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통위원-「관치금융」에 밀려 목소리"한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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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정부로 보면 시녀요, 한국은행에는 식객이고 금통위원들은 그 사이에서 우왕좌왕 제자리를 굳혀오지 못했다. 금통위는 이 식객들이 간헐적으로 모였다가 헤어지는 사랑방쯤으로 여겨진다.』
88년 한여름 한은법 개정과 중앙은행의 독립성 문제가 날씨처럼 뜨거운 현안으로 떠올랐을 당시 금융통화운영위원이던 김병주 교수(현 서강대경제정책대학원장)가 신문칼럼을 통해 금통위의 위상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그는 중요한 금융문제가 위원회에서 구체적으로 다뤄지지도 않으며, 위원들에 대한 자료배포가 언론기관의 보도와 거의 시간을 맞추거나 때로는 뒤늦게 되고 있으며, 회의석상에서 배포한 자료를 회의가 끝나자마자 거둬 가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비록 드물었지만 회의때마다 설명내용이 어긋나기도 했고, 발언을 많이 하거나 듣기 거북한 이야기를 하는 위원은 인기가 없더라는 예를 들며 이는 시녀로서의 뿌리깊은 인식에다가 식객으로 보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로부터 4년반이나 지난 오늘에 있어서도 금통위의 위상과 행태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그 게걸음 내지 뒷걸음은 특히 이번 1·26규제금리 인하 논의과정에서 여지없이 드러났다.
지난해12월 재무부의 한은재할인금리 인하주장에 한은에서 반대해 논란이 됐고 급기야 이용만 재무부장관이 직접 금통위를 주재하겠다고 나선 바로 그 금통위원들과의 식사자리에서 금통위원들은 『그런 중요한 일을 왜 금통위원들과 상의하지 않았느냐』며 따졌다고 한다.

<3공 때부터 위축>
물론 당정협의에서 금리인하의 시기와 폭을 정해 발표했고 미리 금융기관에 시달해 준비토록 한 뒤에야 금통위더러 심의해달라고 안건을 올린 당국에 문제는 더 있다. 그러나 26일 열린 금통위도 형식적으로나마 한번도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지도 않았으면서 20여분동안 금리인하의 배경과 내용에 대한설명을 들은 뒤 「추인」하기에 바빴다. 일부 위원들이 「선 시행 후 의결」이란 절차상의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지만, 소수의 목소리는 다수의 체념 섞인 침묵과 불감증 속에 묻혔다.
그러나 금통위가 처음부터 시녀역할만 하지는 않았다. 50년 한은법제정과 함께 출범, 적어도 2공화국까지는 금통위가 이름에 걸맞은 역할을 했다는 평이다. 그러나 3공화국이후 금융을 성장의 보조수단으로 격하시키는 이른바 「개발금융」시대에 접어들면서 「관치금융」상황에서 그 역할과 기능이 주변여건 때문에 스스로 위축돼서 오그라들었다. 이 때문인지 국정감사때면 금통위의 회의록을 공개하라는 국회의원들의 요구가 있었지만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금통위는 5·16 이듬해인 62년5월 한은법의 개정(1차) 이후 이름에 「운영」자가 붙으면서 약화됐으며, 사실상 통화신용정책의 주도권도 정부가 틀어쥐었다. 그 뒤 한은법 개정문제가 나올 때마다 금통위의 위상이나 기능문제에 대한 논란이 일었지만 달라진게 없다.
83년초 금통위는 모처럼 큰 목소리를 냈다. 정부가 지난 74, 77년에 발행했다가 중단했던 양도성예금증서(CD)를 다시 발행하려 들자 금통위는 고액예금자에게 높은 금리소득이 돌아가는 모순이 있고 당시의 저금리체계에 혼선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는 타당한 이유를 들어 세 차례나 CD발행에 대한 승인을 보류했었다. 이에 따라 CD재발행 문제는 이듬해인 84년5월17일에 통과됐으며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키더니만 결국 지난해 가짜CD와 상업은행 명동지점사건을 낳았다.
겨우 이 정도의 보류 기억을 갖고 있을 뿐 금통위는 전직 금통위원들의 표현대로 「허수아비」같은 존재다. 통화신용정책의 최고 의결기구라는 점에서 금융대법원·금융사령탑이라고 불리면서도 재무부 등 당국이 정한 방침을 대부분, 그것도 만장일치로 통과시킬 뿐이라고 하여 「금융통과위」란 별명이 붙어 있기도 하다.

