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종·주차스티커도 직급따라/천태만상 승용차 문화(공무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버젓이 큰차 모든 젊은층 늘어/음주운전 “봐달라”다 “혹”붙이기도
공무원사회에도 어김없이 자동차가 생활필수품이 된지 오래다.
각 관공서 주차장은 고위직에서부터 말단까지 직접 몰고 다니는 자가용 승용차에다가 각종 민원인들 차량까지 얽혀 대혼잡을 이루고 있다. 특히 주차공간이 좁은 광화문 정부종합청사의 경우 일과시간중 출장다녀온 공무원들은 차댈 곳을 찾느라 청사를 몇바퀴쯤 도는 것은 각오해야 한다.
서울시청의 경우 80대분은 직원용으로,나머지 1백40대분은 민원인용으로 주차장을 운영하고 있으나 일부 약삭빠른 인근 상인들이 아침 일찍부터 저녁까지 차를 슬쩍 대놓는 바람에 밖에 나갔다오는 간부직원들이 차를 댈 수 없어 30분당 1천2백원하는 유료주차장에 울며 겨자먹기로 세우기도 한다.
대체로 공무원들이 모는 차종은 직급에 따라 격이 다른게 보통이어서 관용차의 경우 장관이 그랜저 2.4,차관이 슈퍼살롱이며 자가용의 경우 실장(1급)은 로얄살롱·콩코드,국장은 쏘나타,과장은 엘란트라·르망,계장은 엑셀,주사는 프라이드를 모는 식이다.
그러나 직급은 비록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지만 내무부·노동부·환경처 등 각부처의 지방관서에서 근무하는 나이든 서기관·사무관들은 『그래도 지역유지인데 아이들이나 주위보기가 민망해서…』 등 이유를 들어 쏘나타 중형차를 모는 것이 보통이다.
또 일부 젊은 공무원들은 『내돈 내고 내가 모는데 무슨…』이라며 중형차를 버젓이(?) 모는 등 윗사람 눈치보지 않는 것도 결코 낯설지 않는 풍속도.
공무원들의 운전문화에 깃든 이같은 일종의 계급성은 비단 차종뿐 아니라 차량 출입스티커에서도 구별된다.
스티커번호가 실국장은 숫자 1로,과장급은 2로,그 밑은 3으로 시작되며 이때문에 바뀌어지는 스티커 번호에서 승진의 야릇한 기분도 느낀다는 것이 당사자들의 고백이다.
음주운전에 얽힌 해프닝도 많다. 부처의 국·과장급 간부들은 단속경관과 같은 공무원 신분이고 직위도 있는 만큼 술을 마시고 차를 몰다 음주단속에 걸리면 봐주기를 은근히 바라지만 실제로는 고위 공무원들일수록 단속경관에게는 「봉」이다.
모부처 국장은 지난해말 고교동창모임에 갔다가 술을 마시고 자정이 지나 쏘나타를 몰고가다 강남번화가에서 음주단속반에 걸리자 신분을 밝히고 명함을 건네주며 한번만 봐달라고 애원했다가 30대 후반의 경관이 『아실만한 분이 왜 그러느냐』며 한참 꾸짖은 뒤 『다음날 사무실로 연락하겠다』면서 은근한(?) 눈길을 보낸 바람에 혹을 떼려다 오히려 혹을 붙인 격이 됐다. 장·차관의 관용차에 얽힌 뒷이야기도 많다.
안필준보사부장관의 경우 지난해 그랜저 새차로 바꾸었다가 차량구입비가 소록도병원의 운영예산을 적용한 것으로 국정감사과정에서 드러나 한동안 구설수에 올랐다.
과천청사에 있는 한 부처의 경우 장관차가 10부제에 걸리면 차관차가 「1일 장관차」로,실장차가 「1일 차관차」로 줄줄이 격상,임시상납(?)돼 웃분의 체면을 유지해 준다.
이재창환경처장관은 관용차를 놔두고 6개월째 전철로 출퇴근해 화제.<김영섭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