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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 과제는 「보수유산」청산/재정적자·빈부격차 등 줄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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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미국인 자신을 돌봐야 할때
빌 클린턴 미 대통령당선자는 군사력 우위유지 못지않게 실업·재정적자·빈부격차 등 국내문제 해결에 주력해야 한다고 워싱턴 포스트지의 칼럼리스트인 E J 다이온이 주장했다. 다음은 그의 칼럼을 요약한 것이다.
【워싱턴포스트=본사특약】 이제 막 미국역사의 한 시대가 막을 내렸다. 빌 클린턴의 승리는 시장경제와 전통적인 가치,군사적 우위로 세계질서를 개편하려던 보수주의자들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었다.
클린턴대통령당선자는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12년전에 그랬던 것처럼 새 시대의 윤곽을 그리고 역사에 전환점을 이을 기회를 잡았다고 할 수 있다. 레이건은 자기 시대를 장악했다. 그는 대통령의 권한을 확대했고 미국의 국제적 역할·경제·가족관·사법분야에까지 엄청난 변화를 선도해 나갔다.
클린턴과 무소속후보였던 로스 페로는 다른 것은 몰라도 정부가 국가 경제를 올바르게 이끌기 위해서는 세금인상 이상의 일을 해야 한다는 점은 확실히 인식하고 있었다.
여기서 구시대가 어떠했고,또 업적들이 무엇인가를 논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새 시대의 윤곽이 잡힐 수 있을 것이다.
레이건과 부시행정부를 비난하는 사람들에게는 4조달러나 되는 재정적자와 미국경쟁력 둔화,실질임금 하락 등이 가장 버리고 싶은 유산으로 꼽힌다. 이들은 또 인종간 갈등의 심화,노숙자 증가,투기확산,빈부격차 확대 등도 지적한다.
그러나 보수주의자들의 평가는 이와 다르다.
보수주의자들은 공산권의 몰락을 앞당기고,미국을 세계 유일의 군사강국으로 건설했는데도 그렇게 평가할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
보수주의 시대가 물려준 여러 유산중에서 재정적자에 관심이 집중된다. 아마 이 재정적자는 앞으로도 보수주의자들의 정치적 실패의 상징으로 운위될 것이다.
보수주의자들은 작은 정부가 국민들에게 유리하다는 점을 유권자들에게 이론적으로 설득시킬 수 있다고 말해 왔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설득에 실패했으며,어떻게 보면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번에 보수주의자들은 국민들을 설득시키지 못한데 대한 대가를 혹독하게 치렀다. 가장 큰 피해자가 조지 부시였다. 재정적자에 당면해 레이건과 부시는 계속 세금을 인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레이건은 세금을 인상하는데 대한 대가를 치르지 않았지만 부시는 그 대가를 지불했다.
레이건­부시시대가 끝나더라도 경제적 성과에 대한 논의는 앞으로도 몇년간 계속될 전망이다. 지난 80년대에 경제적 성장이 상당히 이루어졌으나 많은 미국인들은 그 열매를 맛보지 못했다고 느꼈다. 이 기간에 많은 사람들이 급여와 복지수준이 더 떨어지는 직장으로 옮겨야 했고,많은 가정이 생계를 꾸리기 위해 밤낮으로 일을 해야만 했다.
이같은 현실은 보수주의자들에게 경제적 문제를 넘어 윤리적 문제까지 야기했다. 만일 보수주의자들이 신봉했던 가치들이 일에 대한 정당한 대가,가정의 안정,준법 등이었다면 그런 가치들을 착실히 지켰던 사람들이 뒤처진데 대해 보수주의자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런 실상은 온건보수주의 성향 때문에 「전통적 가치」를 믿고 레이건을 지지했던 소위 레이건 데모크랫들에게는 중대한 위기였다. 이들이 공화당 정부에 배신감을 느끼고 이번 선거에서 옛동지에게 돌아가 버렸다.
레이건 데모크랫들은 당시 보수주의자들의 반공산주의와 미국의 힘을 되찾겠다는 의욕에 끌렸었다. 이같은 자신감은 공산주의 붕괴에 이어 지난해 걸프전에서 미국이 승리했을때 최고조에 달했었다.
보수주의자들은 지금도 베트남전후 회의의 시대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미국이 유일강대국의 지위를 확보했다는 점을 들어 자신들의 승리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군사력은 유권자들에게 중요한 이슈가 못되었다.
정치·군사적 경쟁에서 구소련을 패퇴시켰던 미국은 지금은 일본과 서유럽 경제강국들과 경쟁을 벌이는데 허둥대고 있다. 바로 이것이 보수주의 시대의 중요한 아이러니의 하나다. 과거 구소련 공산주의와의 대항만큼 미국 보수주의자들을 단결시켰던 요소도 없었다. 이 때문에 보수주의자들은 냉전에서의 승리를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의 하나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유권자들은 냉전의 승리는 어제일이고 『지금은 우리 자신을 돌볼 때』라고 인식하기 때문에 「총사령관」으로서의 역할을 강조한 부시의 호소도 먹혀들지 않았다.
레이건­부시시대의 「전통적 가치」옹호는 진보주의자들의 평가보다는 더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보수주의자들이 당초 기대했던 수준에는 훨씬 못미친다. 클린턴도 선거운동과정에서 보수주의로 일컬어지는 일부 가치들이 미국에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시인했다. 그는 또 사기업에 대한 신의와 복지프로그램 수혜자들의 「의무」,가정의 안정,범죄퇴치 등을 강조하고 관료주의를 비난했다.
공화당은 이번 선거에서 클린턴의 베트남전 참전기피와 마리화나 복용,힐러리 클린턴의 페미니즘 등 지난 60년대 정치에 뿌리를 둔 이슈를 내걸고 클린턴을 공략했다. 이 때문에 클린턴은 동성애자들의 권리와 남녀평등을 더욱 열성적으로 옹호했으며,단서를 달긴 했지만 낙태권도 지지했다.
클린턴은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부시뿐 아니라 지난 12년동안의 실정을 싸잡아 공격했다. 그는 한시대의 마감을 위해 전력투구했고 결국 그 일을 해냈다.<정리=정명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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