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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기획] 벗는다고 다 뜨는 것 아냐!

중앙일보

입력

월간중앙연예인들이 과감해지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이들의 노출 수위가 ‘방송 불가’의 마지노선을 넘나들기 시작했다. 여성 연예인들의 섹시 이미지가 잘 팔리는 상품으로 인식되면서 경쟁하듯 과감한 의상과 춤을 선보이고 있다. 왜 그들은 노출에 열중하는 것일까?


지난 5월2일. 한 음악 전문 케이블 채널의 음악 순위 방송 리허설 현장. 섹시 이미지로 데뷔 초부터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 가수 C(29) 씨가 무대에 등장했다.

허리를 드러낸 짧은 상의는 가슴 부분이 깊게 패였고 하늘색 미니스커트는 아슬아슬하다. 게다가 미니스커트는 마치 술처럼 세로로 가늘게 갈라진 모양이어서 흔들릴 때마다 속이 비친다. 검은색 속바지를 착용했지만 아찔하기는 마찬가지. C씨와 백댄서들의 자극적인 춤에 관계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집중됐다.

여성 4인조 그룹에서 활동했던 가수 S씨. 지난 2월 말 솔로로 데뷔하면서 ‘치골패션’이라고 불리는 파격적인 무대의상을 선보여 화제가 됐다. 거의 속옷만큼이나 짧은 핫팬츠에 골반부터 허리까지 훤히 뚫린 의상이었다. 결국 “지상파로 방송하기에는 노출 수위가 너무 높다”고 방송국 측으로부터 경고받은 후 다른 옷으로 교체했다. 세 개 지상파 방송국 모두 이 의상으로는 자사 음악 프로그램에 출연하지 못한다고 통보했다.

‘탈의(脫衣)’ 일색 TV 프로그램

여성 연예인들의 노출은 왜 만년 유행일까? 성적 매력이 대중의 관심을 끄는 가장 쉽고 강력한 도구라는 이유를 쉽게 떠올릴 수 있지만, 연예시장에는 또 다른 잇속이 있다. 과도한 노출은 곧 ‘논란’으로 이어지는데, 신인이나 인지도가 낮은 연예인의 경우 이를 이름 띄우기에 이용하기도 한다.

이름하여 ‘노이즈 마케팅’.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일단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게 함으로써 신인의 이름을 띄우려는 전략이다. 요즘 연예계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한 여성 듀오의 경우를 보면 연예인의 노출이 얼마나 일반의 흥미를 끄는 요소인지 알 수 있다.

이 여성 듀오는 얼마 전 비키니 차림과 흰 셔츠에 하의는 속옷만 입은 모습으로 화보를 찍어 공개했다. 그 후 이들 여성 듀오와 관련한 제목이 연일 연예면을 장식했다. 덕분에 이 그룹의 이름은 각종 포털 사이트 검색어 순위 상위권에 들 정도로 일반의 관심을 끌었다.

아예 누드 화보로 연예계에 데뷔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 누드 화보를 공개한 N(23) 씨는 데뷔하기 전인 연예인 지망생이다. 처음 N씨의 이름이 언론에 등장한 것은 지난 3월, 모바일 서비스를 통해 비키니 차림의 사진 등이 포함된 화보가 유통되면서부터다.

이후 언론매체에 N씨의 화보 관련 기사가 계속 실리며 꾸준히 관심을 모으더니 최근에는 전라의 화보를 찍어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N씨의 이름이 주요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어 1위를 기록하자 네티즌들 사이에 “도대체 누구냐”는 문의가 쇄도했다. 이름 하나만큼은 대중에게 확실히 알린 것이 틀림없다.

“사실 연예인의 야한 무대의상이나 화보 촬영 등이 논란을 불러 나름의 마케팅 효과를 본다고 하더라도 그게 노이즈 마케팅인지 뭔지 어떻게 구분하고 막겠는가? 가끔 너무 들이대는 식으로 홍보용 노출을 해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가 있다.”

방송 출연자 섭외를 담당하는 한 관계자의 말이다.

연예인의 섹시 이미지가 소비자인 대중에게 가장 구미가 당기는 상품이라는 것에 대해 연예계 관계자들은 모두 동의한다. 그렇기에 섹시 이미지를 미끼로 한 노이즈 마케팅도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케이블 채널의 프로그램이 노출 경쟁의 장을 제공하기도 한다. 케이블 채널 tvN의 는 ‘최고의 섹시 엔터테이너를 찾는다’는 목표 아래 여성 참가자들이 성적 매력을 겨루는 프로그램이다.

