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미술 통해 예술과 거리감 없애요"

중앙일보

입력


"미술로 세상과 사람, '나 자신'과 만나"
작가와 대화 '작업실 탐방 프로젝트' 진행

버스 종점, 슈퍼마켓 맞은편 외길, 푸르뫼 전원마을 입구-. 6월 하순 뙤약볕 아래 조각가 서송(43)ㆍ장선영(43ㆍ푸르뫼 창작공간 대표) 부부를 만나러 가는 길이 쉽진 않았다. 자동차 한 대 지나가기도 버거운 길을 온전히 차지하며 질주하는 화물차, 정체 모를 공장과 창고들. 최근 ‘명품 신도시’ 바람이 한차례 불고 간 일산서구 구산동 한 모퉁이에 부부가 문화예술교육의 장으로 일궈낸 ‘푸르뫼 창작공간’이 자리하고 있었다.
◆미술을 통해 만나는 세상=서 씨 부부가 이곳에 둥지를 튼 것은 2000년. 1년 가까이 발품을 팔면서 서 씨의 작업실을 구하던 중이었다. 일산 신도시에서의 전세값이면 살림집과 원하던 작업실을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부부는 논 한가운데 자리를 망설임없이 집터로 결정했다. 건축비를 아끼기 위해 서 씨가 직접 지은 작업실 한 켠에 부부는 ‘푸르뫼 창작공간’이란 자그마한 간판을 내걸었다. 현업 작가인 서 씨와 대학ㆍ대학원에서 서양화ㆍ미학을 전공한 장 씨가 선택한 일은 아이들에게 미술을 통해 세상과 사람, 그리고 ‘나 자신’을 만날 수 창작공간을 마련해주는 것이었다.
“수학은 정답이 하나지만, 미술이나 예술엔 정답이 없어요. 각자의 독특함, 다양성을 인정할 수 있게 해주는 게 바로 예술이에요. 아이들에게 이러한 교육이 차근차근 이뤄진다면, 우리 사회의 미래를 좀 더 긍정적으로 그려볼 수 있지 않을까요.”(장선영)
◆작업실, 소통의 공간=이들 부부는 지난해부터 ‘푸르뫼 창작공간’에서 ‘작업실 탐방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어린이와 어른 참가자들이 고양시 예술가의 작업실을 방문해 작가와 직접 이야기를 나누고, 작업 도구와 재료를 만져보고, 작가의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체험해보는 프로그램이다.
“현재 구산동에 작업실을 가진 미술인이 20명이 넘어요. 2001년부터 매년 미술인들이 자신의 작업실을 공개하는 ‘오픈 스튜디오’를 열고 있죠. 하지만 관람객의 참여가 저조해요. 예술가와 관람객의 만남의 효과를 높이기 위한 짜임새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했죠.”(서송)
“오픈 스튜디오에 참여한 작가 중 작업실 문을 열어 놓고 막상 관람객이 찾아오는 걸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일반인에게 자기 작업세계를 보여주는 것에 서툰거죠. 관람객도 마찬가지에요. 우리가 주로 예술품을 만나는 곳은 책이나 인쇄물 속, 혹은 미술관이나 갤러리 같이 멋진 공간에서잖아요. 그러다보니 예술작품·작가는 일반인과 거리를 둔 존재가 되는 거죠.”(장선영)
장 대표는 “일반인이 작가와 작품에 부담없이 다가갈 수 있을 때, 예술과 예술가에 대한 사회의 인식도 높아진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총 4회(3~5월, 11월)에 걸쳐 실시된 ‘작업실 탐방 프로젝트’엔 140명의 어린이가 참가했다. 올핸 고양문화재단의 지원으로 지난 3월부터 오는 12월까지 10개월 동안 펼쳐진다. 프로그램은 조각ㆍ설치미술ㆍ도예ㆍ디자인 등 각 분야에서 매월 한 명씩 작가를 선정, 각 장르에 대한 강의, 작가 작업실 탐방, 창작 체험, 작가와 함께 하는 작품감상 등 총 4차시로 진행된다. 프로그램 전 과정엔 ‘푸르뫼 창작공간’에서 전문 교육과정을 마친 에듀케이터 6명이 참여한다.
“작가의 팔을 만져보고 찔러보는 아이들도 있어요. 추상적으로 알고 있던 작품의 세계를 이해하고, ‘예술은 생활이구나’ ‘나도 예술가가 될 수 있겠다’ 느끼는 거죠.”(서송)
“이런 아이들이 크면 자기의 관점을 가지고 작가와 작품을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적극적인 예술 후원자가 될 수도 있죠.”(장선영)
◆동사무소 옆 미술관=올 초 서 씨는 자신의 작업실을 파주시 광탄면으로 옮겼다. 구산동 작업실을 전시장으로 꾸미기 위해서였다.
서 씨는 “전시장만 가도 미술 교육이 이뤄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푸르뫼 창작공간’이 해왔던 교육 프로그램을 접목한 전시장을 그렸던 부부의 계획은 지난 15일 지금의 자리가 김포-관산간 도로로 수용된다는 통보를 받으면서 물거품이 됐다.
“아직 아무런 계획도 못 세웠어요. 하지만 장소가 어디든 전시와 교육이 공존하는 전시장은 꼭 만들거예요. 지역민을 위한 문화예술교육도 계속 할 거구요. 저희 바람은 동사무소마다 미술관이 들어서 문화예술교육이 일상 속에서 이뤄지는 거예요. 그 때 필요한 미술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둬야죠.”

푸르뫼 창작공간 club.cyworld.com/prmoi 031-923-2256
프리미엄 김은정 기자 hapia@joongang.co.kr
사진=프리미엄 황정옥 기자 ok7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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