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것」아껴 사고 파는 불 시민(특파원코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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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곳곳에 고물시장… 직접 좌판도
프랑스에 살면서 놀라게 되는 것중 하나는 「헌것」,즉 중고품이나 고물을 파는 곳이 상상외로 많다는 점이다.
1년내내 중고품만 취급하는 상설가게가 곳곳에 있고 여기저기서 열리는 임시 중고품시장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줄을 잇는다. 여기에 나와있는 물건 가운데는 가위 골동품에 속할만한 고가품도 간혹 없진 않지만 대부분이 자질구레한 물건이다.
우리 돈으로 1만∼2만원이면 살 수 있는 이 잡동사니 고물들은 종류도 다양해 사지 않고 그냥 구경만 하더라도 충분히 눈요깃거리가 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1백∼2백년전 조상들이 쓰던 숟가락세트에서부터 수십년전 할머니·할아버지세대가 가지고 놀던 때묻은 장난감,누렇게 변해 너덜너덜해진 묵은 잡지,앉으면 당장 부서질 것 같은 의자,이빠진 식기세트 등 없는 것이 없다.
중고시장에 나와 좌판을 벌이고 있는 사람 가운데는 전문 고물상인도 많이 있지만 그중에는 집에서 쓰던 물건을 가지고 나온 가정주부 등 일반인들도 적지 않다. 집에 걸려 있던 그림이나 고서·살림도구 등을 가져다 펼쳐놓지만 물건을 파는데는 사실상 별 관심이 없어보이는 사람들이다.
실용성이란 측면에서 보자면 정말 별볼일 없어 보이는 곳이 이 프랑스의 중고·고물시장이지만 시장이 서는 곳이면 어디든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모여든 사람들도 물건을 사는데 보다는 구경하는데 더욱 관심이 있어 보인다. 이곳저곳 빠짐없이 찬찬히 들여다보며 옛것,헌것을 관찰하고 음미하는 그런 모습들이다. 그런후 자신에게 꼭 필요한 것을 하나씩 골라가지고 나간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시장에서 볼 수 있는 사고팔고,흥정하는 상업적 분위기는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헌것은 과감히 버리고 새것만을 추구하는 생활에 젖어있던 입장에서는 곳곳에서 성행하는 프랑스의 고물시장이 처음에는 다소 의외로 여겨질 수도 있고 문화적 허식으로까지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집에 놓고 쓸 목적에서라면 프랑스의 고물시장에 나와 있는 물건들은 결코 추천할만한 것들이 아니다. 문화란게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다. 지난것,옛것에서 역사의 숨결과 향기를 느끼고 이를 바로 곁에 두고 느끼고자 하는 마음들이 프랑스의 고물시장을 언제나 북적이게 하는 것 같다.<파리=배명복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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