<「금융통과위」별명>
금통위가 제 길을 못 걷고있는 배경에는 재무부와 한은간의 통화신용정책의 주도권을 둘러싼 뿌리깊은 갈등과 대립이 깔려 있다. 이들은 금통위가 어디에 속하느냐를 놓고 걸핏하면 논쟁을 벌였다. 88년 여소야대 정국속에서 한은법개정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됐을 때 당시 김건 한은총재는 「금통위는 한은내부의 기구」라고 해석했으나, 재무부와 당시 박재윤 금통위원(현 김영삼 차기대통령의 경제담당특보)은 「금통위를 한은내에 둔다는 장소적인 개념」이라는 해석으로 날카롭게 대립했으며 아직까지 명쾌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상태다.) 여건과 성격상 금통위가 제대로 기능을 하기 어렵게 돼있다고도 하지만 금통위원들 자신에게도 문제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구성원 면면으로 보면 쟁쟁한 인물들인데 정작 중요한 회의에서는 별로 말이 없다는 것이다.
50년이래 지금까지 재무부장관이나 한은총재로서 당연히 위원이 되는 경우가 아니라 각 기관의 추천을 받아 금통위원을 지낸 사람은 1백18명이다 (중임제외).
당연직인 재무부장관과 한은총재를 뺀 나머지 7명의 위원은 경제학·경영학을 전공하는 대학교수나 한은 이사출신 등 금융계 인사들이 많다. 재무부 장·차관 출신들도 7명이다. 전직 장·차관들이 조금 쉬었다가 이곳으로 오거나 금통위원으로 있다가 장·차관급으로 옮겨가는 경우도 있었다.
임기 3년이고 중임제한이 없어 한번 임명되면 상당수가 두 차례 정도 연임했다. 이들은 법률상 국가공무원의 신분이 부여되며 차관급에 준하는 대우를 받는다. 고정된 급여는 없으나 연구비와 회의참석수당 등으로 월2백50만원 정도의 수입이 있으며, 작년부터는 무선전화기가 달린 포텐샤승용차를 제공받고 있는데 차량유지비는 한은이 부담한다.
따라서 금통위원들의 임기가 끝날 무렵이면 주요대학의 경제·경영학과 교수들 사이에서 금통위원을 하기 위한 경쟁이 뜨겁다고 한다.
62년 이름이 바뀌고 위원수도 7명에서 9명으로 늘어난 이후 당연직이 아닌 추천위원으로서 세 차례이상 금통위원을 지낸 인사로는 성창환 고려대교수, 이정환 전 재무부장관(현 금호석유화학 명예회장), 김만제 전 재무부장관, 구본호 한양대교수(전 한국개발연구원 원장), 이승윤 전부총리, 홍성하 제헌국회의원(사망), 박숙희 전 한은부총재(〃), 유갑수 전 국민대교수(〃), 김익현 전 조선대교수(〃) 등이다.
홍성하 위원은 초대인 50년부터 55년까지 및 64년부터 76년까지 17년여동안, 박숙희 위원은 57∼60년(대리의원) 및 67∼79년 등 15년여동안 금통위원을 지낸 금통위의 원로다.
이들은 당연직 위원인 재무부장관이나 한은총재와 나이도 엇비슷하고 경험도 많아 정부와 다른 위원들과의 매개역할을 하면서 무리없이 금통위를 이끌어갔다고 한다.
윤보선 전 대통령도 농림부장관 추천으로 초대 금통위원을 2년(50∼52년)동안 지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촌처남인 육지수씨도 5·16직후인 61년8월부터 이듬해 금융통화운영위로 바뀌기 전까지 9개월 동안 정위원 유고 때 대리할 수 있는 대리위원(금융기관 추천) 을 했었다.
재무부장관을 지냈다가 경제부처나 금융기관의 추천을 받아 다시 금통위원으로 온 사람이 6명이나 된다. 이규성 건양대교수·나웅배 민자당의원·김세련씨·홍승희씨·이정환씨·서봉균씨 등이다. 정소영 생보협회 회장은 재무부차관출신으로 79∼81년에 금통위원을, 김건 전 한국은행총재도 총재직에서 물러난 석달 뒤인 지난해 6월부터 위원을 맡고 있다.

<윤보선씨도 역임>
거꾸로 금통위원을 먼저 하다가 나중에 장관이 된 사람은 백두진 전 총리로 50년11월부터 금융기관추천 위원을 4개월도 못한채 재무부장관으로 임명돼 당연직 위원으로 2년6개월을 더 지냈다. 윤호병씨도 55∼56년 위원을 지냈는데 60년 민주당정부에서 재무부장관으로 기용됐다.
김만제 전 재무부장관·이승윤 전 부총리·박승 전 건설부장관 등도 금통위원을 먼저 하고서 장관이 된 경우다. 박영철 현 한국금융연구원장은 86년11월말 한국개발연구원원장으로 옮겨가면서 농림수산부장관 추천위원자리를 김병주 교수에게 넘겨주었다. 87∼90년7월 위원을 지낸 박재윤씨가 새 정부에서 어떤 자리를 맡을지 관심거리다.
대학교수나 전직 금융인들이 다른 직업을 가지고 겸직하는 현행 제도는 금통위원들이 사실상 손발이 없는 상태라 그 직무를 수행하는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있다.
따라서 상근하게 하고 그야말로 평생을 금융업무나 연구에 종사한 경험 있고 소신있는 인물을 선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대가 바뀌고 있다. 따라서 금통위원에게 제 목소리를 내게 해주어야 하고 스스로도 목청을 높여야 한다. <양재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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