남성을 앞에 앉혀 놓고 여성 참가자가 옷을 차례 차례 벗거나 비키니 차림으로 도발적인 동작을 취해 남성의 심장 박동수가 올라가게 한다. 케이블 채널은 지상파에 비해 심의 기준이 낮아 이처럼 파격적이고 선정적인 프로그램도 방송이 가능하다.

연예인의 노출 수위 상승에는 사회 전반의 분위기 변화도 영향을 미쳤다. 음악 전문 케이블 채널인 KM TV에서 <라이브 쇼 랭크>를 제작하는 최승준 프로듀서는 연예인이 성적 매력을 부각시키기 위해 과도하게 노출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1995년 무렵 한 혼성 그룹이 공전의 히트를 했을 때도 여성 멤버인 K씨가 섹시 느낌으로 등장했잖아요? 이후 그런 여가수 행렬은 쭉 이어지고 있어요. 문화의 소비자인 대중이 변했기 때문에 연예인의 노출도 심해졌다고 봐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자신의 몸을 가꾸고 드러내는 데 익숙한 분위기가 조성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거리에는 연예인의 무대의상을 능가할 정도로 짧은 스커트를 입은 여성이 많다.

최 PD는 <슈퍼 바이브 파티(super vibe party)>라는 M·net 음악방송의 간판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클럽에서 젊은이들이 자유롭게 춤추고 어울리는 모습을 담은 프로그램이었는데, 방송은 인기를 끌었지만 그 모습이 지나치게 선정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춤추는 여성 중 몇 명이 짧은 치마나 가슴이 드러나게 팬 상의를 입은 모습, 처음 만나는 남녀가 과도하게 몸을 밀착하는 장면 등이 여과 없이 방송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 PD는 “지금 세대가 자유롭게 즐기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줬을 뿐”이라고 말했다.

“결국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예전보다 몸의 자유를 더 많이 허용하기 때문에 연예인 노출이 과감해지고 있죠.”

연예인 노출은 그 판단 잣대가 모호해 규제하기 힘든 측면도 있다. 방송심의규정은 있지만 방송불가 판정 등의 조치를 내리는 경우를 보면 매우 주관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근 KBS의 가요 프로그램인 <뮤직뱅크>가 언론의 뭇매를 맞았다. 지난 4월29일 방송에서 가요계에서 대표적인 섹시스타로 손꼽히는 가수 C씨와 S씨가 함께 특별공연을 하며 보여준 퍼포먼스 때문이다. 두 사람은 함께 공연하며 ‘워터 스크린’이라고 불리는 물이 쏟아지는 장치를 통과해 온몸을 적신 채 관능적인 춤을 선보였다.

바로 다음날 각종 인터넷 매체에 이 공연의 선정성을 비판하는 기사가 줄을 이었다. 검은색 블라우스를 입고 공연한 S씨의 몸매가 물에 젖어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처음 녹화했을 때는 S씨가 흰색 셔츠에 안에 검은색 속옷을 입고 공연했는데, 이를 두고 제작진에서도 의견이 분분했어요. ‘물에 젖으면 비치는 것이 당연하니 그냥 가자’는 사람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방송이 낮시간대이고 몸이 많이 비치는 것이 문제가 될 것 같아 검은색 블라우스로 갈아입고 다시 촬영할 것을 요구했죠.”

<뮤직뱅크>의 윤현준 PD의 당시 상황 설명이다. ‘물 쇼’라고 불리는 그 공연이 논란이 된 데 대한 심정을 물었다.

“그날 방송이 ‘여가수 특집’이었고, 두 사람의 공연이 ‘스페셜 스테이지’여서 뭔가 색다른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없을까 고민하던 중 나온 아이디어가 ‘워터 스크린’이었어요. 선정적이라고 비판하는 기사들이 나오기는 했지만 시청자 게시판에는 그런 불만이 많지 않아 언론이 침소봉대했다는 생각이에요.”
윤 PD는 “쇼는 쇼여야 한다”며 말을 이었다.

“라디오면 모르겠지만 쇼는 볼거리가 있어야 합니다. 여러 가지 즐거움을 선사하는 창의력까지 죽이면 안 됩니다. 가릴 것은 가리며 제작진과 연예인이 자기 상식에 따라 판단을 내려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그게 ‘어디까지여야 한다’는 기준이 모호해서….”

▶홍대 앞 댄스클럽에서 춤을 추는 젊은이들.

