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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평잃은 「부산사건」 수사/권영민 사회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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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공익의 대표자로서 검찰이 검찰권을 행사할때에는 수사의 적법성은 물론 처벌에 있어서도 형평성과 가벌성이 동시에 고려된다고 한다.
검찰사무에 관하여 상사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이른바 검사동일체 원칙에 따라 움직이는 검찰조직은 자의적인 검찰권행사를 방지하기 위해 「양형기준」을 설정,비슷한 정도의 범죄에 대해 비슷한 정도의 형사처벌을 내리지만 사안간의 구체적 사실관계에 따라 사회적 비난가능성의 경중을 함께 가늠해 제한적인 법집행을 한다는 것이다.
즉 과실범의 경우 피의자의 신분이 공무원이란 점은 도주나 증거인멸의 우려,그리고 피해자와의 원만한 합의유도 등을 고려할때 충분히 참작돼 비교적 관대한 처분을 받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반면 직무 관련범죄 등에 있어 고위공직자나 사회지도층인사의 범죄행위는 하위직 공무원이나 일반인들의 그것보다 엄한 처분을 받게되는 경우에 해당한다.
검찰은 도청사건 관련자인 현대중공업 전 직원 문종열씨(42)의 신병을 확보한지 48시간만인 22일밤 혐의사실이 특정되지 않았고 법률검토가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구속 수사방침」을 밝혔으면서도 24일 현장조사에 문씨를 사실상 압송했으며 25일에도 재소환조사를 벌여왔다.
반면 폭로 13일째를 맞고 있는 기관장 모임사건은 녹음테이프 확보당일 사설 감정기관에 녹취록작성을 마치고 이후 피고발인 조사에 이틀을,그것도 사안의 핵심이랄 수 있는 김기춘 전 장관의 진술을 확보하는데 단 몇시간만을 소요한채 김 전 장관 등은 주요 기관장을 참석시키지 않은 현장조사를 벌였을뿐 나머지 기간에는 법률검토만을 계속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48시간 임의연행,철야수사는 법적근거없이 형사소송법상의 긴급 구속시한을 원용하고 있는 불법관행으로 형사소송법 개정논의에서도 이의 시정이 지적돼왔고 긴급구속은 「3년이상의 징역,또는 금고형에 해당하는 죄를 범했다는 상당한 이유」가 있을때 제한적으로 행사돼야 하는 것이어서 도청관련자들이 징역3년 이하에 처하도록 한 주거침입 혐의만을 받고 있다면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검찰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봐야 한다. 결국 현재의 검찰 수사행태는 정도를 벗어나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게 돼있다.
『검찰수사의 어려움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나 검찰이 기관장모임사건·도청사건수사 모두에 있어 평상심의 수사적법성과 형평성,그리고 가벌성을 유념한다면 사건처리이후 「국민의 검찰」로 우뚝설 수 있을 것』이라는 한 재야법조인의 고언에 검찰은 귀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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