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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판결] 인공수정으로 태어난 아이 부모는 누구?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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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호 13면

인공수정과 시험관 시술 등 현대의학의 눈부신 발달은 불임부부에게 기쁨을 주기도 하지만 과거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법률문제를 불러일으킨다.

지난해 미국 텍사스주 샌안토니오에 설립된 에이브러햄 생명센터는 기증받은 정자와
난자를 결합시킨 배아를 미혼 여성이나 불임 부부, 동성애자에게 판매하고 시술한 세계 최초의 사설 배아은행이었다. 생명윤리 논란을 불러일으킨 이 회사는 지난달 말 수익성을 이유로 서비스를 중단한다고 발표함으로써 그동안의 논란에 일단 종지부를 찍었다.

하지만 유사한 일이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다. 다음과 같은 경우를 생각해보자.

A와 B는 불임부부인데, 기증받은 C의 정자와 D의 난자로 만든 수정란으로 임신해 아이 E를 출산했다. C와 D는 아이에 대한 유전적 부모임을 내세워 친권을 주장할 수 있을까? 반대로 E는 친자임을 주장하며 C나 D를 상대로 상속권을 주장할 수 있을까? E가 기형이나 심각한 질병을 안고 태어난 경우 A와 B는 혈연관계가 없음을 이유로 아이에 대한 친권을 부인할 수 있을까? 아이 E가 대리모 F를 통해 태어났을 경우에는 문제가 더 복잡해진다.

2005년 벨기에에 사는 후템 부부는 아내가 임신하기 어렵게 되자 안 블룸이라는 여성에게 1만 유로를 주고 대리모를 의뢰했다. 안 블룸은 후템씨로부터 정자를 제공받아 인공수정으로 임신했는데 후템 부부에게는 스트레스로 아이를 유산했다고 거짓말했다. 출산을 얼마 앞두고 안 블룸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인터넷 경매에 올렸고, 네덜란드의 동성애자 커플이 1만5000 유로에 낙찰받아 아이를 입양했다.

나중에 속은 것을 안 후템 부부는 아이를 되찾고자 하였으나 벨기에법상 대리모 의뢰 부부의 자식에 대한 권리와 관련된 규정이 없어 난관에 부딪혔다. 벨기에에서는 대리모와 유전적 부모의 권리에 대한 입법이 필요하다는 주장에서부터, 법을 제정할 필요는 없고 대리모를 전면적으로 금지하면 충분하다는 입장에 이르기까지 많은 논란이 있었다. 과연 누가 아이의 부모인가?

미국에서는 1986년 ‘베이비 M’ 사건을 통해 대리모 사건이 다뤄졌다. 돈을 받고 불임 부부의 아이를 대신 낳아주기로 한 대리모가 막상 아이를 낳자 아이에게 정이 들어 돈을 포기하고 아기 돌려주기를 거부한 것이다.

미국의 대법원은 대리모 계약은 공공정책(public policy) 등에 반하므로 무효라고 하면서 정자와 난자를 제공한 부모가 친권을 가지고 아이를 키우도록 했다. 다만, 대리모도 원할 때는 언제든지 아기를 만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것으로 판시했다. 현대판 솔로몬의 판결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대법원 판결은 없고 하급심 판결은 서로 엇갈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보건복지부가 ‘생식세포관리 및 보호에 관한 법률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생식세포의 채취ㆍ관리ㆍ기증ㆍ감독 등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을 뿐 여전히 위에서 제기한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법적인 부모와 유전적 부모, 낳아준 부모와 길러준 부모, 과연 누구를 부모라고 해야 할 것인지 헷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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