선정성 규제하는 판단 잣대 부재

다소 억울하다는 PD들의 입장과 달리 방송의 선정성에 대해 제작진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는 여전히 높다. KBS <뮤직뱅크> 시청자 게시판에는 ‘물 쇼’ 방송을 두고 “아이와 밥을 먹다 방송을 보는데 몇 번이나 채널을 돌렸는지 모른다”는 어떤 부모의 글이 올라와 있었다.

청소년들의 생각은 또 다르다. 중학교에 다니는 장모(14) 양은 “연예인들의 의상이 야하다고 어른들은 나쁘게 생각하는데, 우리는 그냥 멋지다고 생각해요. 수련회를 가거나 수학여행을 가서 연예인처럼 입고 춤도 따라 추는데 나쁘다는 생각은 안 들었어요”라고 말했다. 기성세대와 주요 시청자인 청소년층이나 제작진 사이에 인식의 괴리가 있는 것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연예인의 의상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가수의 의상은 소속 기획사와 코디네이터 측이 철저한 협의를 거쳐 결정한다. 기획사 규모가 크면 아예 기획사가 코디네이터를 고용하는데, 대부분은 코디네이터와 스타일리스트가 소속된 회사와 기획사가 계약한다.

의상은 가수의 노래 분위기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이기 때문에 신중하게 검토하며, 가수 본인의 의견을 반영하기도 한다. 최근 가수들의 과도한 노출은 해외 유명 패션 컬렉션의 영향을 받기도 한단다. 연예인 코디네이터로 일하는 구은주(22) 씨의 말.

“연예인 의상을 디자인할 때 해외 유명 컬렉션을 참고하고 이를 개념에 맞게 변형해 의상에 차용하기도 합니다. 연예인들의 아주 짧은 미니스커트는 해외 컬렉션에서 유행했던 나노 미니스커트(극도로 짧은 치마)의 영향을 받았죠.

그러나 최근 연예계에서 이상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몇몇 가수가 ‘안티 섹시’를 공언하며 노출 0%의 의상으로 정면 승부에 나선 것이다. 대표적 성공 사례가 가수 아이비(25)다. 노출을 안 하다 못해 온몸을 둘둘 감싼 의상으로 무대에 올라 박력 있는 춤을 춘다. 목까지 올라오는 블라우스에 재킷까지 걸쳤다. 성적 매력을 앞세워 뜨거운 경쟁을 펼치던 연예계 ‘레드 오션’에서 ‘블루 오션’ 전략을 펼친 셈이다.

노출 없이도 섹시할 수 있다!

아이비는 2집 앨범을 출시한 지 두 달 만에 각종 가요 프로그램 1위를 휩쓸었다. 아이비의 선전은 벗어야 매력적이라는 기존의 고정관념을 완전히 뒤바꿨다고 평가받는다.

코디네이터 구은주 씨는 “최근에는 엉덩이가 보일 정도로 짧은 미니스커트와 가슴 바로 아래까지 노출하는 배꼽티는 금물”이라고 말한다. 노출이 과하면 자칫 천박해 보일 수 있기 때문이란다. 오히려 의상의 일부분을 살짝 가리면서 보일 듯 말 듯한 긴장감을 주는 것이 더 낫다고.

<스포츠한국> 연예부의 안진용 기자는 “오히려 요즘에는 여성 연예인의 노출이 더 줄었다”고 한다. 각종 인터넷 매체가 늘어나면서 어떤 방송이 조금이라도 선정적이다 싶으면 바로 다음날 비판 기사를 내보내 방송국을 질책하기 때문이란다. 안 기자는 “결국 과도한 노출을 통한 관심 모으기는 한 순간의 이슈일 뿐”이라고 밝혔다.

KM TV의 최승준 PD도 “앨범의 개념이나 이미지에 맞지도 않는데 그저 이목을 끌기 위해 일단 벗고 나오는 가수들이야말로 정말 보기 ‘민망한’ 가수들”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또 “대중 앞에서 자꾸 벗다 보면 나중에는 더 이상 그들에게 줄 자극이 없어져요. 그래서 노출은 잘못하면 연예인 생명에 독이 되기도 하죠. 실력과 ‘끼’로 무장해 성적 매력을 진정한 매력으로 승화할 수 있을 때 노출은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라고 말했다.

이제 곧 여름이 돌아온다. 시원한 옷차림의 연예인들이 브라운관을 메울 것이다. 그러나 과도한 노출이 가져다주는 화제성만 믿고 나왔다가는 냉정한 대중의 평가에 의해 ‘알몸으로’ 쫓겨날지도 모른다.

박미소_월간중앙 기자 smile8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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