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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시스템 붕괴는 잠깐 … 재건엔 30~40년 걸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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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도쿄대 고미야마 히로시 총장이 25일 서울대에서 본지와 단독 인터뷰를 하며 "교육 시스템은 한번 무너뜨리면 다시 세우기 어렵다"며 대학의 자율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도쿄대-서울대 간 포럼을 위해 방한, 이날 서울대 공대에서 '지속가능성의 과학을 위한 도전'이라는 주제로 특강했다. [사진=김상선 기자]


"아시아에서 나온 아이디어를 세계에 확산시키는 것, 그게 국제화입니다. 이 일에 선진국인 한.일의 책임이 있습니다. 이런 국제화는 대학의 경쟁력에서 오며, 대학이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미야마 총장은 대학경쟁력의 요건과 이를 국가경쟁력으로 이어가는 방안을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21세기 들어 세계 유수 대학들이 경쟁력 강화를 내걸고 있다.

"새로운 개념을 얼마나 발전시킬 수 있느냐가 진정한 경쟁력의 원천이라 본다. 그게 가능한 곳은 대학뿐이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대학의 역할이기도 하다."

-도쿄대의 발전은 일본의 경쟁력 강화에 어떤 기여를 하고 있나.

"올해로 130주년을 맞는 도쿄대는 세계적 연구성과로 아시아의 아이디어를 세계에 확산하고자 한다. 이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게 바로 국제화이며, 도쿄대의 국제화는 일본의 국제화와 직결된다. 지금 일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실질적인 국제화이기 때문이다."

-비영어권 대학이 세계적 대학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오전에 강의한 '지속가능성의 과학'도 그렇고, 제론톨로지(加齡學.고령화에 대한 학문)도 예가 될 수 있다. 어느 나라에서 학문이 발생했느냐에 따라 내용이 달라진다. 아시아에서 가령학을 만들면 아시아에 적합한 학문이 나온다. 세계화는 전 지구적으로 일어나지만 지역성이 매우 중요하다."

-새로운 학문.학과 개설 때 정부 제재는 없나.

"오히려 문부성으로부터 '경쟁적 경비'라는 명목의 지원을 받는다. 지속가능성의 과학을 연구하기 위한 통합 시스템으로 대학들의 연합을 만들었다. 이 방안이 정부에 채택돼 5년간 매년 8억 엔을 지원받는다."

-도쿄대는 우수한 학생들을 어떻게 선발하나.

"국가 전체가 치르는 '센터시험'(우리의 수능시험에 해당)을 우선 본다. 50만 명 정도가 참가한다. 이 시험으로 정원의 4~5배 정도 학생을 선발한 뒤 (도쿄대만의) 독자적 시험을 거쳐 우수 학생을 가려낸다. 센터시험보다 자체 시험의 반영비율이 더 높다."

-학생 선발에 대해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있나.

"전혀 없다. 문부성(한국의 교육인적자원부에 해당)에 사전신고하는 경우도 없다. 보고 정도라면 몰라도. 기본적으로 대학의 내부 문제에 문부성이 관여할 수 없다. 대학의 자치 문제는 비교적 확립된 개념이다. 대학별로도 선발 방식은 다양해 독자시험이 없거나 센터시험을 반영하지 않는 곳도 있다. 대학 간의 룰도 없다."

-한국에서는 교육부가 대학들에 내신반영비율을 지시해 갈등이 심하다.

"어떤 입시가 좋은지는 나라별로 다르다고 본다. 미국 MIT(매사추세츠공대)는 추천만으로도 입학이 가능해 도쿄대와 방식이 다르다. 나라별로 시스템이 달라 어느 쪽이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조심할 것은 대학의 시스템, 교육의 시스템은 한번 무너뜨리면 다시 세우기 힘들다는 점이다."

-교육 시스템이 붕괴된 예가 있나.

"과거 일본은 과도한 고교 입시경쟁을 줄이기 위해 공립 고교를 대상으로 하는 학교군 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그 결과 공립고가 쇠퇴하고 사립고가 부상했다. 우수 학생들이 사립고로 몰린 것이다. 사립고는 공립고보다 수가 적어 더 심한 입시경쟁을 불러일으켰다. 경쟁을 억제하려고 해봤자 학생.부모가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별도의 문제다. 예측하기 힘들다. 붕괴는 금세지만 재건엔 30~40년이 걸린다."

