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양재찬의 프리즘] 문자메시지 요금 8년째 30원

중앙일보

입력

이코노미스트 지난 25년간 우리네 삶을 바꾼 상품 중 첫 번째는 무엇일까? 미국의 전국 신문 USA투데이는 5월 말 미국인의 삶을 바꾼 상품 1위로 휴대전화를 꼽았다. 2위는 노트북PC, 3위가 이동하면서 e-메일 확인과 문서 작성을 할 수 있는 휴대용 정보단말기(PDA) 블랙베리다. 주요 품목들을 보면 전자기기와 정보기술(IT)이 현대인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침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도 비슷할 게다. 휴대전화 가입자가 4000만 명을 넘었다. 아이나 어른이나 휴대전화를 끼고 산다. 엄지족들은 수업 시간에도 문자를 주고받는다. 머리 감을 때만 잠시 휴대전화와 헤어진다는 청소년이 많다.

이러니 생활이야 편리할지 몰라도 가계의 통신비 부담이 눈덩이처럼 커진다. 지난해 도시근로자가구의 월평균 통신비는 13만5000원. 식료품비(57만4200원)보다야 적지만 옷이나 신발 구입(11만9400원), 병원 다니고 약 사먹는 보건의료 비용(10만2900원)보다 많다.

2000년과 비교하면 통신비는 6년 사이 1.8배로 불어났다. 전체 소비지출의 6%를 넘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의 3.5배다. 이 정도면 지금 우리는 의식주(衣食住)가 아닌 ‘통(通)식주’가 문제인 시대에 살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휴대전화 요금을 내리라는 목소리가 커진다. 시민단체들이 나섰다. 대선의 해에 표를 의식한 정치권도 거든다. 서울YMCA는 문자메시지(SMS) 요금, 가입비, 발신번호 표시(CID), 기본요금을 ‘4대 괴물’로 지목했다. 이 괴물을 잡자며 5월 21일부터 100일간의 시민 릴레이 1인 시위에 들어갔다. 릴레이 시위에는 어느 이동통신 대리점 사장도 합류했다.

이동통신 업체가 그동안 요금 인하를 전혀 안 한 것은 아니다. 음성통화 요금은 몇 차례 낮췄다. 하지만 문자메시지 요금은 1998년 10원으로 출발한 것을 2000년 30원으로 올리더니만 8년째 꿈쩍도 않는다. 2005년 상반기 영업실적을 근거로 원가가 2.5원이란 분석이 나오자 이동통신사는 무료 이용을 감안한 실제 요금은 7원이라고 맞섰다.

SK텔레콤은 월 1000원씩 받던 CID 이용료를 지난해부터 무료화했지만 KTF와 LG텔레콤은 동참하지 않았다. 그 결과 두 회사는 지난해 발신자 표시로만 1806억원을 챙겼다.

SMS나 CID나 이미 갖고 있는 통신망을 이용하는 것으로 추가 투자가 거의 없다. 더구나 문자메시지는 이용계층과 이용량이 크게 늘어 원가는 갈수록 낮아진다. 통신위원회도 지난해 문자메시지 요금이 너무 높다며 약관 개정을 권고했다.

지난해 이동통신 3사의 총매출은 21조1018억원. 점유율 1위 SK텔레콤의 영업이익만 2조5844억원(영업이익률 24.3%)이다. KTF와 LG텔레콤 등 후발주자도 10%대의 영업이익률로 제조업체 평균(5.3%)의 두 배를 넘었다.

지난해 이들 회사의 원가보상률은 103∼122%. 요금이 적정이익을 포함한 원가보다 3∼22% 높다는 의미다. 여러 지표를 보면 휴대전화 요금은 내릴 여력이 있다.

이동통신 업계도 할 말은 있다. 신규 투자 재원을 마련해야 하므로 원가보상률만 보고 요금 인하를 요구하면 곤란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올 1분기에만 1조원이 넘는 마케팅 비용을 썼다. 통신비 부담이 크다고 하자 요금이 비싸서가 아니고 헤프게 써서 그렇다는 논리로 맞선다.

유류세 부담이 크다는 지적에 정부가 하는 소리와 같다. 소비자를 봉으로 알기는 이동통신사나 주유소 공급가보다 높게 공장도가격을 속여 신고한 정유사나 마찬가지다.

지금 이 땅의 서민과 중산층은 요지부동 휴대전화 요금과 치솟는 기름값, 언제 다시 뛸지 모를 아파트값, 등골을 휘게 하는 과외비의 ‘4고(四苦)’에 포위되어 있다. 이동통신사가 해마다 막대한 이익으로 성과급과 배당 잔치를 벌이는 사이 요금을 못 내 신용불량자로 몰리는 소비자도 있다.

그 잔칫상에 소비자도 불러라. 우리나라 IT산업이 이만큼 발전한 데는 묵묵히 뒤를 받쳐준 소비자의 힘도 있으니.

양재찬·편집위원 jayang@joongang.co.kr

매거진 기사 더 많이 보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