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정치인들 '소포 폭탄' 공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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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벨기에 브뤼셀의 유럽의회 소속 보수파인 한스 게르트 푀터링 의원 앞으로 5일 소포가 배달됐다. 의원 보좌관이 소포를 뜯자 폭발음과 함께 불길이 치솟았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다. 이날 브뤼셀 유럽의회 사무실에도 의심스러운 소포가 배달됐지만 폭발물 처리반이 처리했다.

같은날 영국 맨체스터에서 유럽의회 의원인 영국 사회당 게리 티틀리 의원 사무실에도 소포가 배달됐다. 소포를 개봉하자 작은 '폭발'이 있었다. 역시 부상자는 없었다. 가구만 그을렸을 뿐이다. 소포들은 모두 인화성이 강한 제초제나 분말이 든 통이 포장재와 연결돼 포장을 뜯으면 폭발 또는 불이 나도록 장치돼 있다.

유럽연합(EU)의 정치인들이 잇따른 소포 폭탄 테러에 떨고 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연휴에 시작된 유럽의 소포폭탄 사건이 5개국 7건으로 확산되고 있다. 앞서 로마노 프로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지난해 12월 27일)과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유럽중앙은행(ECB) 자크 클로드 트리셰 총재(29일)도 소포 폭탄을 받았었다.

BBC방송은 경찰 소식통을 인용, "소포 폭탄이 이탈리아의 무정부주의자의 소행일 공산이 크다"고 보도했다. 지금까지 EU에 배달된 소포폭탄 네개는 모두 이탈리아의 북부 볼로냐시(市)가 발신지다. 이탈리아의 내무부도 "우리는 지난 두달간 '무정부주의자 봉기'와 관련된 정보를 캐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프로디 위원장에게 소포폭탄이 우송된 직후 '비공식 무정부주의자 연맹(IAF)'이라는 한 아나키스트 단체는 이탈리아 일간지에 편지를 보내 "신유럽 질서라는 민주주의 쇼를 강압하는 통제기구를 겨냥했다"며 자신들이 한 일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EU 보안당국은 잇따라 소포폭탄이 발견되자 경비와 우편물 검색을 강화하고 잇다.

특히 EU 기구가 집중돼 있는 브뤼셀 경찰당국은 유럽의회 건물 외곽에 소방차와 폭발물 처리반을 상주시키는 등 검색을 강화하고 있다. 독일 사법당국도 유럽경찰(유로폴) 및 EU와 공조해 범행 배후 세력 추적에 나서는 등 수사를 본격화하고 있다.

벨기에 우편당국은 우편물을 함부로 개봉하지 말 것과 발신지를 이탈리아 볼로냐로 하는 의심스러운 편지를 발견할 경우 경찰에 신고해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유럽의회 산하 기관들은 연말연시 기간 중 10만여통의 편지와 소포를 접수하고 있다. 패크 콕스 유럽의회 의장은 "유럽의회는 모든 사무실에 대한 보안검색을 한층 강화해 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최원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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