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토 오 브리옹의 포도 수확.
1855년의 그랑 크뤼 등급 지정은 사실상 메독 지역 와인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오 브리옹은 그라브 지역 와인임에도 당당히 1등급의 자리를 차지했다. 무시하고 넘어가기엔 지나치게 유명하고 뛰어났던 것이다.
오 브리옹은 미국과 인연이 깊다. 오 브리옹의 이름을 세계에 널리 알린 이는 프랑스 주재 대사를 지낸 미국의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이었다. 와인에 전문가적 식견을 가졌던 그는 오 브리옹을 "최고의 와인"이라 치켜세웠다. 오 브리옹의 소유주도 미국인이다. 1935년 미국인 은행가 클라란스 딜론이 매입했다. 현재 주인은 그 외증손자인 룩셈부르크 왕자 로버트다. 델마 사장은 "로버트의 아버지가 헨리 4세의 직계손이라 그에게도 '왕자'라는 칭호가 붙는다"고 설명했다. 오 브리옹은 5대 샤토 중 미국에서 유난히 사랑받는 와인이기도 하다.
#시음해 보니=오 브리옹의 시음실은 따사로움이 넘쳤다. 세 방향으로 난 큰 창에서 햇살이 쏟아졌다. 오 브리옹에선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는 블렌딩 작업을 할 때도 이 예쁜 방을 쓴다고 한다. 일하는 사람이 즐거워야 와인에서도 행복이 배어난다는 걸까.
오 브리옹은 생산하는 모든 와인의 2004년산을 다 내놓았다. 그라브 지역은 레드 와인에 매진하는 메독과 달리 화이트 와인도 유명하다. 오 브리옹 또한 '샤토 오 브리옹 블랑' 등 두 종류의 화이트 와인을 만든다. 그 중 오 브리옹 블랑은 2년에 약 2500병만 생산하는 희귀한 와인이다.
오 브리옹의 와인은 레드든 화이트든 마시기가 참 편했다. 하지만 이는 초보자의 생각일 뿐, 델마 사장은 "오 브리옹은 특징이 너무 분명해 블라인드 테이스팅(와인의 이름을 가리고 시음하는 것) 때도 놓칠 수가 없다"고 했다. 가벼운 듯 묵직하고, 달콤한 듯 기품있는 맛. 샤토 마고의 폴 퐁탈리에 사장은 "식은 벽난로의 향기가 난다"는 평을 하기도 했다.
'샤토 오 브리옹'의 장 필립 델마(38.사진) 사장은 샤를 슈발리에(샤토 라피트 로칠드)와 폴 퐁탈리에(샤토 마고)의 뒤를 잇는 보르도의 차세대 스타다.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도 차례로 오 브리옹의 사장을 지냈다. 3대째 오 브리옹의 품질을 책임지고 있는 것이다.
- 아버지, 할아버지의 명성이 부담스럽지는 않은가.
"두 분이 농부였다면 나는 농부이자 비즈니스맨이다. 아버지보다 더 열심히 일하며 더 완벽한 샤토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포도밭 관리만 해도 아버지는 구획별로 나눠 했다면 나는 포도나무 하나하나를 다 신경쓴다."
- 오 브리옹의 세컨드 와인인 '샤토 바앙 오 브리옹'은 '샤토 오 브리옹'과 맛의 차이가 크지 않다.
"1등급 샤토 중에도 대표 와인인 그랑 뱅용 포도밭과 세컨드 와인용 포도밭을 별도 관리하는 곳이 있다. 우리는 밭을 구분하지 않으며 2차 발효 뒤 양조된 와인의 맛을 보고 어떤 라벨을 붙일지 결정한다. 이것이 3대째 내려오는 델마 가(家)의 원칙이다."
- 오 브리옹만의 개성은 무엇인가.
"오 브리옹은 테루아르의 특징이 맛에 그대로 드러난다. 시가 상자에서 나는 삼나무 향, 볶은 커피의 향, 초콜릿 향 등이 대표적이다. 아바나 시가의 향도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