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은 세졌고… 짐은 무거워지고…/전환기 맞는 미국(클린턴시대: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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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백일내 경제개선 가시화돼야/세계 이끌 참모인선이 시험대
빌 클린턴은 변화를 내걸고 미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만큼 그에게는 역대 어느 미 대통령보다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출발하는 것이다.
미국 국민들은 좀더 많은 일자리,더나은 교육,개선된 의료보험,경기 활성화 등을 내건 그의 공약을 보고 그를 대통령으로 밀었다.
따라서 클린턴대통령당선자는 백악관에 들어서자마자 국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경제적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임기가 4년이라고는 하지만 4년동안 기다리며 천천히 해결할 수 없다.
임기시작후 1백일안에 이러한 변화에 착수치 못하면 결국 4년동안 아무것도 해낼 수 없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대통령으로서 참작할 사항도 많아지고 사정을 봐야할 요소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선거의 여세를 몰아 집권초기에 개혁을 시도해야 한다.
미국의 경제가 가장 나빴던 30년대의 대공황시절에 현직인 허버트 후버대통령을 누르고 당선한 프랭클린 루스벨트대통령의 경우도 취임 1백일 안에 모든 경제정책을 입안,시행했다.
그 이후엔 이 시행한 정책을 보완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루스벨트대통령과 비슷하게 미국 경제난 해결을 내세우며 당선된 클린턴도 취임후 1백일안에 개혁프로그램을 실시하지 못하면 결국 그의 공약은 공약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렇기 때문에 미 대통령은 취임하기전 대통령당선자로서 해야할 일이 많다. 우선 공약을 시행 가능한 정책으로 가다듬어야 하고 이를 추진할 수 있는 인물들을 골라야 한다.
이것은 클린턴의 정권인수팀이 우선 해야할 일이다.
이러한 정책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산의 뒷받침이 따라야 하는데 그러자면 의회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조지 부시대통령은 바로 이점이 큰 약점이었다.
그는 자신이 아무리 좋은 경제정책을 제시해도 민주당이 다수인 미 의회가 이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불평했다.
또 이와는 반대로 의회는 행정부의 뜻과 다른 법안을 계속 양산해 내 부시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가운데 거부권을 가장 많이 사용한 대통령 가운데 하나로 기록되었다.
이번 선거에서 예상했던 대로 역시 민주당이 지난번과 같이 상·하 양원에서 모두 다수당이 되었다.
임기가 2년인 하원의 경우 4백35명의 의원이 모두 다시 선거를 치렀는데 민주당이 2백59석,공화당이 1백75석,무소속 1석으로 민주당이 현재 2백68석보다는 9석이 줄어들기는 했으나 절대다수를 유지했다.
상원의 경우 1백명 가운데 이번에 35명이 선거를 치렀는데 그 결과 민주 57석,공화 43석으로 민주당의 경우 현재 56석보다 1석이 더 많아졌다. 미국은 12년만에 의회와 행정부의 정당이 일치하는 기회를 갖게 됐다.
이런 점에서는 클린턴이 부시의 공화당정권에 비해 훨씬 일하기가 수월해졌다고 평가할 수 있고 그 만큼 힘이 더 생겼다고도 볼 수 있다.
숫자로만 평가하면 이렇게 클린턴에게 조건이 좋은 것 같이 보이지만 미국의회의 전통이나 이번에 새로 구성된 의회의 성격으로 볼때는 그렇게 희망적인 것만은 아니다.
우선 미국 의회는 여당이라고 해도 한국과 같이 대통령의 의사를 일사불란하게 따르지 않는다.
지미 카터 전대통령의 경우도 의회가 민주당 지배하에 있었지만 협조를 해주지 않아 많은 애를 먹었다.
클린턴의 경우도 본래 워싱턴 정가를 배경으로 성장한 정치인이 아니기 때문에 의회와는 소원한 입장이다.
