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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50~80년대 뒷골목 휘젓던 '문인 野史'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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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풍미한 문학작품들은 얼마나 오랫동안 생명력을 유지하는 걸까. 작품이 잊혀진 마당에 작품이 태어났던 시절 작가와 작가 주변의 교류, 술과 눈물이 범벅된 문학과 인생 이야기는 더 이상 술자리 한담으로도 접하기 힘들다. 문제의 이야기가 20~30년 전에 벌어진 일인 경우 더욱 그렇다.

한편 문단 야사나 과거 에피소드 모음집이 언제 봐도 재미있는 이유는 앞선 사람들의 구구절절 기가 막힌 사연들이 현재를 비추는 거울로도 여겨지기 때문이다.

'지금 그사람 이름은 잊었지만'은 1950~60년대 명동시대, 70~80년대 관철동 시대를 관통했던 글쟁이 주당들의 좌충우돌하는 모습들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증언록이다.

불가에서 환속한 소설가 김성동이 노모와 함께 단칸셋방을 전전하다 장편 '만다라'가 크게 인기를 얻자 '만(萬)달러'쯤 하는 주공아파트 한 채를 갖게 된 이야기, 70년대 초 장안의 인기였던 최인호의 신문 연재소설 '별들의 고향'을 잡기 위해 출판업자가 50만원을 현금으로 찾아 안기자 최씨가 떨리는 손길로 입고 있던 점퍼를 벗어 돈다발을 쌌던 이야기 등은 눈길을 잡아끈다. 신문사 문화부 기자의 아내가 심사위원이라고 떠벌리고 다닐 정도로 어딘지 허술했던 60년대 신춘문예 제도의 모습은 웃음을 자아낸다.

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매춘의 온상이었던 서울 종로 3가 근처 '종삼(鍾三)'에 얽힌 주당들의 사연은 포복절도할 만하다. 정신을 잃을 정도로 술을 마셔 집에 실려온 한 시인이 자신의 집을 종삼으로 착각하고는 화장실에서 만난 친형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다가 아버지까지 와 계시다는 말에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는 것이다.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하기 직전의 김수영의 행적, 나병 환자였던 한하운 시인이 간첩 누명을 벗게 된 사연도 인상적이다.

'지금…'은 저자 강홍규(사진)씨가 90년 별세한 후 '문학동네 술동네'로 출간되었던 것을 이번에 다시 출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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