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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디단 그맛”아쉬움속 태릉 먹골배밭 철거/2만여그루 “싹독”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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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아파트공사 한창
먹골배 원산지로 서울시민의 사랑을 받던 태릉 배밭골이 사라진다. 서울 태릉·묵동·신내동·공릉동 일대 태릉배밭골은 신내 택지개발사업에 따라 대규모 아파트단지로 바뀌게돼 서울시가 대지조성을 위해 23일 포클레인 등을 동원,이 일대 2만3천여그루의 배나무 철거작업을 시작했다.
90년 3월 건설부로부터 택지개발 지구로 지정된 이 일대 과수원 등 1백3만7백평방m 대지에는 94년말까지 아파트 1만9백가구가 들어서게 된다.
먹골은 먹(묵) 생산지인 묵동의 옛지명으로 일제시대 일본인들이 사토가 많고 통풍이 잘되는 봉화산 먹골 일대에 신품종배를 들여와 재배하면서 새로운 명소가 됐고 먹골배는 독특한 단맛으로 유명했다.
10월 중순에 수확되는 먹골배는 「신고」풍종으로 껍질이 노랗고 얇으며 당도가 높아 『배가 익을때 비료대신 설탕을 뿌려준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였다.
배를 찾는 사람이 늘어나자 재배지가 현재의 경기도 구리시·남양주군 일대까지 확대됐고 한때 가짜 먹골배가 나돌아 진짜를 확인하는 허가간판이 직판장에 세워지기도 했다.
최근에는 봄이면 하얀배꽃을,가을이면 먹골배의 맛을 보기 위해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산기슭 과수원까지 시민들이 몰려들어 이 일대는 서울의 소풍명소로도 꼽혀왔다.
이곳에서 20년째 과수원을 경영해온 진혜자씨(46·여)는 『추석같은 대목엔 하루 매상이 2백만원에 이르렀다』며 『아파트도 좋지만 그동안 먹골배의 명성을 생각하면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태릉 배밭골은 30여년 전 서울 용두동 일대에서 철거된 이주민들이 옮겨와 과수원 주변 등에 7백여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고있으나 이들도 내년중 모두 철거될 예정이다.
회사원 김경수씨(29·서울 중화동)는 『결혼 전엔 데이트 코스로 애용하고 결혼후엔 주말에 가족들과 자주 찾아간 배밭이 없어지면 먹골배도 맛보기 힘들어지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고 아쉬워했다.
시민들의 휴식처로 각광받아온 태릉 배밭골 철거로 진짜 먹골배의 명맥이 끊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신성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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