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Review] 날씨가 때론 역사까지 바꿔 버렸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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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세계사 캐스터 로라 리 지음, 박지숙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318쪽, 1만2000원

보통의 경우 날씨 얘기는 부담없는 이야기거리다. 도대체 이해관계에 걸릴 위험이 적어서다. 하지만 "역사를 바꾼 날씨도 있다"는 게 이 책의 주장이다. 교양서 집필 작가인 저자는 날씨가 만들어낸 세계사의 결정적 순간을 44건이나 뽑아냈다.

날씨가 운명을 가른 사례의 상당수는 전쟁이다. 폭우와 혹한.안개는 대규모 병력과 첨단 무기를 무력화했다.

나폴레옹과 히틀러는 러시아의 날씨 앞에 무릎을 꿇었다. 1812년 나폴레옹은 60만 대군을 이끌고 러시아로 진격했다. 이들이 상대해야 할 러시아 병력은 겨우 18만명. 승리를 장담했다. 악명 높은 러시아의 혹한도 걱정 없었다. 출발은 5월 말. 나폴레옹은 겨울이 오기 전에 전쟁을 끝낼 계획이었다. 하지만 러시아는 지독한 추위 못지않은 지독한 더위의 나라였다. 탈수에 시달린 병사들이 말 오줌까지 먹었다. 병사들은 총탄이 아닌 더위와 피로에 죽어나갔고 두 달 만에 주요병력이 10만명으로 줄어들었다. 11월부터는 추위의 강공을 받았다. 기온이 영하 38도까지 떨어졌다. 추위와 굶주림에 살아남은 병사는 3만명에 불과했다.

제2차 세계대전때 러시아를 침공한 히틀러도 나폴레옹의 전철을 그대로 밟았다.

한편 베트남은 우기 덕에 인도차이나 전쟁(1946~1954)에서 프랑스를 이겼다. 폭우가 프랑스군 기지를 물바다로 만들었고, 보급품의 항공기 공수를 막았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날씨의 위력은 전방위적이다. 저자는 4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 해리 트루먼이 공화당 후보 토머스 듀이를 물리친 것도 날씨 덕이라고 분석한다. 공화당이 우세한 일리노이 주와 캘리포니아 주 북부지역에 비바람이 몰아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스트라디바리우스의 바이올린이 명품이 된 이유도 소빙하기 시대의 기온 하강 시기에 자란 나무가 특수한 음향을 내게 하기 때문이란다.

물론 갖가지 역사적 사건의 주요 원인을 '날씨'로 단순화하는 건 무리다. 특히 67년 미국 디트로이트의 흑인 폭동이 무더위 때문에 일어났다든지, 86년 챌린저호 폭발사고의 원인이 그날 내린 비라든지 등의 해석엔 선뜻 동의하기 힘들다. 하지만 날씨 덕에 세계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머리에 쏙쏙 들어오니, 이 책은 교양서로서 한몫 톡톡히 하지 싶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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