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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 중시하는 “의리파”/내가본 클린턴/정동수 LA거주변호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교수·연예인 등 각계각층과 친분유지/동양계에 관심… 「LA피해」 한인격려
클린턴 미 민주당 대통령후보를 처음 만난 것은 1년전 로스앤젤레스에서 민주당 전국위원회 연례총회가 열렸을 때다. 본회의에 앞서 약 80명의 민주당원들이 그 당시 대통령출마를 지망하던 여러 후보들과 같이 아침 식사를 하며 간단히 각 후보로부터 정견 발표를 듣는 기회가 있었다.
그 자리에는 조지 미첼 연방 상원의원,윌리 브라운 캘리포니아주 하원위원장,제시 잭슨 목사,로널드 브라운 전국민주당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대통령후보들 중에는 클린턴 아칸소주지사,톰 하킨 아이오와주의원,폴 송거스 전 매사추세츠주상원 의원 등이 참석,연설했다.
그 당시 44세의 나이보다 더 젊어 보인 클린턴후보의 패기찬 연설을 들으면서 좋은 인상을 받았지만,과연 그가 여러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민주당 후보로 지명될 수 있을지,또 지명된다 하더라도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던 조지 부시대통령의 적수가 될 수 있을 것인지 회의감이 앞섰던 기억이 새롭다.
사실 그 당시 민주당에서 고대하던 마리오 쿠오모 뉴욕주지사,리처드 게파트 연방하원 의원이나 앨 고어,빌 브래들리 연방상원 의원 등이 출마하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가 부시대통령과의 경쟁에서 패할 가능성이 너무 높다는 판단때문이었다.
클린턴후보는 자신감도 있어보였고,냉전이후의 변해가는 세계에서 미국이 나가야할 방향에 대해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었다. 또 설사 이번에 민주당후보로 선정되지 못하거나 본선에서 패배한다 할지라도 나이에 비춰 차기 선거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다는 판단도 했을 것이다.
클린턴후보를 좀 더 잘 알게 되면서 발견한 사실은 그가 의리의 사나이며 인간관계를 중요시한다는 것이다. 대학시절 이후는 말할 것도 없고 중·고등학교때 사귄 친구들이나 스승들과도 친분관계를 유지하며 여러가지 일에 자문을 얻고 있다.
그래서 이번 선거에서 등장한 용어중의 하나가 FOB(Friends OF Bill),즉 빌의 친구들이다. 이 FOB는 전국적으로 수백명 규모인데 지미 카터 전 대통령 재임시 외무차관을 지냈던 워런 크리스토퍼같은 전현직 고위관리·교수·변호사·기업인·교계 지도자·연예인 등 다양하다.
클린턴행정부가 등장할 경우 그 정책 방향에 대해 내가 가장 관심있는 부분은 동양계 미국인에 대한 대우다. 클린턴후보는 민주당 전당대회 직후 리틀 록의 선거본부에 중국계 멜린다 리를 참모로 고용,동양계 미국인들의 지지표를 끌어모으는 책임을 맡겼다.
그뿐 아니라 동양계 미국인들과의 모임도 여러차례 주선했고 그때마다 동양계 미국인들을 백악관·행정부에 기용하겠다고 공약했었다. 지난 8월15일 로스앤젤레스 교외의 샌개브리엘시에서 있었던 행사,8월29일 워싱턴 DC에서 있었던 동양계 언론인 협회,9월26일 같은 장소에서 있었던 동양계 지도급 인사들과의 모임 등은 클린턴후보가 주로 동양계 지지표를 겨냥한 것들이다.
특히 9월26일 모임은 클린턴후보가 직접 주선한 것이었는데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필자만 참석했다.
그날 토의 내용중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클린턴후보의 4·29 로스앤젤레스 폭동에 대한 것이다. 필자가 로스앤젤레스 폭동을 언급하기도 전에 클린턴후보는 『이번 폭동으로 피해를 본 한국인들에 대해 진심으로 가슴아프게 생각한다』며 한­흑갈등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 그는 폭동이 무엇보다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갈등에 기인하는 것이라며 흑인들이 『한인들에 대해 여러 가지로 왜곡된 편견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클린턴후보는 그날 여러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을 했지만 유독 로스앤젤레스 폭동과 당시의 최대 피해자 한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때는 얼굴 표정까지 변하며 진심으로 가슴아파하는 모습이어서 필자는 그가 정치가의 한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인간대 인간으로서 남의 아픔을 이해하며 도우려는 의지를 느꼈다.
그날 회의가 끝나고 헤어질때 클린턴후보는 악수를 하며 필자가 폭동후 로스앤젤레스 재건을 위해 노력하는 것을 격려,두손을 굳게 잡고 재건사업을 도울 것을 약속했다.
많은 고생을 하고 아픔을 경험한 클린턴후보,그는 인간미가 넘치고 2000년대를 향해 달려가는 미국이 필요로 하는 새로운 지도자다.
▷정동수씨 약력◁
정동수변호사(37)는 고등학생때 미국으로 이민,로스앤젤레스의 할리우드고교를 수석으로 졸업한뒤 하버드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했으며 그후 UCLA대학원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에서 법률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그는 초대 한미연합회장으로 일하는 등 한인사회를 위해 두드러진 활동을 하고 있으며 현재 한인 민주당협회 고문을 맡고 있다. 90년 캘리포니아주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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