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1TV『보디…』캐스던 감독 81년 데뷔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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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1940년대 중반 미국 영화계에는 범죄를 소재로 한 음울하고 병적인 멜로 드라마들이 여럿 등장한다. 나중에 프랑스 비평가들에 의해 필름 느와르라고 이름 붙여지는 이 영화들은 대개 사악한 여자로 표상 되는, 불가해한 악에 직면해 헤어나지 못하는 주인공을 통해 도덕적 치유가능성을 상실한 병든 사회에 대한 절망을 드러냈다. 특히 이 영화들은 독일표현주의의 영향을 받은 정교하고 인위적인 영상양식을 적절히 사용한 것이 특징으로 지금도 스타일에 집착하는 젊은 영화작가들의 상상력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있다.
KBS1-TV 명화극장에서 방송하는 로렌스 캐스던 감독의『보디히트』(일요일 밤10시)는 필름 느와르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영화다. 스필버그의 휘하에서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던 캐스던이 81년에 만든 이 감독 데뷔작은 빌리 와일더의『이중배상』의 플롯을 적절치 각색해 끝까지 관객의 흥미를 잃지 않게 하고 있다. 미국의 해안도시 미란다에서 별 볼일 없는 사건을 해결하며 살아가는 2류 변호사 라신(윌리엄 허트 분)은 어느 날 매티(캐서린 터너 분)라는 매력적인 여인을 만나게 된다. 관능적이면서도 어딘가 그늘이 있는 매티에게 라신은 점차 빠져들게 된다.
현대판 필름 느와르 중에서 보자면『보디히트』는 이를테면 로만폴란스키의『차이나타운』같은 영화가 보여주는 깊이에는 분명히 도달하지 못한 작품이다. 하지만 전편을 감도는 무더위와 권태감의 뛰어난 묘사와 치밀한 다이얼로그는 이 영화를「신화의 현대화」로서 손색이 없는 작품으로 만들고 있다. 문제는 국내 개봉 시에도 화제가 되었던 이 영화의 자극적인 섹스 신이 TV에서는 대부분 잘려 나갈 것이라는 점이다. 특히 이 영화에서는 섹스 신이 이야기 전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자칫 절름발이가 될 가능성이 크다. 중요부분을 뭉텅 잘라 내면 서까지 이런 영화를 TV에서 방송해야 하는 것인지 의문이 남는다.
KBS2-TV에서 방송하는『행복의 세 가지 조건』(Three for Happiness·일요일 오후 2 시20분)은 보기 드문 유고 영화라는 점에서 관심을 가져 볼만하다. 라에코 그르리치가 감독을 맡았다.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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