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CoverStory] 샤토 오 브리옹 … 개성 만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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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토 오 브리옹의 포도 수확.

소박하지만 기품이 느껴지는 '샤토 오 브리옹(Chateau Haut Brion, 이하 오 브리옹)'의 내실. 장 필립 델마 사장과 함께 오찬을 즐겼다. '모차렐라와 토마토 타르트'로 시작해 '시금치와 감자를 곁들인 양갈비''작게 썬 채소를 곁들인 포이악 양갈비'에 이어 '모듬과일 크럼블'로 끝난 식사는 행복했다. 와인은 또 어떤가. 화이트 와인인 '샤토 오 브리옹 블랑' 2002년산, 오 브리옹과 형제 격인 '샤토 라 미숑 오 브리옹' 1998년산, 사장과의 오찬이 아니라면 맛보기 힘들었을 '샤토 오 브리옹' 1988년산까지. 오후 취재를 위해서는 식사도 와인도 자제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오 브리옹은 우리에게 비교적 생소한 와인이다. 다른 1등급 샤토들은 모두 메독 지역에 있지만, 오 브리옹은 그 남쪽 그라브 지역에 뿌리박고 있다. 그라브는 '자갈'이란 뜻. 그만큼 밭에 자갈이 많다. 토양이 다른 만큼 생산되는 와인의 맛도 달라, 메독 지역의 그것보다 훨씬 부드럽고 친근하다.

1855년의 그랑 크뤼 등급 지정은 사실상 메독 지역 와인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오 브리옹은 그라브 지역 와인임에도 당당히 1등급의 자리를 차지했다. 무시하고 넘어가기엔 지나치게 유명하고 뛰어났던 것이다.

오 브리옹은 미국과 인연이 깊다. 오 브리옹의 이름을 세계에 널리 알린 이는 프랑스 주재 대사를 지낸 미국의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이었다. 와인에 전문가적 식견을 가졌던 그는 오 브리옹을 "최고의 와인"이라 치켜세웠다. 오 브리옹의 소유주도 미국인이다. 1935년 미국인 은행가 클라란스 딜론이 매입했다. 현재 주인은 그 외증손자인 룩셈부르크 왕자 로버트다. 델마 사장은 "로버트의 아버지가 헨리 4세의 직계손이라 그에게도 '왕자'라는 칭호가 붙는다"고 설명했다. 오 브리옹은 5대 샤토 중 미국에서 유난히 사랑받는 와인이기도 하다.

#시음해 보니=오 브리옹의 시음실은 따사로움이 넘쳤다. 세 방향으로 난 큰 창에서 햇살이 쏟아졌다. 오 브리옹에선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는 블렌딩 작업을 할 때도 이 예쁜 방을 쓴다고 한다. 일하는 사람이 즐거워야 와인에서도 행복이 배어난다는 걸까.

오 브리옹은 생산하는 모든 와인의 2004년산을 다 내놓았다. 그라브 지역은 레드 와인에 매진하는 메독과 달리 화이트 와인도 유명하다. 오 브리옹 또한 '샤토 오 브리옹 블랑' 등 두 종류의 화이트 와인을 만든다. 그 중 오 브리옹 블랑은 2년에 약 2500병만 생산하는 희귀한 와인이다.

오 브리옹의 와인은 레드든 화이트든 마시기가 참 편했다. 하지만 이는 초보자의 생각일 뿐, 델마 사장은 "오 브리옹은 특징이 너무 분명해 블라인드 테이스팅(와인의 이름을 가리고 시음하는 것) 때도 놓칠 수가 없다"고 했다. 가벼운 듯 묵직하고, 달콤한 듯 기품있는 맛. 샤토 마고의 폴 퐁탈리에 사장은 "식은 벽난로의 향기가 난다"는 평을 하기도 했다.

장 필립 델마 사장…할아버지·아버지 이어 3대째 CEO

'샤토 오 브리옹'의 장 필립 델마(38.사진) 사장은 샤를 슈발리에(샤토 라피트 로칠드)와 폴 퐁탈리에(샤토 마고)의 뒤를 잇는 보르도의 차세대 스타다.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도 차례로 오 브리옹의 사장을 지냈다. 3대째 오 브리옹의 품질을 책임지고 있는 것이다.

- 아버지, 할아버지의 명성이 부담스럽지는 않은가.

"두 분이 농부였다면 나는 농부이자 비즈니스맨이다. 아버지보다 더 열심히 일하며 더 완벽한 샤토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포도밭 관리만 해도 아버지는 구획별로 나눠 했다면 나는 포도나무 하나하나를 다 신경쓴다."

- 오 브리옹의 세컨드 와인인 '샤토 바앙 오 브리옹'은 '샤토 오 브리옹'과 맛의 차이가 크지 않다.

"1등급 샤토 중에도 대표 와인인 그랑 뱅용 포도밭과 세컨드 와인용 포도밭을 별도 관리하는 곳이 있다. 우리는 밭을 구분하지 않으며 2차 발효 뒤 양조된 와인의 맛을 보고 어떤 라벨을 붙일지 결정한다. 이것이 3대째 내려오는 델마 가(家)의 원칙이다."

- 오 브리옹만의 개성은 무엇인가.

"오 브리옹은 테루아르의 특징이 맛에 그대로 드러난다. 시가 상자에서 나는 삼나무 향, 볶은 커피의 향, 초콜릿 향 등이 대표적이다. 아바나 시가의 향도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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