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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탐욕의 정치인은 물러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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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새해를 맞이해 '근하신년'을 말하기 전에 '근조국회'를 말하고 싶은 심정이다. 국회는 지난해 말 7명의 비리 혐의 국회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킴으로써 다시 한번 국민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한나라당의 '차떼기'식 불법 대선자금 수수, 노무현 대통령 측근의 불법 선거자금 수수 사건 등이 검찰 수사로 밝혀지자 황급히 반성의 뜻을 밝히고 정치개혁을 다짐했던 정치권의 맹세는 다 공염불이었음이 새삼 입증됐다.

*** 憲裁 결정도 무시하는 정치권

또한 정치권은 지난해 8월 중앙선관위에서 제출한 선거법 개정에 관한 의견이나 12월 범국민정치개혁협의회에서 두 차례에 걸쳐 내놓은 정치자금법과 선거법 개정에 대한 의견은 무시한 채, 자신의 자리 보전과 직결돼 있는 선거구제와 의원정수 문제를 두고 해를 넘기면서까지 죽자 살자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 와중에 현행 선거구제도가 헌법정신과 일치하지 않으니 2003년 안에 이를 개정하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무시됐음은 물론이다.

이 땅의 정치인들은 상식을 가진 국민과는 종이 다른,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야후' 같은 존재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만약 금권정치를 청산하고 정치자금을 투명화하며 비리 정치인에 대한 엄벌을 규정하는 정치개혁 입법이 조속히 이뤄지지 않는다면 정치권 전체가 국민으로부터 외면받을 것이다.

현재 우리 정치인은 돈에 대해서는 '야후'에 맞먹는 탐욕을 가진 듯하므로, 탐욕으로 인한 '야후'의 고질병을 고치는 처방인 자신의 똥과 오줌 먹이기를 부패 정치인에게 실시하면 어떨까 하는 극단적 상상마저 든다.

그리고 올해에도 정치개혁은 외면한 채 '너 죽고 나 살자'식 공방만이 정치권에서 계속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선거구와 의원정수 등의 문제는 정치인 자신의 '밥그릇'과 직결된 것이니 편법과 결탁이 필연적일 것이기에, 정파적 이해에서 떨어져 있는 중앙선관위 안이나 범국민정치개혁협의회 안을 수용하는 것만이 정답이다.

합리적 타협이 불가능하다면 걸리버가 방문한 '하늘을 나는 섬나라'의 아카데미 교수들이 정쟁만 일삼는 국회를 개혁하기 위해 제시한 방안을 채택해볼 만도 하다. 즉 모든 의원이 자신의 의견을 발표하고 토론한 후 반드시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쪽에 찬성투표를 하게 하거나, 아니면 보다 '급진적'인 해결 방안으로 각 정당 지도자들의 후두부를 톱으로 잘라내 반대편 정당 지도자의 후두부와 교환해 봉합하는 외과수술이 머리를 스친다.

제도적 개혁과 동시에 정치권의 인적 쇄신도 수반돼야 한다. 부패와 부정비리에 연루된 정치인, 기회주의적 처신으로 지탄받은 정치인, 인권탄압에 책임이 있는 정치인, 극우적 논리와 행동양식에 젖어 있는 정치인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이제 정치 무대에서 사라져야 한다.

제1당인 한나라당은 공천후보 결정시에 자신이 향후 계속 '5공? 6공당' '수구노인당'의 역할을 할 것인지, 아니면 합리적 보수정당으로 다시 태어날 것인지 선택해야 할 것이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은 집권 후 갈라져 서로 개혁정당임을 자처하며 싸우고 있지만, 그들의 본모습이 무엇인가는 공천된 후보를 통해 확인될 것이다.

*** 이념과 정책으로 멋진 대결을

정치개혁을 위한 제도 구축과 인적 청산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의 미래는 없다. 수도 없이 좌절된 희망이지만 돈.연고.지역감정에 좌우되는 정치가 아니라 보수. 개혁.진보 등 이념과 정책을 가지고 주권자의 지지를 구하는 정치를 보고 싶다. 이러한 의미에서 다가오는 4월 15일 총선은 중대한 의미를 가진다.

'걸리버 여행기'에서 조너선 스위프트가 묘사한 '야후'가 다름 아닌 18세기 영국 시민의 삐뚤어진 모습이었음을 생각할 때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또다시 우리가 '야후' 같은 정치인을 대표자로 뽑는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 '야후'의 일족임을 입증하는 셈이다.

曺 國(서울대 교수·법학)

◇약력:서울대 법대 법학사, 미 캘리포니아 버클리 법과대학원 법학박사, 현재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 대법원 양형제도연구위원회 위원, 경찰청 경찰혁신위원회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