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신념·명분없이 “오락가락”/14대들어 유난히 많아진 철새의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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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총선후 8개월새 30여명 당적변경/일부 무소속은 소신 따라 정당선택/「실리」찾아 2∼3개당 넘다든 의원들도
김복동의원의 민자당 탈당번복 소동으로 14대 국회의원의 탈당·이적이 새삼 국민적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이번 국회는 별 명분도 없이 당을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철새국회의원들이 유난히 많기 때문이다.
3·24총선후 8개월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당을 바꾼 의원이 벌써 30명. 그중에는 몇개월 사이에 2∼3개 당을 왔다갔다 한 의원들도 적지않다. 여기에다가 김복동의원이 민자당 탈당·번복소동을 벌였고 무소속의 정호용의원은 거꾸로 민자당에 들어가기 위해 유권자의 「형식적 허락」을 받고 있다. 탈당계가 아직 처리되지 않은 박태준의원(민자)도 있다.
정치인이 정치신념과 노선상의 차이 때문에 소속을 옮기는 행위는 비난받을 여지가 없다. 문제는 그게 아니고 대부분 명분과 어울리지 않는 상황논리와 푸대접 또는 소소한 이문을 챙기기 위해 탈당과 입당을 밥먹듯 하는 의원들의 행태다. 그래서 이같은 「철새정치인」을 바라보는 유권자의 시선이 고울 수 없게되어 있다.
○…그동안 집안싸움에 시달리면서 민자당은 여러차례 탈당파동을 겪어왔다. 김복동의원의 탈당파문은 결국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정치권을 우습게 보이게 하는데 일조했다.
민자당 탈당의 특징은 경선 및 노태우대통령 탈당의 후유증과 연결된 정치현상이라는 점. 그러나 「신정치」「개혁정치」라는 포장으로 시작된 탈당의 종착역이 결국 상당부분 개인적인 「실리챙기기」로 끝나버렸다는 비판이 없지 않다.
탈당순서로 정리하면 이종찬·박태준·이자헌·장경우·유수호·박철언·김용환의원 등 8명.
탈당파문의 1호인 이종찬의원은 지금 장경우의원과 함께 새한국당을 만들어 대통령후보로 선출됐다. 이 의원은 5·19경선거부 이후 신당창당·출마를 추진하다가 돈 사람의 역부족으로 일시 당내에 주저앉은 적이 있다.
이자헌·김용환·장경우·박철언·유수호의원 등은 오랜시간 「탈당할까 말까」저울질 하다 박태준최고위원의 탈당파문에 상호 연관되어 탈당을 결행했으나 「신정치」목소리와는 달리 김우중대우그룹회장의 영입운동에 앞장섰다.
장 의원을 제외한 4명은 김 회장이 돌아서고 그 과정에서 악화된 이종찬의원과의 관계 때문에 오갈곳이 없어지자 생존을 위해 국민당으로 들어갔다. 양김반대·정치개혁을 소리 높여 외치고 있지만 이들이 진정으로 정주영대표와 국민당이 그런 명분의 담당세력이 될 수 있다고 믿고있는지 주변에서는 고개를 갸우뚱 하고 있다.
박태준의원은 민자당 탈당선언만 했지 아직 민자당이나 본인 모두 탈당계 처리를 서두르지 않고 있는데 무소속으로 남아 한일의원연맹회장을 계속 맡을 것이란 설과 정기국회 폐회후 아예 의원직을 사퇴할 것이라는 설이 함께 나돌고 있다.
○…민주당에선 한영수·송천영·임춘원·박규식의원 등 4명이 탈당했다. 이들은 모두 당에서 자신들이 생각하는 만큼의 대접을 못받고 있다는 불만 때문에 탈당한 특징을 갖고 있다는 평이다.