-정부의 역할은 어디까지인가.

"한국 상황을 모르니 직접적 판단은 못하겠다. 적어도 선진국에선 개성과 창의력을 개도국보다 더 중시한다. 대학도 마찬가지로 개성화가 중요하다. 한국은 이미 선진국이다. 정부가 하는 것이 대학의 개성화에 플러스일지 마이너스일지는 잘 모르겠다."

-어떻게 세계적 대학이 됐나.

"교육과 학문의 축적을 바탕으로 이뤄졌다. 교직원의 자립.분산.협조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교원에겐 자유를 줘야 한다. 총장이 간섭하면 안 된다. 좋은 선생을 채용하고 자유롭게 하는 것이 대학을 좋게 하는 것이다. 이건 역사에서 배운 것이다. 대학의 자치와도 관련이 있다."

-대학의 자치란 학내뿐 아니라 외부로부터의 자치를 의미하나.

"그렇다. 권력에서 대학이 자유로워야 한다. 다만 학문의 내용에 한해서다. 시스템의 문제는 사회와 상의하고 타협해야 한다."

-교수 경쟁력 강화를 위한 평가도 있나.

"교수들의 연구성과가 대학의 가장 기본적인 힘이다.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선 평가가 중요하다. 도쿄대 교수에겐 보수를 통해 인센티브를 주지 않는다. 돈보다 시간을 달라는, 행정업무와 잡무를 줄여달라는 교수들이 더 많다. 반대로 10% 퇴출 등의 불이익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각 학문 분야에서 어떤 평가 방법을 택하는 게 좋을지를 생각 중이다. 교수평가는 거의 완성 단계다."

-교육부는 서울대를 비롯한 국립대를 2010년까지 법인화할 계획이다. 법인화를 앞둔 서울대에 조언할 점은.

"일본의 국립대가 법인화에서 겪은 시행착오를 참고할 만하다. 법인화로 자율성을 확보하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예산 문제가 부담인 것은 사실이다. 도쿄대도 법인화를 계기로 각 부문에서 1% 정도씩 예산을 감축했다. 특히 병원 예산을 3% 줄였다. 법인화 42개 대학 중 8개 대학병원이 적자인 점은 참고할 만하다. 물론 일본과 한국의 대학은 차이가 있음을 인정하고 설계해야 한다."

정리=박소영.권근영 기자<young@joongang.co.kr>

사진=김상선 기자 <sskim@joongang.co.kr>

일본 도쿄대의 고미야마 히로시(小宮山宏.63) 총장은 25일 오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사회가 원하는 새로운 학문을 발전시킬 수 있는 곳은 대학뿐"이라며 대학의 역할을 역설했다. 영어권 대학에 비해 세계적 대학으로 성장하기 불리한 아시아의 대학이 국제경쟁력을 가질 방안은 바로 이 "새로운 학문의 발전"이라는 얘기다.

인터뷰는 서울대에서 외부 귀빈을 모시는 호암교수회관 영빈관에서 진행됐다. 당초 인터뷰는 고미야마 총장의 바쁜 일정을 고려해 30분으로 제한됐다. 그러나 그는 본지 취재팀을 만나자마자 "시간을 넘겨도 좋다"고 흔쾌히 말했다. 인터뷰는 통역 없이 일본어로 한 시간가량 계속됐다. 고미야마 총장은 간단하면서도 똑 부러지게 말했다. 특히 도쿄대의 발전 방안이나 경쟁력 강화 방안에 대한 질문에선 적극적이었다. 큰 제스처로 도쿄대를 세계의 대학으로 만들려는 그의 의지를 강조했다.

한국 대학의 내신 파동과 관련해선 "어제 도착해서 들었다"며 말을 아꼈다. 그러나 인터뷰 중 대학의 자치가 중요하며 도쿄대는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서울대의 한 교수는 고미야마 총장이 '내신 파동'을 전해들은 뒤 "그런 일이 다 있었느냐. 안타깝다. 대학의 경쟁은 인정하고 놔둬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는 26일 서울대 이장무 총장과 대담한 뒤 출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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