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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 살기 좋은 도시라고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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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필자는 칼럼에서 미국의 한 다국적 컨설팅 회사의 평가를 인용해 서울의 물가는 세계 주요 도시 중 11위나 될 정도로 높은데, 삶의 질은 89위에 불과하다고 개탄했었다. 이런 괴리가 지속되면 외국인들은 물론이고, 서울 시민들조차 서울을 외면하는 사태가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서울의 도시경쟁력, 이대로는 안 된다’는 쓴소리였다.
 그런데 H씨는 물정 모르는 소리 하지 말라며 필자에게 항의 메일을 보내온 것이다. 세계 여러 도시에 살아본 그가 체감하는 서울의 물가는 89위 정도밖에 안 되는데 삶의 질은 오히려 세계 11위 정도로 높다는 것이 그의 반박이었다. 세상에 서울만 한 도시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낮은 범죄율, 안전하고 깨끗한 인프라, 편리한 대중교통, 우수한 의료진, 풍부한 일조량, 다양한 쇼핑 기회, 24시간 문을 여는 값싼 식당 등 서울이 매력적인 이유 16가지를 조목조목 열거했다. 한국인 자신이 서울의 이런 장점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면서 그는 자기 장점을 제대로 홍보할 줄 모르는 것은 한국인의 분명한 문제점이라고 지적했다.

 도시의 삶의 질을 놓고 벌이는 순위 경쟁이란 것이 마치 미인 선발대회 같아서 평가하는 사람의 시각과 취향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H씨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서울이란 도시를 좋게 봐 주는 외국인이 있다는 사실이 고맙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인도 이젠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니다. 한 해에만 1000만 명 이상이 해외여행을 하고, 한국 국적을 갖고 있는 재외국민만 300만 명 가까이 된다. 서울의 좋은 점이 뭐고, 문제점이 뭔지 분별할 정도의 눈은 우리도 갖고 있다. 서울 물가가 비싸다지만 유럽의 살인적 물가에 비하면 그래도 아직은 싼 편이라는 점도 알고, 산과 강으로 둘러싸인 서울이 뛰어난 입지조건을 갖춘 도시라는 점도 안다. 하지만 도시경쟁력이 국가경쟁력과 직결되는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시대를 맞아 서울이 관광객이든 투자자든 외국인을 확실히 끌어당길 만한 매력적인 도시라고 하기에는 아직 부족한 데가 많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세계에서 가장 국제화된 신문이라는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이 지난주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20곳을 선정해 소개했다. 1위는 독일 뮌헨이었다. 덴마크 코펜하겐, 스위스 취리히, 일본 도쿄, 오스트리아 빈, 핀란드 헬싱키 등이 뒤를 이었다. 일본 교토도 14위였다. 20위 안에 당연히 서울의 자리는 없었다.

 IHT는 범죄율, 의료 수준, 일조량과 평균기온, 인터넷 접속 환경, 개방적 시민의식, 대중교통의 우수성, 국제공항의 편리성 등 11가지 평가 기준을 제시했다. 세계적인 신문들을 얼마나 폭넓게 구해 볼 수 있는지를 따지는 항목도 있었다. 또 하나 빠지지 않은 것이 교육 환경이다.

 교통혼잡, 매연, 녹지공간과 보행로 부족, 무질서한 간판, 시민들의 부족한 영어 구사력 등은 서울이 국제적 경쟁력을 갖춘 세계적 도시가 되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시급한 것이 교육 여건의 국제화다.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국제학교가 몇 개만 있어도 서울의 도시경쟁력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평준화 교육이라는 시대착오적 망령에 사로잡혀 번듯한 국제학교 하나 없는 서울의 현실이 안타깝다.

배명복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