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거짓 출장으로 47억원 나눠먹은 성북구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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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국가청렴위원회 조사 결과 서울 성북구청이 최근 2년 반 동안 허위 서류를 만들어 출장비 조로 47억여원, 해외 연수비 명목으로 1억여원을 직원들에게 부당 지급했다고 한다. 전체 직원의 절반 이상이 포함돼 있다. 성북구청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는 심각한 수준이다. 청렴위가 조사하던 날에도 일부 직원은 버젓이 거짓 출장 신청서를 작성했다가 적발됐다. 지난달에는 일부 직원이 허위로 초과근무 수당을 받아 온 사실이 들통나 조사받고 있다.

성북구청의 자체 재정수요 충족도는 37%에 불과하다. 서울의 25개 구청 가운데 16위로 가난한 축에 든다. 많은 주민은 경제난과 늘어나는 세금 부담 속에서 하루하루 어렵게 살고 있는데, 구청 공무원들은 서로 짜고 혈세를 훔쳐 갔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셈이었다. 이러니 공무원들이 욕을 먹는 것이다.

다른 구청들에 대해서도 조사하고 재발 방지책을 세워야 한다. 성북구청 측은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라고 밝히지 않았는가. 그런데 출장비는 지자체 자치 업무이기 때문에, 서울시는 감사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구청에 예산을 지원하는 서울시가 왜 구청의 지출 실태를 감사할 수 없는지 의아스럽다. 서울시가 규정을 고치든지, 청렴위가 나서야 한다. 다른 시.도 역시 마찬가지다.

청렴위는 성북구청장에게 부당 지급된 출장비를 환수하고 대상자를 엄중 징계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구청장이 거부하면 그만이라고 한다. 이런 황당한 일이 어디 있는가. 최종 책임은 성북구청장에게 있다. 울산 등 일부 지자체는 올해 공무원 인사 혁명을 실시해 주민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는데, 그는 내부 비리에 대해서도 눈감고 있었다. 몰랐다면 무능력한 것이고, 묵인했다면 방조가 아닌가.

주민.시민단체들 사이에선 지난달 처음 도입된 주민소환제를 통해 성북구청장을 심판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구청장이 대상자를 징계하지 않는 등 책임 있는 처리를 안 할 경우 소환제를 동원해야 한다. 그리고 지자체장을 잘못 뽑으면 지역이 망한다는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