강아지 무덤쯤 될성싶게 한뼘 높이로 솟아오른 둥그스름한 봉분들이 여기저기 깔려있는데,그 숫자가 산사람들의 거적두른 움막집보다 한결 많아보인다. 무덤과 움막의 거리만큼이나 이곳 난민들에게 삶과 죽음은 너무도 가까이 있다.
○교과서도 없이 수업
이들 난민들의 대부분이 그렇듯,할림 압디씨(30)는 지난 77년 에티오피아와 소말리아의 전쟁때 소말리아로 피해갔다가 최근 소말리아 내란을 피해 다시 에티오피아로 돌아온 난민. 30년 가까이 난민으로 이리저리 떼밀려온 탓인지 에티오피아정부 및 외국 구호기관들로부터 기대하는게 고작 『아이들이 먹고싶어 하는 단것을 배급받는 일』뿐이란다.
40세쯤 돼보이는 한 여인은 아홉남매(에티오피아의 평균자녀 수는 7명 이상) 가운데 첫 아들이 얼마전 설사로부터 해방되자 이번엔 막내딸이 아무것도 먹지못한채 토하고 설사한다며 손짓 발짓으로 하소연하기에 유니세프 방문단 일행을 안내하던 MSF(국경 없는 의사들) 소속 의사에게 그 아기를 진찰해달라고 부탁했다.
『아기의 영양상태가 매우 좋지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 설사에 걸린건 아닙니다. 아기가 몹시 아파 생명이 위독하면 그 가족 모두 긴급구호소에서 함께 지내며 최소한 일반 난민촌 보다는 나은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걸 알기 때문에 아기의 증세를 과장하는 예가 흔하지요.』 어떻게든 긴급구호소에 수용되려고 애쓰는 경우가 많다며 그 젊은 의사는 꽤나 안쓰러운 표정이다.
이곳 난민들이 식수로 삼는 것은 뙤약볕 내리쬐는 모랫길을 한시간반쯤 걸어가야 하는 쉬벨강의 더러운 물. 악어가 숨바꼭질 하는 이 강의 싯누런 흙탕물은 난민들,특히 저향력이 약한 어린이들을 설사라든가 그밖의 전염병으로 괴롭히다 목숨을 앗아가기 일쑤다. 유니세프의 지원으로 강물 정수장치를 마련했지만 긴급구호소의 난민들을 위해 쓰기에도 빠듯하므로 일반 난민들에게는 차례가 돌아가지 않는다.
큰 구경거리가 돼버린 유니세프 방문단 일행을 떼지어 따라다니며 사진찍히기를 자청하는 어린이들을 보자 문득 학교가 궁금해졌다.
『학교라니요?』
통역을 도와주던 난민중 한사람이 어이없다는 얼굴로 되묻더니 책·걸상이나 교과서도 없이 코란만 암송시키는 코란학교가 딱 하나 있다며 한 움막을 가리킨다. 마른 나뭇가지로 얼기설기 둥글게 엮은 한평 남짓한 공간에 몇몇 어린이들이 무심한 얼굴로 앉아있는 「코란학교」.
이 난민촌의 어린이들은 온종일 무얼하고 지내는걸까. 대부분의 어린이들이 그저 몸이 아픈 엄마 대신 강에 가서 물을 길어오는 정도 말고는 난민촌 주위에서 서성거리며 논다고들 했다.
『이 많은 난민들이 모두 평생토록 구호식량에만 얹혀 살게 할 수는 없을텐데,이들을 자립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까?』
○농사짓기 꿈도 못꿔
눈시울을 붉히며 난민촌을 돌아보고난 박완서씨가 콘선(CONCERN)이라는 국제구호단체 관계자에게 물었다.
『당장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려내는 일만 해도 너무 벅차 댐을 만들어 농사라도 지을 수 있게 하는 등의 장기적 사업은 아직 상상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유니세프의 지원으로 MSF·CONCERN 등 국제기구들이 지난해부터 적극적인 활동을 시작한 이후로는 매일 수백명씩 숨지는 최악의 상황에서 일단 벗어난 셈이지요.』
물론 94년께서부터는 관개시설사업 등 에티오피아 정부의 농업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한 사업들도 병행할 계획이지만 아직은 「기아와의 전쟁」이 더 시급하다고 덧붙인다.
도대체 이런 난민들에게 희망과 미래를 심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끝이 안보이는듯한 난민 구호사업이 왠지 부질없는 일은 아닐까 하는 느낌도 없지않았다.<화보=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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