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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국가연 재편 불가피/중앙아5국 연방결성 합의 의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독자군­통화창설로 「EC형」 꿈 깨져/러­우크라 분쟁 틈타 회교권 결속
중앙아시아 5개국 정상들이 4일 「중앙아시아 인민연방」 창설 의도를 밝힘으로써 출범 1년을 갓 넘긴 독립국가연합(CIS)도 구소련과 마찬가지로 해체와 재편의 전철을 되풀이할 수 밖에 없게 됐다.
이같은 움직임은 특히 지난해 12월로 예정된 CIS정상회담이 뚜렷한 이유없이 2차·3차 연기돼 온 시점에 나온 것이어서 더욱 주목된다. 당시 CIS주도국인 러시아는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과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대통령의 「가벼운 와병」을 이유로 정상회담이 연기됐다고 발표했으나 두사람 모두 정상 집무중임이 밝혀져 일부 전문가들에 의해 「중대사건」이 임박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물론 이번 선언은 「CIS의 기존상황이 개선되지 않을 경우」를 전제로 한 것이어서 경우에 따라 새로운 소연방창설이 취소 내지 유보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고 있다. 그러나 중앙아5개국이 그동안 취해온 일련의 행보나 이번 선언의 배경으로 들고나온 사항을 보면 어떤 형식으로든 CIS의 재편은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러시아 지도부 일각에서도 신페레스트로이카(재편)의 필요성이 거듭 제기돼온 실정이다.
중앙아5개국 지도자들은 한결같이 CIS가 하나의 공동체로서의 기능을 유지할 수 있는 실효성있는 조치를 결여해왔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각 참가국들이 정치적으로는 독립하되 군사적으로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형 집단안보체제를 구축하고 경제적으로는 유럽공동체(EC)형 공동시장을 유지하자는 합의아래 91년 12월 출범한 CIS는 독자군창설과 독자통화발행이 잇따른데다 아제르바이잔·아르메이아전,몰도바내전 등과 같은 내연에 휩싸이면서 사실상 유명무실한 국제기구로 전락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일부 언론이나 전문가들이 CIS를 「합의이혼을 위한 청산위원회」 또는 「사망선고를 남겨둔 뇌사상태」로 폄하했던 것도 이때문이다.
러시아 지도부 일각의 신페레스트로이카론도 이같은 현실인식에서 비롯됐다. 특히 알렉산드로 루츠코이 러시아 부통령이 일찌감치 지난해 5월 러시아·벨로루시·아르메니아 등 5개국만으로 「중추5개국 동맹」 결성론을 공개 주장한 것이나 예브게니 샤포슈니코프 CIS 통합군 총사령관이 지난 연말 이와 유사한 주장을 되풀이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중앙아5개국의 역사적·민족적·종교적 뿌리가 러시아 등 슬라브권과는 판이하다는 점도 이번 선언을 가능케한 보다 근본적 요인으로 지적된다. 18∼19세기 제정러시아에 무력강점되기 이전까지 이들은 모두 오스만터키제국의 영향아래 놓여 있었고 1917년 볼셰비키혁명이후 소련구성 과정에서도 이들은 그리스정교를 신봉하는 슬라브권과 회교를 신봉하는 비슬라브권의 「복합연방」을 구성하자는 제안을 내놓았다가 거부돼 억지 편입된바 있다.
따라서 이번 선언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주도권다툼으로 인한 자중지란과 경제난 등으로 슬라브권이 어수선한 틈을 타 비슬라브 회교권이 집단행동을 보인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이들은 지난해 5월 투르크멘 수도 아슈하바트에서 터키·이란·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등 인근 회교국들이 참가하는 회교국 정상회담을 열고 「회교권의 대단결과 실크로드 시대의 영광재현」을 다짐한 바 있다. 이번 선언은 이와 함께 아제르바이잔 등 카프카스지역의 회교권과 타타르·다게스탄 등 러시아연방내의 회교권에도 영향을 줘 연쇄적 탈슬라브 열풍을 몰고올 경우 슬라브권의 역반발로 구소련권에서 예기치 않은 사태가 빚어질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전망된다.<정태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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