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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간 실업야구 전 경기 "개근"|제일은 포수 이원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텅빈 스탠드에서 울려 퍼지는 무언의 함성을 벗삼아 11년 동안 실업야구 전 게임에 출장한 선수가 뒤늦게 알려져 야구계에 화제가 되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제일은행 포수 이원일(32·사진).
이 선수는 82시즌부터 올 시즌까지 3백4경기를 한 게임도 빠지지 않고 제일은행 안방을 지켜 오면서 지난해 실업선수권대회에서 최우수 선수에 뽑혔으며 올 시즌 같은 대회에서 홈런 상을 받았다.
각종 대회 때마다 타 온 개인상 트로피로 방이 비좁을 지경인 이는 실업야구 침체로 국가대표에 한차례도 뽑히지 못한 한(한)을 안고 또다시 내년 시즌을 기약하며 스토브리그에 들어가 은행업무(청량리 지점)로 분주하다.
이는 아마 야구가 대학생위주로 국가대표팀을 구성하는 관계로 실력이 엇비슷한 대학선수에게 번번이 우선권을 빼앗겨 왔다.
83년 상비군에 들어간 이후 다섯 번이나 실업선발팀에 뽑혔으나 아직까지 한차례도 태극마크를 달지 못한 것이다.
80년 청주 고를 졸업한 이는 건국대로 진학할 예정이었으나 팀이 4강에 들지 못해 특기 자 혜택을 못 받아 실업무대로 뛰어들었다.
당시 이는 김우열(OB코치)·김차열(전 동아대감독)·나창기(군산상고 감독)·양세종 선우대영(이상 전 OB선수)등 이 포진한 제일은행 유니폼을 입고 선배들의 뒷바라지를 하며 매일 밤 그들의 장점을 하나씩 마음속에 새기며 방망이를 휘둘렀다.
이는 모든 선수가 잠든 밤에도 숙소(일산)뒷동산에서 손바닥이 거북 등처럼 갈라지고 터져 피가 흐를 때까지 개인훈련을 반복,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한을 훈련으로 풀었다.
실업데뷔 3년만에 안방을 꿰찬 이는 성실한 훈련태도와 파이팅이 돋보이는 선수로 발돋움했지만 프로야구 출범으로 빠져나간 텅 빈 관중석은 항상 쓸쓸하다. 이는 84년 OB구단 등 프로팀에서 지명하는 등 입단제의를 받았지만 태극마크에 대한 집념으로 계속 아마에 남았다.
이는 13년 동안 통산타율 2할8푼9리에 홈런 63·타점 2백24를 기록하고 있다. 앞으로 1∼2년 정도 현역에 더 머무르다 착실한 은행원이 되겠다는 것이 그의 소박한 꿈이다. <장 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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