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웅 칼럼] 大選이 부르는 세 가지 착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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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호 27면

대선을 앞두고 후보자나 유권자가 근본적으로 착각하는 것이 세 가지가 있다. 첫째, 후보자가 그럴싸한 정책을 공약하면 집권 후 정부가 알아서 잘 수행한다. 둘째, 공약대로만 되면 미래는 밝다. 셋째, 참모진은 여하간에 후보자만 잘 뽑으면 된다.

대통령이 막강한 권한으로 국정을 잘 관리하면 국민과의 약속을 지킬 것 같지만 결코
쉽지 않다. 대통령직은 대통령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우선 법과 제도, 재정 여건, 그리고 참모들한테 묶인다. 약속한 정책이 정부의 관료제라는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고 나면 변질된다. 어찌해서 정부안이 성사된다 해도 여의도에 가면 또 벽에 부닥친다.

노무현 정부의 공약은 정부 관료제의 터널은 쉽게 통과했지만 의회에 가서 막힌 경우다. 말은 쉽게라고 하지만 실은 그 대가가 만만찮다. 집권층은 자리도 늘려주고 높여주고 예산도 넉넉히 쓰게 하면서 관료들의 환심을 산다. 그 결과 정부는 불어날 대로 불어나고 빚은 모두 국민의 몫으로 돌아왔다.

이번 대선의 경우, 이를테면 대운하를 파고, 철도 페리를 개설한다고 하자. 그러면 관료들은 이를 담당할 기구부터 만들자고 한다. 최고책임자는 적어도 1급으로 해야 한다, 직원은 몇 급 몇 명은 돼야 하며, 그리고 예산은 얼마 하며… 관료조직은 그때부터 늘어나기 시작한다. 정부의 프로젝트라는 것이 사업비용보다 관리비용이 더 들게 마련이다. 그러니 정부의 메커니즘을 잘 모르는 유권자나 후보자조차도 약속하고 당선만 되면 술술 풀릴 것이라는 것은 큰 착각이다. 오죽했으면 트루먼 대통령이 선거에 이긴 기쁨에 겨워 휘파람을 불던 아이젠하워 당선자에게 대통령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백악관 잔디를 뽑는 것뿐이라고 했을까. 대통령은 의욕에 넘쳐 약속을 이행하고 싶겠지만 대통령직을 맡고 나서는 전혀 다른 세계를 맞는다는 것을 모두가 알아야 할 것이다.

다음은, 약속대로라면 우리의 미래가 밝게 보장되어야 할 터인데 실제는 그렇지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정책이행의 어려움 말고도 나라가 가야 할 방향에 관한 시대적 합의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 후보자들은 과거의 습관대로 정책을 공약하고 미래엔 1인당 국민소득 3만, 4만 달러 등을 외치고 있다. 잉글하트 교수는 주관적 웰빙(subjective well-being)은 1만 달러만 넘으면 나라마다 비슷하다는 분석을 했다. 국부를 쌓아 국내총생산(GDP)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후보자들은 ‘진정향상계수’(GPIㆍGenuine Progress Index)로 계산하면 미국부터 현재의 GDP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과학기술이 발달해 국민생활의 편익은 증대되겠지만 인간의 형이상학적 존재조차 달라지는 세상을 맞을 텐데 이를 위해 정부는 어떻게 바뀌어야 하고,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후보자들은 말이 없다. 한마디로 이대로 자본주의 선진국가로 가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과학기술의 발달이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르고 대강 2050년까지의 예측치가 다 나와 있는데 이런 맥락에서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후보자는 눈을 씻고 보아도 없다. 창조사회가 열리고 있는 21세기에 공공의 가치가 어떻게 현현되어야 하는지 새 구도를 짤 줄 알아야 한다.

끝으로 유권자들이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후보자가 아무리 훌륭해도 함께 일할 참모진의 색깔이 기대 밖일 수가 있다는 것을 노 대통령의 경우에 보았다. 후보자가 어떤 성향의 참모와 함께 일을 할 것이냐가 중요하다. 요즘 신문이 가끔 허상을 그리던데, 후보자의 인상ㆍ말솜씨ㆍ머리 모양ㆍ스타일 다 좋겠지만 정작 우리가 심각하게 가려보아야 할 것은 후보자와 함께 참모진의 색깔ㆍ자질ㆍ능력ㆍ이념성향 등이다.

후보자 중에는 마이너리그에 있으면 딱 좋을 사람들이 눈에 띈다. 제노(Zeno)나 러셀(Russell)의 역설조로, “정치(대통령)는 아무나 하는 것이지만, 아무나 하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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