한 의원은 다른 세사람과 구별되는 경우다. 그는 민한당때 나름대로 야권의 「차세대주자」재목의 한사람으로 거론됐고 이번에도 민주당후보 경선에 뛰어들 의사를 가졌으나 등록요건을 못갖춰 실패한후 이종찬의원과 손잡고 새로운 정치세력을 만들기 위해 탈당했다.
한 의원은 결국 신당보다는 국민당을 택해 「새정치론」의 한계를 보여주었다.
박 의원은 막강한 재력으로 12·13대 신민당·평민당의 유력한 정치자금 후원자중 한사람이었다. 호남세가 강한 지역구(서울 서대문을) 사정으로 보더라도 민주당 간판이 유리한데도 임 의원은 탈당해 한동안 이곳저곳을 재다가 민자당으로 말을 바꿔 탔다. 자신의 사업관계상 여당이 낫다는 사정이 있을 것이라는 소문도 있다.
당초 국회상임위원장으로 내정됐다가 탈락된데 불만을 품어온 송·박 의원도 최근 민자당에 입당했다. 송 의원은 12대 신민당때 동교동계였다.
박 의원은 12대때 이종찬·이한동의원과 가까웠던 구민정당 출신.
박 의원 지역구(부천남)에는 YS비서실장 출신인 최기선 전의원이 현위원장을 맡고있어 YS로서는 「의리」와 「대선실리」사이의 고민스런 자리에 놓이게 된 셈이다.
○…국민당에서 탈당한 의원 세사람은 저마다 독특한 경우다. 「당운영의 비민주성」을 지적하며 가장 먼저 탈당한 조윤형의원은 가장 많은 물의와 비판을 받은 인물. 민자당 탈당을 선언한 박태준의원을 빼면 유일한 전국구의원이라 비판의 강도가 더 심했다. 전국구의 경우 각 당이 총선에서 얻은 표의 덕분에 앉아서 금배지를 단 사람들이다. 그래서 국민당은 조 의원에 대해 『전국구 의원이 탈당하면서 금배지를 가져가는 것은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냈고 일부 당원들은 집앞까지 찾아가 항의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탈당직후 그는 김영삼민자당 당시대표를 찾아가 입당을 타진했으나 민자당이 먼저 『입당을 원해도 안받는다』고 천명해 「오리알」이 됐다가 결국은 자신이 박차고 나온 민주당으로 되돌아갔다.
두번째로 탈당한 김찬우의원은 반대로 국민당이 비난을 자제하는 드문 경우다. 원래 김영삼민자당총재계인 김 의원은 김 총재의 문중이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지역구 특성까지 있어 당초부터 민자당행이 점쳐지던 인물이었는데 탈당직전까지 국민당 연수원장으로 열심히 일해 좋은 평을 받았다. 더욱이 『총선 당시 선거법 위반혐의로 고발된 상태라 어쩔 수 없이 탈당했다』는 동정론까지 있어 국민당쪽에서는 『민자당에 입당만 하지마라』고 당부했었다.
세번째로 탈당한 박희부의원 역시 30여년간 김영삼총재와 정치생활을 같이해온 골수YS맨인지라 일찌감치 민자당행이 예상됐던 인물인데 국민당으로부터 많은 비난을 사고 떠났다는 점이 김찬우의원과 다르다. 박 의원은 12,13대에 잇따라 낙선했지만 14대에서는 당선이 유력했었는데 공천과정에서 청와대 총무수석이었던 임재길씨에게 밀려나자 무소속 출마를 준비중 국민당에 입당했다. 국민당 의원으로 있으면서도 김 총재를 비난하는 동료의원과 설전을 벌이며 그를 변호할 정도로 김 총재에 대해서는 의리를 보여와 미운털이 박혔었다.
○…무리를 지어 이적한 정치인들은 아무래도 원적의 부담이 없는 무소속의원들. 총선 직후 21명이던 무소속 의원중 17명이 이미 이적을 끝냈으며 남은 4명중 정호용·이강두의원도 민자당행이 예고된 상태인데 이미 이적한 17명중 15명이 민자당을,나머지 2명이 국민당을 택했다.
