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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팔이사건 추적 당시 두 검사의 수사비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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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6개월간 은행뒤져 「안기부 돈줄」 확인/폭력배들 집결 호텔 「지휘본부」 단정/전표수만장 추적 「네 이씨」 물증잡아/이택희씨 검거땐 야채장수로 위장도
○박윤환·조근호검사
사건 발생 6년만에 안기부 개입 전모가 드러나 장세동 전안기부장 구속으로까지 이어진 통일민주당 창당방해사건(일명 용팔이 사건)은 당시 두 수사 검사의 2년에 걸친 끈질긴 추적의 결과가 뒤늦게 사건해결에 결정적인 단서가 된 것으로 밝혀졌다.
자칫 「역사의 블랙홀」속으로 영원히 빨려들뻔했던 이 사건의 참모습을 백일하에 드러낸 숨은 공로자는 당시 서울지검남부지청 수사검사였던 박윤환검사(서울지검 공안2부)와 조근호검사(스페인 연수중).
당시 검찰과 수사 관계자들에 따르면 두 검사가 본격적으로 사건에 뛰어든 것은 경찰에 검거된 용팔이 김용남씨(43)가 남부지청에 넘겨진 88년 10월께.
당시 경찰수사는 용팔이와 신민당 청년부장 이선준씨(50) 등 「말단배후」의 신원만 파악한 정도였을뿐 배후세력에 대한 단서라곤 종이조각 하나없는 말그대로 「맨주먹」 상태였다.
○사인·전화번호 발견
남부지청 김문곤계장은 『당시 박 검사는 정치폭력의 본질을 꿰뚫기 위해 「야당정치 40년사」 등 정치관련 서적을 5∼6번이나 통독할 정도로 열의를 갖고 덤볐다』고 술회했다.
본격수사에 착수한 수사팀은 사건 당시 폭력배들이 서울리버사이드호텔에 집결했었다는 진술에 착안,지휘본부로 쓰였을 것으로 보이는 이 호텔의 전표와 수표 등 수만장을 한달간이나 뒤진끝에 커피숍·사우나 계산서에서 전호청련 총재 이승완씨(51)와 전신민당 총무부국장 이용구씨(59)의 사인을 찾아내고 시외전화기록부에서 이택희·이택돈 전의원의 카폰전화번호를 알아내 이들이 사건에 관련됐다는 결정적인 단서를 얻어냈다. 수사팀은 이와 함께 숙박료로 지불된 수표를 발견,모세혈관처럼 얽힌 「검은돈」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며 6개월간 무려 50여개의 은행 및 증권회사를 뒤졌다.
이 과정에서 수사팀은 국세청직원들까지 동원했으나 자금이 안기부로부터 흘러나왔다는 정황이 조금씩 드러나자 이들은 도중에 손을 들고 말았다.
○“신변위험” 중도포기
당시 수표추적에 참가한 국세청직원은 『돈의 근원이 안기부 계좌인 것이 전점 명확해지자 신변에 위험이 생길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도저히 추적을 계속할 수 없었다』고 실토했다.
수사팀은 결국 천신만고끝에 5억여원의 뭉칫돈이 최종적으로 안기부 계좌로부터 나왔다는 충분한 물증을 확보할수 있었다.
최근 두 이 전의원들도 이 증거가 제시되자 장세동 전안기부장의 지시사실을 순순히 자백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삿짐 트럭을 빌려
그러나 이 돈이 실제로 창당방해자금으로 뿌려졌음을 증명키 위해서는 사건의 연결고리인 두 이 전의원을 검거,안기부의 지시에 대한 구체적인 자백을 끌어내야 했다는 것.
먼저 이택희씨 가족들의 행적을 꾸준히 체크했던 수사팀은 이씨가 동선동에 거처를 마련해 놓고 은신중이라는 「감」을 잡았다.
그러나 단지 동네만 확인한 수사팀은 이씨가 장기간 숨어지내기 위해서는 단독주택 또는 아파트를 장기간 빌릴수 밖에 없어 주민등록대장상 빈집에 숨어있을 것이며 여건상 전화는 최소한 설치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이에 해당하는 집을 찾아내는데 성공,은신처를 발견했다.
수사팀은 이삿짐센터에서 빌린 트럭을 이용,검거조를 야채장수로 위장시켜 은신처 옆에서 기다리게 한 끝에 결국 딸의 승용차로 외출하려는 이택희씨를 붙잡았다.
이택돈씨는 당시 수사팀들이 서울 문정동 훼밀리아파트 앞에 월세방까지 얻어놓고 한달반이나 교대로 감시했으나 불운하게도 붙잡지 못했고 심지어 이씨의 부인을 차로 미행중 경부고속도로와 양재대로에서 큰 교통사고를 낼뻔하는 위험도 겪어야 했다.
○“특수부 수사의 전형”
조검사가 89년,박검사가 90년 남부지청을 떠날때까지 이루어놓은 성과에 대해 검찰 안팎에서는 『당시 수사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특수부 수사의 전형』이라고 높이 평가하고 있다. 당시 남부지청 특수부장이던 김봉환변호사도 『당시 두 수사검사가 부족한 인원과 수사비에도 불구하고 열의를 가지고 최선을 다했다』고 강조했다.<남정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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