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사태 주역 민자 허화평(의원탐구:18)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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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YS에 부채 갚으려 입당”/양김 청산은 「경쟁시대」거쳐야/대선서 당선되도록 도운후 당내 민주화 힘쓸것
지난 9월30일 민자당 김영삼총재의 집무실에서는 이 날짜로 당원이 된 허화평의원(55·경북 포항)을 환영하는 조촐한 차모임이 열렸다.
허 의원은 이 자리에서 『80년에 3김을 청산하려고 애썼으나 결국 되지 않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양김 경쟁시대를 치러내야 「김씨 구도」가 청산될 것 같아 입당했다』고 소감을 말했다. 이에 대해 김 총재는 『역시 「해본」사람이 잘 알고 반성한다』고 받아넘겼다. 좌중에 웃음이 터졌다. 짧지만 뼈가 담긴 대화였다.
허 의원은 육사 「별들의 행진」중에서도 특히 엘리트기로 꼽히는 17기 출신이다. 동기생으로 원내에 허삼수(민자)·임복진(민주)의원이 있고,이현우안기부장·이문석총무처장관·김진영육군참모총장·안현태 전경호실장·김용갑 전총무처장관 등 개성 강한 거물급들이 즐비하다.
전쟁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았던 57년 입교 당시 육사에는 전국의 명문고 출신들이 줄을 이었다. 허 의원은 시골출신(당시 포항은 벽촌이었고,그는 입학시험을 치를때 처음 서울구경을 했다)으로 미·적분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채 육사에 진학했다가 수학·물리학 시간마다 곤욕을 치른 경험이 있다. 17기는 가끔 배를 곯았던 선배들에 비하면 정량급식 외에 매일 건빵 한봉지,매주 두개의 레이션을 지급받는 등 제대로 먹어가며 아주 짜임새 있는 교육을 받은 기수에 해당한다.
그러나 잘 알려져 있다시피 17기 엘리트군이 정·관계와 군부에서 득세할 수 있었던 계기는 79년의 12·12사태였다. 이 때문에 허 의원이 민자당에 입당하자 80년 신군부로부터 고통을 받았던 당내 민주계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는 「장탄식」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80년에는 강력한 자의식을 갖고 밀어붙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한계가 있다는 점도 생생하게 체험했습니다.』
허 의원은 5공 출범에 대해 『시비를 가려야 하나,특수한 정치적·사회적 상황의 산물이었다는 점은 인정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동시에 『5공 창출 주역의 한사람으로서 끝까지 책임을 지고 가겠다』고 말했다.
그의 조직적인 두뇌에서 나오는 뛰어난 기획력은 정적들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라고 한다. 82년 해방신학이 사회문제로 떠올랐을때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갑자기 소집한 「어전회의」석상에서 그가 메모지 한장만으로 해방신학의 연원·국내 유입경위·전망·대책을 1시간동안 군더더기 하나 없이 브리핑해 배석한 장관들을 깜짝 놀라게 만든 일은 지금도 유명하다. 허 의원은 배우라기 보다는 연출가 체질이다. 신군부의 우등생이던 그는 이 때문에 82년 이철희·장영자사건을 계기로 전두환대통령 주변과의 갈등이 폭발하자 청와대 정무수석 자리를 내놓았다. 83년 1월 훌쩍 미국으로 떠난 그는 워싱턴의 헤리티지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5년을 머물렀다.
『미국생활은 결과적으로 제게는 유익했어요. 자신을 정리해 보는 계기가 되었고… 그러나 외로움속에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낸 가족들에게는 못할 일을 한 셈이지요. 말도 안통하는 외국에서 교포사회와도 담을 쌓고 지냈으니까요. 아이들(1남 2녀)은 내가 왜 미국에 왔는지조차 몰랐습니다.』
그는 지난 5월 모친상을 당했을때 전두환 전대통령이 비서관을 통해 조의를 표해온데 대한 답례로 연희동을 방문,전 전대통령에게 인사했다. 『특별한 말은 없었다. 그분과는 굳이 말을 나누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다 아는 처지다』고 그는 말했다.
허 의원은 어떤 상황에서든 일관성을 갖추고자 하는 원칙론자이면서 동시에 철저한 현실주의자다. 노 대통령의 당적이탈과 박태준최고위원의 신당참여설로 민자당이 한창 혼란에 빠져있을때 대가없이 전격적으로 입당을 결정한 것은 그의 이같은 면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지난 14일 입당에 이어 치른 포항지구당 개편대회에서 그는 『어려운 여건에서 나를 뽑아준 포항시민에게 빚을 갚기 위해,그리고 80년 당시 내가 청산코자 했던 김영삼총재에게 진 정치적 부채를 갚기 위해 입당했다』고 말했다.
허 의원은 이번 총선에서 포항제철이라는 막강한 배경까지 업은 집권여당 후보를 1만표 차이로 물리치고 당선됨으로써 정계에 화제를 낳았다. 거대기업 포철에 대응해 그가 선거전을 「포항시민대 포철경영진」의 대결로 몰고가 승리를 끌어낸 것을 보고 그를 아는 이들은 『역시 허화평이다』고 감탄했다.
『이제 나는 2백99명 의원중 한명일 뿐입니다. 그러나 결코 무력감을 느껴본 적은 없습니다. 다수가 지배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습니다. 대통령선거에서 우리 당 후보가 당선되도록 애쓰고,그 후에는 당내 민주화 등 뜻맞는 분들과 의미있는 일을 할 겁니다. 단 1년을 하더라도 「국회의원은 저렇게 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싶습니다. 너절한 감투싸움 같은건 절대 하지 않겠어요.』<노재현기자>
□허의원 약력
▲경북 포항출신(55세) ▲포항고·육사(17기) ▲보안사령관비서실장(예비역준장)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 ▲미 헤리티지연 수석연구원 ▲현대사회연구소장 ▲14대 무소속 당선(포항)·민자당 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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