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오니의 '정사', 히치콕의 '토파즈', 멜빌의 '암흑가의 두 사람',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사진) 같은 예술영화가 개봉했고, 심지어 흥행에도 성공했던 시절이다. 그러다 70년대 박정희 정권이 영화사를 통폐합하고 외화수입쿼터를 만들어 한 해 수입되는 외국영화가 20편쯤 됐다. 한국영화 역시 호스티스물이 주류가 되고. 황금기가 한순간에 몰락했다."(정성일)
▶70년대-외국문화원 시대
▶80년대-비디오공동체 시대
"비디오가 일종의 시네마테크 구실을 했다. 내 세대는 아니지만, '문화학교 서울' 같은 공동체가 생겨났다. 숱하게 복사를 거듭해 흐릿한 비디오로 원본(!)을 추측하면서 봤다. 그런데 일반관객과 영화광의 골이 깊어진 것이 이때부터 아닐까.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마치 영화에 대한 절대 무공을 익히려는 듯한 분위기였다. 80년대는 정치의 시대, 영화에 대해 떠들기 미안한 시대였다. 그래서 영화에 대한 담론의 성숙이 더 폐쇄적으로 진행된 건 아닐까."(정성일)
▶90년대-다시 극장에 활력
▶2000년대-시네필의 몰락?
"예술영화가 여러 국내영화제에 소개되지만, 영화제 관객이 국내 관객의 전부라는 얘기를 하곤 한다. 영화제에 가면 일종의 해방구처럼 느껴지는데, 밖에서 보면 게토가 된 게 아닐까. 영화에 대한 담론을 말하는 게 우스워진 시대다. 다운로드로 보지 못할 영화가 거의 없고, 영화에 관한 글은 (조금만 길면) '스크롤의 압박'(모니터 한 화면에 담을 수 없어 마우스 스크롤을 아래로 내려야 하는 것)을 받는다."(정성일)
"부연설명이 필요한 대목이다. 각국의 재정지원으로 만들어지고, 다른 시장이 없는 영화라면 영화제 관객이 전부라도 괜찮다. 유럽 장편영화는 대부분이 공적 지원을 받아 만들어진다. 우리처럼 100% 상업자본으로 만든다고 하면 오히려 놀란다. 유럽은 시네마테크도 외부지원이 탄탄하다. 시네필 세대가 정치.문화적 엘리트가 돼서 굳건히 지원을 하니까."(김홍준)
정리=이후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