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 경제장관 사임의 교훈/유재식 베를린특파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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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위르겐 묄레만 독일부총리겸 경제부장관이 3일 사임했다. 그의 사임은 공직자,또는 권력자의 주변관리가 어렵기는 동·서양이 따로 없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그의 사임을 불러온 이른바 「편지지 사건」은 슈퍼마킷의 물건 담는 손수레에 쓰이는 2마르크50페니히(약 1천2백원)짜리 칩이 발단이 됐다.
이를 개발한 묄레만장관의 처사촌이 지난해 2월 도움을 요청하자 묄레만장관은 자신이 직접 서명한 이 제품의 구매권유 서한을 주요 슈퍼마킷체인의 사장들에게 보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직전 슈테른지가 이를 폭로하자 묄레만장관은 백지서명을 했을뿐 내용은 몰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언론의 추적이 계속되고 묄레만 장관이 이를 모르기는 커녕 보좌관과 이 문제로 협의까지 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의 도덕성에 의문이 제기되자 야당은 물론 그가 소속한 자민당내에서도 사임압력이 일었다.
자민당의 함 브뤼허의원같은 이는 『장관이 내용도 모르고 자신이 서명한 서한을 냈다면 이는 가정을 장악하지 못하고 있는 증거』라고 비꼬며 사임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처럼 사면초가에 몰린 묄레만장관은 카리브해에서의 연말휴가를 중단하고 귀국,3일 기자회견에서 『처음에 백지서명했다고 주장했던 것은 업무과다로 잘 기억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해명한 뒤 사임을 발표했다.
차기 자민당총재로 유력시되던 묄레만장관의 정치생명을 사실상 끊어놓은 이번 사건은 우리에게 시의적절한 타산지석이 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시의적절하다는 것은 바로 지금 우리가 그토록 갈구하던 문민시대의 출발선에 서있음을 강조하는 말이다.
그간 우리는 공직자,특히 최고권력자의 잘못된 친·인척관리를 수없이 보아왔다. 친·인척 비리의 거의 모든 것을 보여준 5공은 말할 것도 없고 6공시절에도 대통령의 친·인척을 둘러싸고 잡음이 많았다. 이젠 그것으로 족하다.
「수신제가후에 치국평천하」한다는 말을 인용할 것도 없이 최고 권력자의 친·인척관리는 치국의 요체가 아닐 수 없다.
이는 새로 출범하는 김영삼대통령정부가 다시 한번 깊이 새겨야 할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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