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찬씨의 변신(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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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막판 대선정국에 또 하나의 자그마한 판도변화가 일어났다. 새한국당의 이종찬씨가 후보를 사퇴하고 국민당과 통합키로 했다는 것이다.
대통령후보가 선거도중에 역불급을 느끼거나 어떤 공동의 정치목표를 추진하기 위해 후보를 사퇴하고 다른 후보를 지원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고 전례도 많다. 이씨는 후보사퇴와 국민당과의 통합명분으로 반양김세력의 결집과 내각제추진 등을 말하고 있으나 우리가 보기에 지지도하락이 결심의 주요원인이 아닌가 싶다. 선거란 결과를 보아야 안다지만 예상되는 지지율이 매우 낮은데도 끝까지 버텨 참담한 득표결과가 나올 경우 정치적 상처를 크게 입게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이씨의 도중하차는 예견된 일로서 그로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이번 결심이 그가 표방해온 「새정치」 또는 「세대교체」라는 명분과는 어떤 연관을 갖고 있는지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이씨는 「새정치」라는 명분을 내걸고 민자당을 탈당했고 지난번 국민당과의 통합협상때도 동료의원들의 다수 이탈에도 불구하고 이 명분을 내세워 새한국당을 고수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국민당은 그대로인데 이제와서 통합한다니 그 명분은 어디로 갔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또 그가 그동안 정주영후보를 『돈으로 권력을 사려 한다』는 등 적잖게 공격한 것도 사실인데 이제 와 정 후보 지지를 선언하는 까닭은 뭔지 최소한 국민에게 설명할 책임은 있다고 해야할 것이다.
우리는 이씨의 이번 결심이 가깝게는 대선에 어떤 영향을 줄지,멀게는 우리 정치발전에 어떤 도움이 될지,해가 될지 아직은 판단할 수 없다. 그러나 짧은 기간에 몇차례나 왔다갔다한 그의 처신에 대해서는 솔직히 실망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불과 몇달사이에 민자당에 남겠다고 했다가 떠났고,새한국당을 고수한다고 했다가 다시 국민당에 합류했다.
이처럼 명분이나 처신에 있어 일관성 또는 나름의 원칙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대망을 가졌다는 정치인으로서 옳은 태도라고 보기 어렵다. 그렇지 않아도 대선을 앞두고 정계의 이합집산이 어지럽게 벌어져 많은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 당에서 저 당으로,저 당에서 이 당으로 오락가락하는 정치인들의 행태를 보는 국민들의 눈은 곱지 않았다. 게다가 누가 어느 당으로 갔다해서 그를 따라 몇 만표나 몇 10만표가 따라온다는 등의 호언장담도 더러 나왔지만 우리는 국민을 바지저고리로 아는 그런 허황된 말은 믿을 수 없다. 민자당을 탈당한 박태준의원을 두고 아직도 민자당과 국민당간에 신경선이 끊이지 않지만 우리는 이런 현상도 탐탁하게 보지 않는다.
이씨의 국민당합류로 대선판도에 어떤 변화가 올는지 우리는 두고 볼 작정이지만 모름지기 정치인들은 처신에 있어 좀더 신중한 판단과 무거운 책임감을 갖기를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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