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에 맞춘 연탄난로 구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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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얼마 전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다 동네 철물점을 찾았다.
겨울난방에 쓸 연탄난로를 사기 위해서였는데 딸아이들의 방대가 이만저만 아니어서 마음이 무거웠다.
철물점 아저씨도「요즘연탄난로 찾는 사람이 있는가」하는 의아스런 눈초리였다. 창고 깊숙이 처박혀 있었는지 한참만에 들고 나온 연탄난로는 먼지가 뽀얗게 앉아 있었다.
10여 년만에 써 보는 연탄난로였다. 값은 회한하게도 그때와 별 다름이 없었다.
1층에 세 들었던 사람들이 나간 것은 작년 봄이었다. 그 일부를 우리 집 주방·식당으로 써 왔는데 며칠 전 강추위가 들이닥치자 난방 없이는 도저히 견딜 수 없게 돼 버렸다.
우리 집 보일러는 위층만 덥힐 수 있도록 설계돼 아래층에 별도의 난방을 하지 않으면 추워질 때 조리나 식사를 할 수 없었다.
우리 집과 구조가 비슷한 옆집들은 일찍이 큼직한 석유히터를 사다 쓰고 있지만 수십 만원 짜리 히터를 쓴다는 것은 우리형편에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일이었다.
찬바람은 불어닥치고 혼자서 고민 고민하다 남편과 상의해 결정한 것이 연탄난로였던 것이다.
초등학생인 딸아이들은『연탄가스·화재사고 위험이 있다』『환경보호에 나쁘다』며 속 모르는 투정을 부려 엄마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러나 별 수 있는가. 주택융자상환 일은 매달 돌아오고 장남인 남편이 지난 3년간 해마다 시동생들을 시집 장가 보낸 일 하며 내가 만학의 길로 들어선 게 어언 4년째 아닌가. 나의 가계부는 온통 빨간 글씨뿐이다.
친정오빠가 종일 고생해 설치해 놓고 간 연탄난로가 막 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달그락거리며 끓는 주전자는 마치 내 한숨처럼 김을 길게 내뿜는다.
『은혜·신혜야, 엄마가 꼭 약속 할께. 이번 겨울만 어떻게 넘기면 내년부터는 번듯한 난로를 하나 마련할 테니….』
김승진<인천시 북구 계산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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