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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구 늦추는 의원 방문/정용백 사회2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철길을 따라 늘어선 낙동강마저 슬픔에 젖어 흐느끼는 29일 오후 2시쯤. 사고지점 부근 부산시 덕천2동 구포열차사고 대책본부 사무실에 전화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민주당 진상조사단 일행이 구포다리를 막 지나 대책본부 사무실로 다가오고 있다는 카폰 긴급연락이 전해진 것이다. 동시에 정문화부산시장·강신태철도청장 등 복구작업에 매달려야 할 관련기관장들이 『나가서 기다리는게 예의가 아니냐』며 줄줄이 철길옆 골목길로 달려나갔다.
진상조사단이 들어서자 「깍듯이 영접」하느라 분주했다.
정 시장·강 청장의 브리핑이 끝나기 무섭게 이기택대표가 책상을 치며 『도대체 당신네들은 뭣들 하는 사람들이냐』고 호통까지 쳤다.
이들은 10여분간 사고현장을 둘러본뒤 『국회차원에서 다루겠다』며 훌쩍 떠나버렸다.
이같은 의원들의 진상조사·격려방문은 민주당의원뿐 아니었다. 의원배지를 단 「각급의원」들이 온종일 줄을 이을 정도였다. 유흥수·김진재·김형오의원 등 국회 교체위의원들과 문정수·허삼수의원 등 민자당 진상조사단도 잇따라 들이닥쳐 각종 자료요청과 브리핑 보고 등으로 대책본부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우병택의장 등 부산시의회 의장단일행 역시 이곳을 찾아 『우리지역 문제는 우리가 앞장서 해결하겠다』며 국회의원에게 주도권을 빼앗길 수 없다는 태세였다.
이밖에도 개인자격으로 의원 서너명과 구의회의원들,각 기관장들이 방문해 생색내기에 바쁜 모습을 보였다.
국정검사 등 각종 감시·감독권한과 의무가 있는 의원들이 큰 문제가 있는 현장을 살펴봐야 하겠다는데 이의가 있을 수는 없다. 그러나 평소 관심을 두었더라면 이같은 엄청난 피해를 줄일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사후약방문격에도 못미치는 생색내기로 피해복구에 차질만 초래케한데서야 말이 안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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