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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이념보다 소중한 "인간"|『늰 내 각시 더』펴낸 김용만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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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하고 싶은 일 흉내라도 못 내고 가면 한이 될 것 같았습니다. 죽어 썩어 문드러지더라도 나의 한과 꿈인 작품 한편은 남기고 싶었습니다.』
작가 김용만씨(53)가 첫 소설집『늰 내 각시 더』(실천 문학사간)를 펴냈다. 충남 부여출생인 김씨는 문학에 대한 들 꿇는 꿈을 저버리고 고교졸업 후 호구지책으로 경찰에 투신, 10여 년간 경찰로서의 공직생활을 했다. 이후 여남은 가지 사업을 전전하다 90년『현대문학』에 단편「그리고 말씀하시길」이 추천돼 뒤늦게 문단에 나왔다.
표 제작을 비롯해,「동창친목회」「은장도」「도벌단속」「잔인한 단풍」등 8편의 단·중편을 실은『늰 내 각시 더』에는 김씨가 그리 간단치 않은 인생역정을 겪으며 축적된 이야기들이 만만찮은 소설미학 속에 담겨 있다.
특히 김씨가 경찰생활 중 범죄자들과의 인간적인 교류에서 얻어낸 몇 편의 작품들은 우리사회에서 악과 진실의 구분은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되묻게 한다.
중편「늰 내 각시 더」는 살인범과 그 살인범을 호송하는 경관의 이야기. 고교졸업반 정태수는 누나와 어머니를 차례로 유린, 가정을 파탄시킨 남자가 어머니를 폭행하는 것을 목격하고 우발적으로 살해한다. 정태수를 교도소로 호송하는 마 형사는 죽어 가는 누나를 마지막으로 보고 싶다는 태수의 청을 듣고 교도소 앞에서 만나자고 수갑을 풀어 준다. 약속한 시간에 나타나지 않자 심리적 갈등을 일으키며 초조해 하는 마 형사 앞에 한참 지나서야 태수가 나타나 손을 내밀며 다시 수갑을 채워 줄 것을 요구한다.
뭇 사람이 화해하며 살기 위해 만든 사회제도, 그러나 그 제도의 냉엄 속에 어쩔 수 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소외된 인간들의 진실을 김씨의 작품들은 다룬다. 역사나 제도, 혹은 사회구조가 불러낸 부정과 모순을 그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씻어 내고 화합을 모색하는 인간주의가 김씨 작품들의 일관된 주제다.
이러한 인간주의로서 남-북 이데올로기까지 껴안은 작품이 단편「은장도」다. 밥을 구하러 외딴 민가에 들어갔다 체포된 무장간첩을 자수자로 만들려고 끊임없이 체포 정황을 추적하고 법정증인으로까지 나서는 형사의 모습을 통해 인간성은 이념의 벽도 허물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김씨의 단·중편들은 모두장편으로서의 넓이와 깊이를 갖고 있다. 뛰어난 언어감각과 심리묘사, 극히 절제된 작품전개로 압축해 들어간 김씨의 작품들은 때문에 이야기의 울림도 클뿐더러 소설미학의 참 맛도 볼 수 있게 한다.
『평생 머슴으로 살아 할 말못하고 가신 아버님께 습득된 한의 문체일 것입니다. 지성이나 관념·이념 등은 배운 것 없어 모르니 그 맺힌 한으로서 제 소설미학을 세워 보려 합니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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