이적 무소속의원중 가장 덜 비난받는 인물들은 일찌감치 총선중 행선지를 밝혔던 서석재·김길홍·이승무·하순봉·정필근·박헌기의원 등. 반면 가장 비난받는 인물은 당초 국민당행을 약속하고 지원까지 받은 것으로 알려진 최돈웅·양정규의원이다. 서 의원은 김영삼총재의 오랜 측근으로 동해재선거 과정의 매수사건에 연루돼 공식공천을 받지 못했다. 김 총재는 실질적으로 그를 공천하기 위해 민자당 후보로 서 의원의 비서관 출신인 이재국씨를 위장공천 하기까지 했다.
김길홍의원 역시 유세과정에서 내놓고 민자당행을 주장해온 소신파. 구민정계 인사로 13대 민정당 전국구 의원이었으나 민주계인 13대 지역구 오경의의원의 공천을 뺏지 못하자 당선되면 민자당 입당을 공약하고 무소속으로 나서 당선후 바로 입당했다.
이승무·하순봉의원 등도 공천에서 밀렸던 사람들. 이 의원은 봉명그룹 부회장이라는 재력을 기반으로 지역을 오랫동안 다져왔으나 민주계인 신영국의원과의,하 의원 역시 구민정계 인사로 지역기반을 탄탄히 다져왔으나 김 총재의 비서출신인 조만후의원과의 공천경쟁에서 각각 탈락해 「두더지작전」을 펴 당선된뒤 「지역여론」을 감안해 일찌감치 민자당으로 들어갔다.
반면 최돈웅·양정규의원은 국민당에서 내놓고 비난하는 인물. 두사람 모두 국민당 입당을 약속하고 자금지원까지 받았는데 배신했다는 것이다. 국민당 정주영대표는 『돈을 주고 받은 수령증을 가지고 있다』며 『민자당의 공작정치로 뺏겼다』고 주장해 왔다. 최 의원은 경월소주회장으로 원래 지역기반이 탄탄한 여권인사였는데 최종완 전건설부장관에게 공천이 돌아가자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며,양 의원은 같은 제주도 출신으로 뒤늦게 합류한 현경대의원과 함께 13대에 민정당으로 낙선했다가 무소속으로 다시 금배지를 딴뒤 민자당으로 돌아온 케이스. 양 의원은 전통적으로 무소속으로 당선됐다가 여당에 가면 다음에 떨어진다는 제주도의 징크스에도 불구하고 여당으로 다시 돌아온뒤 「15대에서는 다를 것」이라고 호언하고 있다.
나머지 민자당 입당의원은 대부분 구민정계 또는 5공인사들. 5공 핵심이었던 허화평의원은 은인자중하다가 포철의 박태준회장을 사실상의 표적으로 싸워 당선된뒤 조건없이 민자당에 입당했다. YS가 허 의원의 입당을 받아들이자 박태준의원은 강한 반발을 보였었다. 같은 5공의 핵심으로 전두환 전대통령의 동서인 김상구의원은 반노태우대통령의 확실한 입장을 취하다 노 대통령이 민자당 총재직을 사퇴한뒤 입당했다. 또 다른 5공핵심인 이상재의원은 지역구 인사들의 김 총재 지지를 다짐받는 절차를 거친뒤 입당.
구민정당 의원으로 국회사무총장을 지냈던 이재환의원과 구민정당 위원장이었던 조진형의원도 공천탈락후 무소속으로 나왔던 인물.
국민당에 입당한 김정남·변정일의원은 상대적으로 특이한 경우. 5공인물인 김정남의원은 국민당 공천에서 탈락해 무소속으로 당선된후 「김영삼지배하의 민자당에 갈 수 없다」며 국민당에 입당했으며,율사출신인 변 의원은 정주영대표로부터 지원을 받고 당선된뒤 약속대로 국민당에 입당해 「의리를 지켰다」는 점에서 정 대표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있다.<김진·오병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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