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착 영화관·멀티플렉스 공존하는 모습 이채로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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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영화제를 찾아다니는 친구들이 부러웠어요. 그런데 중앙일보 프리미엄이 전주국제영화제 참관단을 모집한다는 기사를 보고 ‘이렇게 좋은 기회있나’라는 생각에 주저없이 신청서를 냈습니다.
운 좋게 당첨! 2박3일 동안 좋은 분들과 좋은 영화를 보며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처음엔 연령이나 직업이 다양해 과연 편하게 지낼 수 있을까 일정이 너무 빠듯하지는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그러나 금세 영화라는 공통주제 밑에 우리는 하나가 됐습니다.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전주에서의 시간은 너무 짧게만 느껴졌습니다.
전주는 크고 화려한 도시는 결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맛깔나는 한정식처럼 정갈하고 알찬 곳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특히 영화의 거리에 영화관이 몰려 있었는데 이동거리가 길지 않아 무척 편하더군요. 서울이나 대도시에선 거의 사라진 ‘토착 영화관’들이 대형 멀티플렉스와 공존하는 모습이 이채로웠습니다. 영화제 기간 작은 야외무대에선 게릴라성 공연이 펼쳐져 재미를 더해 줬지요. 브라질 음악을 하던 아마추어 공연팀이 기억에 남습니다.
재미있던 점은 영화의 거리를 오가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스타’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전주 곳곳을 누비고 다니던 홍보대사 이태성씨. 시간을 맞추느라 급하게 들어갔던 식당에서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허름한 행색의 외국인. 알고 보니 외국 심사위원이더라구요. 이 모든 것이 전주영화제 행사장에서 하나도 이상할 게 없는 분위기였습니다.
우리 참관단은 사흘간 영화와 영화인의 세계 속에 푹 빠져 지낼 수 있었어요.
상영작 대부분이 독립영화이거나 흔히 접할 수 없었던 나라의 영화들이었습니다. 거리에서 나눠주는 책자와 팸플릿에 티켓 구입 방법에서부터 영화 줄거리와 감독, 섹션별 소개와 게스트와의 만남 시간표, 심지어 상영관 부근의 맛집까지 자세하게 나와있어 참 편리했어요.
끝으로 인상적인 단편영화 몇 작품을 소개합니다. 새만금 간척공사에 관한 다큐멘터리 ‘계화갯벌 여전사전 2’는 뉴스에서는 볼 수 없는 지역민들의 이야기로, 마지막 장면의 충격으로 인해 관객들이 박수치는 것도 잊고 눈물을 흘렸던 작품입니다.
‘연가시’는 곤충에 기생하며 끝내 숙주를 물가로 이끌어 자살하게 만든다는 연가시가 한 낙오자 청년의 몸속에 들어가 벌어지는 일을 드라마틱하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소름돋는 사운드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영화제가 마켓의 역할 외에도 지역의 소리를 내고 숨은 인재를 찾아 지원해 한국 영화계를 풍성하게 하는 노력이 무척 의미있게 느껴집니다.
이현경 (30ㆍ여ㆍ서울 양천구 신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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