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IB업무 대우증권에 넘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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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기업 인수합병, 회사채 인수와 같은 산업은행의 투자은행(IB) 업무가 자회사인 대우증권으로 넘어간다. 그런 뒤 대우증권을 토대로 2009년 이후 자본시장통합법에 따른 초대형 금융투자회사가 산은 자회사로 설립된다. <본지 3월 13일자 1, 6면>

정부는 6일 정부과천청사에서 경제정책조정회의를 열고 이런 내용의 '국책은행 역할 재정립 방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산업은행은 3단계로 개편한다. 1단계로는 우량기업 회사채 인수와 같이 당장 민간 금융회사와 경쟁하는 업무를 3~5년에 걸쳐 대우증권으로 넘긴다. 2단계로 2009년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에 맞춰 산은의 IB 업무를 모두 대우증권으로 이관해 금융투자회사로 키운다. 산은의 IB업무 조직은 전체의 절반에 해당해 이 단계가 마무리되면 산은은 정책금융부문과 자회사인 금융투자회사로 나뉘게 된다. 3단계로 산은 정책금융부문은 그대로 두고 자회사인 금융투자회사에 민간자본 참여를 확대하면서 민영화 여부를 검토한다.

기업은행은 일단 중소기업 금융 전문은행으로 남겨두고 민영화는 장기 과제로 추진한다.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중소기업진흥공단.신용보증기금.기술신용보증기금의 역할을 재조정하면서 단계적으로 기은의 중소기업 업무를 산은으로 넘긴다. 이에 맞춰 산은은 중소기업 업무를 맡는 조직을 늘린다. 산은과 업무 중복 논란을 빚은 수출입은행은 전략산업 수출, 해외투자, 자원개발 지원업무를 맡도록 했다. 대신 시장보다 싼 금리로 지원하는 정책금융 업무만 수은이 맡고, 프로젝트 파이낸싱처럼 상업 금융을 이용한 투자는 산은이 담당하는 것으로 교통정리했다.

정경민 기자

뉴스 분석

국책은행 개편 방안은 지난해 8월 착수했다. 산업은행의 개발 금융이나 기업은행의 중소기업 금융의 역할이 유명무실해진 마당에 국책은행을 이대로 둬야 하느냐는 여론이 빗발치자 재정경제부가 민.관 합동 태스크포스(TF)를 만든 것이다. 그러나 여론에 등 떠밀려 마지못해 하다 보니 TF 활동은 처음부터 삐걱댔다. 연구를 맡은 담당자도 수차례 바뀌었다.

우여곡절 끝에 전체 골격은 올 3월에야 마련했다. 애초 방안에는 산은 IB부문과 대우증권을 합친 금융투자회사의 민영화 일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것으로 돼 있었다. 기업은행 민영화도 가급적 앞당기기로 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민영화 일정은 장기 과제로 미뤄지거나 일정조차 제시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민간 금융업계에선 "이번 구조개편안은 민영화 여론을 비껴가기 위한 '꼼수'"라는 지적까지 나올 정도다.

정부가 이날 발표한 구조개편안을 보면 민영화 일정은 모호하게 돼 있다. 산은만 해도 1단계만 3~5년을 잡아 놓았을 뿐 2~3단계는 추진 일정조차 없다. 오죽했으면 경제정책 조정회의에서 산은과 기은의 민영화 일정을 좀더 구체화하라는 주문이 나올 정도였다.

조원동 재경부 차관보는 "산은의 자회사인 금융투자회사의 매각 시기와 기은 민영화 일정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와 8월 말까지 보완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조 차관보는 "산은 자회사인 금융투자회사가 정착하기까지 4~5년은 걸린다"고 밝혀 조기 민영화는 고려하지 않고 있음을 내비쳤다.

민간 금융업계의 불만도 크다. 대우증권은 이미 회사채 인수, 기업공개, 위탁매매에서 2위와 현격한 격차가 나는 1위다. 여기다 인수합병(M&A) 주선, 파생상품 거래에서 압도적 1위인 산은 IB업무까지 얹으면 민간회사가 따라가기 어려운 초대형 금융투자회사가 된다.

A증권사 임원은 "대우증권만 해도 버거운데 산은 IB업무까지 합치고 그것도 모자라 산은 그늘 밑에 둔다면 사실상 정부가 자본시장을 쥐락펴락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이는 자본시장통합법을 만든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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