물론 앨 고어부통령이 이를 보완해주는 역할을 하겠고 클린턴 자신도 매우 적극적인 인물이기 때문에 의회의 지도부와 끝임없는 대화를 통해 자신의 정책을 밀어줄 것을 설득하겠지만 의회의 변수라는 것이 만만치 않다.
클린턴이 실현코자 하는 경제정책은 미국의 각종 이익집단 간의 이해가 상충될 수 밖에 없고 그러한 이해상충에 앞장서는 그룹이 바로 의회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하원의 경우 4백35명 가운데 약 4분의 1에 해당하는 1백5명이 신인으로,이는 2차대전이후 최대의 교체다.
특히 여성·흑인·히스패닉계의 진출이 뚜렷해 이들의 요구가 어느식으로 발전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대의회 관계뿐 아니라 행정부 구성과 운영도 문제가 많다.
많은 공약을 하고 당선됐기 때문에 그 만큼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이다.
세금은 올리지 않겠다고 약속한 대신 정부의 할일은 많아졌으니 뒷감당하기가 수월치 않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지난 12년동안 야의 입장이었기 때문에 현직 경험을 가진 인사들이 부족하다.
클린턴내각에 거명되는 인물은 카터행정부 시절 일을 했던 사람,의회의 주요인사,그리고 선거본부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 손꼽히고 있을 정도다.
또 클린턴 자신이 중앙정부 경험이 없는 인물이기 때문에 참모의 역할이 누구보다도 필요한데 과연 인재등용을 제대로 할 것인지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미국 국민의 기대속에 탄생한 클린턴행정부가 이러한 현실의 도전을 어떻게 극복할지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이다.<워싱턴=문창극특파원>
□클린턴이 해야 할 일
○경제기반 정비
▲신규공공투자 2천억달러=전철·첨단기술·전기통신망·도로정비 등 4년간 8백억달러의 산업기반 정비 ▲고속철도 건설추진
○재정·세제
▲세출삭감 1천4백억달러 ▲백악관·의회직원 25% 감축,연방공무원 10만명 감축 ▲재정적자 누증시 연방정부 일부세출의 집행정지 ▲연간소득 20만달러 이상의 고소득자에 대한 소득세증액으로 4년간 8백억달러 징수 ▲중간소득층에 대해 4년간 2백억달러 상당의 감세 ▲생산성 향상 및 첨단기술 개발을 위한 설비투자와 중소기업의 장기투자에 대한 세액공제 ▲미국내 외국기업에 대한 징세강화로 4년간 4백50억달러 조달
○과학기술 진흥
▲초전도초소립자가속기(SSC)·우주스테이션 개발 등 대형과학프로젝트 추진 ▲정부출자 연구사업중 군수분야·민수분야의 비율을 현행 6대 4에서 5대 5로 조정 ▲국방기술 유출방지 ▲자동차연비 규제강화 ▲환경규제 강화
○규제완화 조정
▲독과점금지 정책의 운용강화=기업의 합병 및 매수 금지. 외국기업에 대한 독과점금지법 적극 적용 ▲항공·통신분야 등에 대한 공화당 정권의 규제완화정책 수정
○군축
▲하이테크 장비를 갖춘 기동부대 강화 등으로 「세계최강의 미군」을 유지하되 5년간 6백억달러의 국방비 삭감 ▲연방경찰 10만명 증원
○외교
▲한미·미일 안보체제 견지 ▲대러시아 지원강화로 옐친체제 유지 ▲유고사태 적극 개입 ▲친이스라엘 정책강화 ▲인권문제 등으로 대중국 강경자세 ▲대북한 압력강화
○통상
▲시장개방에 소극적인 국가에 대한 보복을 규정한 「슈퍼301조」 부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서의 노동·환경대책 강화 ▲신라운드 합의 실행추진 ▲외국기업 로비활동 규제
○사회정책
▲공립학교 선택자유 등 교육제도 개혁 ▲에이즈 대책 전임제 ▲인공중절수술 합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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