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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살빼기」 속타는 민자당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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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설득작업 한창… 전출도 난관많아/지구당 축소개편… 정당에 새바람
『민추협시설부터 「김영삼대통령」을 꿈꾸며 최루탄과 닭장차도 마다않고 뛰었습니다. 그동안 아내는 줄곧 파출부로 일했는데,요새 주위에서는 「아직도 파출부일을 하느냐. 청와대엔 언제 들어가느냐」고 말한답니다. 청와대는 커녕 실직을 당하게 됐으니 이거 창피하고 앞길이 막막해서….』
○연줄동원 구명운동
『민정당때 공채로 들어와 집권당당료로 일하면서 나름대로 보람을 느꼈고 업무 노하우도 쌓았다고 자부합니다. 우리 부국장급 65명중 45명이 감원대상입니다. 70%가 「숙정」되는 일은 대한민국 어느 집단도 당해 본 적이 없어요. 일손을 사실상 놓고 있는데도 저녁에 집에 가면 푹 쓰러질 정도로 하루하루가 그렇게 고달플 수가 없습니다.』
대량 감원사태를 맞아 민자당 사무처직원들은 소속계파를 막론하고 나름의 사연들을 털어놓으며 답답해 하고 있다.
『「정권창출 일등공신 부당해고 웬말이냐」는 구호를 걸고 데모라도 하자』는 말이 농담처럼 여겨지지 않는다. 간부는 간부대로,하위직은 하위직대로 저마다 계보보스와 연줄을 총동원해 구명운동을 해보지만 전체직원(1천7백26명)중 절반 가까운 8백6명을 자른다는 방침은 이미 기정사실.
○명단 이미 나돌아
민자당은 19일 오후 당사에서 인사위원회(위원장 최형우사무총장)를 열어 전출대상자를 점검했다. 인사위원 12명중 권해옥1사무부총장·조부영2사무부총장·백남치기조실장·임사빈민원실장 등 4명은 이날밤 서울시내 호텔에서 따로 밤새며 마무리작업을 했다. 권·조부총장의 경우 20일아침 지역구로 훌쩍 떠나 버렸다. 「악역」을 맡은 당직자들도 괴롭기는 마찬가지인 것이다. 최형우사무총장은 『나 자신이 33년간 당료생활을 하면서 이런 일을 가장 많이 당해본 사람』이라며 『요새 입술이 바짝바짝 탄다』고 말했다. 최 총장은 19일 오후 오랜 정치동지이자 지난해 대선당시 김영삼후보의 경호책임자였던 한 민주계 간부를 불러 설득했다. 『당신이 앞으로 국회의원을 할 가능성이 있다면 내가 당에 남도록 밀겠다. 그러나 그럴 여건이 아니다. 지금 새 인생을 찾는게 차라리 낫지 않겠느냐』고 간곡히 설명했다고 한다. 『야당생활을 하느라 함께 탄압받던 시절을 죽 얘기하며 호소하는데 절말 답답해 미치겠더라』고 최 총장은 말했다. 최근의 인사에서 정부부처 공직에 진출한 한 민주계인사는 『지금 청와대나 정부에 들어간 민주계출신들은 당에 남은 옛 동료들 사이에서 원망의 대상이 돼있다』며 『귀가 따가워 당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고 있다』고 털어 놓기도 했다.
당내에는 이미 「감원대상」명단이 발표이전부터 나돌았다. 일선 여직원들까지 유부녀·연장자순으로 감원한다는 소문에 동요된지 오래다. 『차라리 1년정도 시한을 두고 한두명씩 조용히 타기관에 전출을 알선해 주든가 하지 대상숫자부터 언론에 발표해놓고 자른다면 행여 취직이 된들 창피해서 어떻게 그 기관에 다니겠느냐』는 불만도 터져나오고 있다. 민자당의 감량방침에 동조하는 국민여론은 잘 알지만 당하는 쪽의 입장도 생각했어야 한다는 말이다. 다른 기관에의 전출도 쉽지 않다. 해당기관의 반발도 있고 전문성도 문제다. 야당가에서 정치인 경호를 주로 맡았던 한 유도 유단자출신은 『혹시 청와대경호실에 들어갈수 있을까 해서 알아 보았더니 채용여부를 떠나 경호실 업무자체가 워낙 어렵더라』며 『총도 쏠줄 모르는 내가 업어치기 실력만으로 버틸수 있는 동네가 아닌것 같았다』고 한숨을 쉬었다.
○민주당에도 파급
최 총장은 『하다못해 막노동판이라도 주선해 밥은 먹게 해주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이런 민자당의 분위기는 이기택대표가 『우리도 감량하겠다』고 밝힌 민주당에도 파급되고 있다. 여야정당의 살빼기 작업은 한동안 갖가지 애환이 꼬리를 물 전망이다.<노재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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