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의 칼」 2년 마무리 정구영 검찰총장(일요 인터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대선 금권 판칠까 걱정”/수서­안기부­한 군수 사건 의혹/“해명성 수사” 비난에 가슴아파
14대 대통령선거를 20여일 앞두고 정당과 입후보자들의 선거운동이 전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가운데 선거관련사범 단속업무를 지휘하고 있는 검찰의 움직임도 눈에 띄게 분주해졌다.
대선정국의 한복판에선 검찰의 총수로서 선거관련 업무를 진두지휘하느라 숨돌릴 겨를 없이 바쁘면서 한편으로는 내달 5일로 끝나는 2년 임기를 마무리하고 있는 정구영검찰총장을 일요인터뷰에 초대했다.
­중립내각하에서 치르게 되는 대선을 앞둔 검찰의 입장과 각오는 어떤 것입니까.
▲이번 선거는 중립내각 출범과 대통령의 당적이탈이라는 전례없는 상황속에서 치러지고 검찰의 단속의지도 단호해 과거보다 분위기가 나아질 것으로 봅니다. 재임기간중 기초·광역의회선거와 13대총선 등 세번의 선거를 치렀는데 사전선거운동을 단속하고 돈받은 유권자를 구속했는가 하면 국회의원 당선자를 선거후에 기소하는 등 전에 없는 강력한 처벌을 했습니다. 물론 이번선거에서도 검찰의 단속의지는 변함 없습니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금권선거입니다. 공무원이 뇌물을 받으면 잘못이듯이 유권자가 돈을 받는 것은 주권을 팔아먹는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민적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니 만큼 주권자인 국민을 바보로 만드는 일만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상업은행 명동지점장 이희도씨 자살사건과 가짜 양도성예금증서(CD) 사건에 대한 검찰의 중간수사결과가 발표됐지만 아직도 거액자금의 행방 등 의문은 풀리지 않고 있는데요.
▲검찰의 금융질서 혼란을 조기에 방지하기 위해 전면수사를 벌인 결과 두 사건이 별개로 이뤄졌고 이 지점장의 자살은 예금실적을 높일 목적으로 사채업자와 제2금융권을 이용하다 손해가 누적되자 일어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앞으로 CD위조범 3명중 해외로 달아난 2명은 사전구속영장을 발부받고 인터폴의 협조를 얻어 검거할 것이며 빠른 시일내에 유용자금의 행방 등 진상을 밝힌뒤 재발방지대책을 추출해 관계당국에 건의할 계획입니다.
­이제 며칠후면 2년 임기를 마치고 검찰을 떠나게 되는데 한참나이인 54세에 현역에서 물러나는 심경이 어떻습니까.
▲검찰내 「우리세대」는 격변기를 거치면서 예상밖의 초고속승진을 했고 그만큼 일찍 퇴관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30여년간 열심히 일하고 모든 검사가 바라는 총장까지 지낸만큼 원도 한도 없습니다. 검찰의 조로화를 우려하는 시각도 있지만 나는 반대로 인사적체로 인한 노령화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현재 50세가 넘어야 일선지검장이 되는 것을 감안할 때 2대후쯤 총장인사에서는 만 60세가 돼야만 총장후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재임기간중 터진 수서사건,안기부 직원 흑색선전물 사건,연기군 관권선거 등에 대한 검찰수사가 정치권의 영향때문에 해명성에 그쳤다는 여론이 있었지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는데도 미진하다는 비판을 받아 가슴이 아프고 한편으론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의혹은 말로 쉽게 표현되지만 검찰은 수사결과 나타난 증거와 법률로 말할 수 밖에 없어 자연히 간격이 있게 되며 이때문에 호된 비판을 받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6공들어 민정수석비서관을 지내는 등 노태우대통령과 특별한 인연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노 대통령은 사법업무의 독립성을 잘 이해하고 있는 분이어서 구체적인 사건수사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이 이해하고 아껴주는 총장이었기 때문에 외부로부터의 부당한 영향이나 내부모함을 받지 않아 오히려 총장직을 수행하는데 도움이 됐습니다. 13대 총선당시 여권 중진들의 마음에 들지않게 한일도 많았고 이로 인해 항의도 받았지만 아무도 대통령에게 모함하지 않은 것이 단적인 예입니다.
­재임기간중 국회의원 최다구속이라는 특이한 기록(?)도 세웠고 정치·사회적 격변기를 겪으면서 어려웠던 일도 많았을 텐데요.
▲사법처리된 정치인 가운데는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분들도 있고 가슴 아픈 일도 있었습니다. 뇌물외유사건때가 가장 어려웠습니다. 그만한 일로 회기중에 현역의원을 구속해야 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 일인지 고민했고 좀더 수사해 결과를 보고 사법처리여부를 결정하라는 법무장관의 구두지시도 있었지요. 고심끝에 소위 이익단체의 돈으로 외유하는 것은 결코 용인할 수 없다고 판단,구속을 결심했습니다.
­국민들은 어지간한 사건에도 검찰이 나서서 명쾌한 결론을 내려주기를 기대하는데 한편에서는 검찰만능주의를 경계하는 여론도 있습니다만….
▲검찰권이 발동되려면 형사사법조치를 전제로 해야하고 수사를 착수할 만큼 범죄정보가 수집돼야 하며 형사정책적 판단이 선행돼야만 합니다. 다시 말해 검찰은 꼭 나서야 할 시기와 장소에 나타나야 합니다. 검찰이 아무때나 불쑥불쑥 나서서 불확실한 근거로 이사람 저사람 잡아들인다면 국민들이 얼마나 불안해 하겠습니까.<이하경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