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13 DAY>볼가강 흐르는 '이슬람 도시'-카잔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8호 14면

회교 사원 ‘쿨 샤리프’

Kazan-카잔

기차가 우랄산맥을 넘는다. 유럽과 아시아를 가르는 우랄산맥이기에 흔히 높고 웅장한 산봉우리를 연상한다. 하지만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지나는 지역은 높이 400m에 불과한 고원지대다. 그래서 언제 산맥을 넘었는지도 모르게 지나쳐버린다.

30일 아침 도착한 곳은 ‘러시아의 이슬람 도시’ 카잔. 역사는 11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슬람교도인 불가르인이 이 지역을 중심으로 국가를 이루었다. 이후 몽골의 침입을 받아 그 영향권으로 들어갔다가 16세기 중반 러시아에 합병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래서 이곳엔 이슬람 문화와 러시아 정교 문화가 뒤섞여 있다.
‘타타르인’으로 불리는 이들은 확실히 동양적 모습이지만 우리와는 어딘가 모르게 다르다. 원래 몽골계였지만 수세기에 걸쳐 혼혈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110만 명이 살고 있는 카잔에 80개가 넘는 종족이 모여 있다고 하니 피가 섞이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카잔의 자존심 슈움비케 탑

카잔의 심장부는 크렘린이다. ‘크렘린’ 하면 모스크바에 있는 궁전을 떠올리지만 이 말은 원래 도시 방어를 위해 지어진 성채를 일컫는 일반명사였다. 그래서 러시아의 오래된 도시들엔 어디에나 크렘린이 있다. 그중에서도 카잔의 크렘린은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정도로 아름답고 역사적 가치가 높다.
버스에서 내리자 화려한 타타르 전통의상을 차려입은 아리따운 처녀가 ‘착착’이라 불리는 전통음식을 접시에 들고 일행을 맞는다. 우리의 쌀강정을 닮은 꿀과자다. 손님을 환대할 때 내놓는 음식이란다. 과자 몇 개를 집어들고 하얀색 성벽으로 둘러싸인 성 안으로 들어섰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하늘로 솟아 있는 러시아 정교회 성당과 회교사원이 눈에 들어온다. 특히 하얀색 대리석 벽과 둥근 푸른색 지붕을 가진 ‘쿨 샤리프’란 회교사원이 인상적이다. 유럽에서 가장 큰 회교사원이란다. 더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니 대형 탑이 솟아 있다. 크렘린에서 가장 유명한 ‘슈움비케 탑’이다. 높이 60m.
슬픈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 탑이다. 1552년 몽골계 카잔한국을 함락시킨 러시아 차르 이반 뇌제(雷帝)가 아름다운 황후 슈움비케에게 청혼했다. 황후는 자신의 청을 하나 들어주면 결혼하겠다고 말했다. 일주일 안에 도시에서 가장 높은 탑을 세워달라는 것이다. 차르는 서둘러 탑을 세웠다. 탑이 완성되던 날 황후는 그 꼭대기에 올라가 어린 아들을 안고 뛰어내려 자살했다고 한다. 슈움비케 탑은 지금까지도 타타르인의 자존심을 상징한다.

볼가강으로 가는 길 옆에 1804년 건립됐다는 카잔 대학이 보였다. 모스크바대·페테르부르크대와 함께 러시아의 손꼽히는 명문이다. 볼가강 선상 투어에 나섰다.
서부 러시아의 중심부에서 시작해 카스피해로 흘러 들어가는 볼가강은 러시아인들이 ‘어머니’로 부를 정도로 친숙하게 느끼는 강이다. 유람선에 오르자 시원한 강바람이 불볕더위를 식혀준다.

톨스토이가 카잔 대학을 중퇴한 까닭은

톨스토이는 16세 때 큰아버지가 주지사로 있던 카잔에 와 3년 동안 카잔 대학을 다녔다. 타고난 카사노바였던 톨스토이는 카드놀이와 무도회, 여자에 빠져 제대로 공부를 하지 않았다. 결국 동양학부에서 쫓겨나 법학부로 옮기는 신세가 됐다. 그 뒤에도 계속 공부를 소홀히 하던 그는 끝내 3학년을 중퇴하고 고향인 모스크바 남부의 영지로 돌아가고 말았다.
레닌도 카잔 대학을 다녔다. 형이 황제 암살 사건에 연루돼 처형됐기 때문에 동생인 그도 페테르부르크나 모스크바에서 공부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법학부를 다녔던 레닌도 중도 탈락생이 되고 말았다. 학생운동에 참여했다 체포돼 유형을 갔기 때문이다. 레닌은 이후 페테르부르크 대학 법학부를 속성으로 졸업했다.
유명한 혁명작가 막심 고리키는 카잔 대학에 남다른 한(恨)이 있다. 카잔 인근 도시 출신인 그는 16세 때 카잔 대학에 들어가겠다는 꿈을 안고 이곳으로 왔으나 학비가 부족해 꿈을 이루지 못했다. 제과공으로 일하며 부지런히 돈을 모았으나 학비를 마련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절망에 빠진 그는 자살을 결심하고 남아있던 돈으로 산 싸구려 권총으로 머리를 쐈으나 총알이 어깨를 관통하는 바람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 뒤 그는 혁명사상에 심취한 현지의 인텔리들과 사귀면서 혁명에 투신하게 됐다고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